서문 – 학교도 의학도 나를 가르쳐주지 않았다
나는 학교 교육에 잘 적응하지 못한 사람이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학교에 가기 싫을 때가 많았지만, 그땐 모두가 학교에 가야 하는 줄 알았다. 학교에 가지 않으면 딱히 대안도 없었고, 그냥 당연한 일인 줄 알고 따라갔다. 그렇게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까지, 솔직히 말하면 질질 끌려 다녔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는 사회에 내팽개쳐졌다. 공부를 잘하고 싶었지만, 시험을 잘 보는 재주는 없었다. 외우는 것도 못했고, 외우는 걸 경멸하기까지 했다. 학교를 자퇴하고 나간 친구들이 부러웠다. 나는 여러 핑계를 대며 마지못해 학교를 다녔고, 지금도 친한 친구들은 학교를 졸업하지 못한 친구들이다.
의료인으로 일하게 된 뒤, 나는 아무런 트레이닝 없이 무차별적으로 환자와 마주해야 했다. 환자들은 논리적으로 물었고, 나는 그 질문을 방어할 지식도 없었고, 둘러댈 재주도 없었다. 병의 원인을 묻는 질문은 내 양심을 정곡으로 찔렀고, 나는 자책했다. 그들이 야속했다.
그래서 대가에게 배우고자 병원 경영을 접고 부원장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그 대가에게서도 배울 게 없다는 결론이 나자, 나는 다시 의과대학에 들어가서 의학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알고 싶어졌다. 그런데 그곳에서도 나는 버려진 존재 같았다. 물어볼 사람도 없고, 만족스러운 대답을 주는 사람도 없었다.
나는 혼자 교과서를 악랄하게 읽었다. 그런데 다 읽고 나면 무지는 더 커졌고, 혼란은 더 깊어졌다. 의학이란 원래 이렇게 어려운 건가 싶었다. 그 와중에 장사 수완 좋고 임기응변 잘하는 사람들은 임상에서 곧잘 돈을 벌었고, 나는 괜히 조롱당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들이 나를 조롱한 것은 아니었지만, 나는 그렇게 느꼈다.
불운도 계속됐다. 선배의 도움으로 동업 기회를 얻기도 했고, 운 좋게 젊은 나이에 만지기 힘든 돈을 벌기도 했다. 그래도 나의 의문은 풀리지 않았다. 어릴 적엔 난독증에 가까울 정도로 산만했는데, 학교에 길들여지면서 책을 좀 보는 인간이 되었다. 이것저것 많이 읽었지만, 답은 없었다.
인간적으로도 미숙했던 나는 우울증을 겪었다. 불운이 닥칠 때마다 불면증이 오고, 그다음엔 우울증이 찾아왔다. 그 해답을 찾기 위해 종교책만 파고들었다. 대학 때 읽던 사회과학책, 소설, 수필, 시 다 버리고, 종교서적만 탐독했다.
나는 더 이상 의료인으로 살 자신이 없었다. 다른 길을 찾아 시간과 돈을 들여 공부하고 일도 해 봤지만, 그 분야도 만만치 않았다. 결국 다시 의료인으로 돌아왔지만, 여전히 의료도 병원경영도 낯설었다. 나는 지금도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인간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명상으로 정신적 고통을 다스려보려 했고, 더 나아가 수행으로 넘어가 규칙적으로 실천을 시작했다. 그러다 명안 스님을 만났다. 말레이시아의 좋은 가문 출신으로, 영국에서 회계학을 공부하고 홍콩 다국적기업에서 일하다가 숭산 스님의 제자가 되어 계룡 무상사에서 수행하시던 분이었다. 나는 뉴질랜드 젠센터에서 수행한 적이 있었고, 한국으로 돌아와 다시 계룡 무상사에 가게 되었다.
그곳에서 명안 스님과 좋은 인연을 맺었다. 나의 아들과도 각별한 관계를 맺던 그분은 어느 날 한의원 경영을 물어오셨고, 내가 별볼일 없다고 하자 암 환자를 전문으로 치료해 보라는 말씀을 주셨다. 나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로컬에서, 경험도 없는 내가 암 환자를 본다는 건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그런데 그분이 소개한 것이 '거슨 요법'이었다. 나는 늘 책을 들춰보던 버릇이 있어서 ‘거슨요법’이라는 책을 수소문했고, 주문해서 개인 출판본을 받았다. 책을 펼치자마자 나는 그 매력에 빠져들었다. 종교서적을 오래 읽어온 나는, 책이 가진 무게와 진정성을 구별할 수 있었고, 이 책은 진짜였다.
논리적 허점은 보이지 않았다. 유튜브를 뒤지다 보니, 1959년에 죽은 맥스 거슨 박사에게 치료받은 암 환자와 자가면역질환 환자들이 2000년대 이후에도 살아서 인터뷰하는 영상을 보게 되었다. 놀라웠다. 나는 모든 관련 영상을 찾아봤다.
그 뒤 샌디에이고에 있는 거슨 인스티튜트를 알게 되었고, 온라인으로 '거슨 베이직' 과정을 이수했다. 거슨 닥터를 양성하는 과정도 있었다. 나는 이걸 계속 공부할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거슨 요법을 익히던 중, 자가면역질환 강의 요청을 받았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정보를 취합해서 강의했다. 그러다 ‘Plant-Based Nutrition’을 주장하는 의사 그룹을 알게 되었다. 맥스 거슨과 매우 유사한 주장을 하고 있었고, 그들은 이미 엄청난 업적과 임상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존 맥두걸, 콜린 캠벨, 콜드웰 에셀스틴, 닐 버나드, 앨런 골드해머, 조엘 퍼먼, 마이클 클래퍼, 딘 오니시… 영어를 포기하지 않았던 덕에 이들의 비디오와 책, 논문을 자유롭게 접할 수 있었고, 그들의 주장이 거슨 요법과 일치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도저히 맞춰지지 않던 퍼즐이 갑자기 하나씩 제자리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머릿속이 저절로 정리됐다. 지금까지 혼란스럽고 복잡했던 그림이 이제야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 거다.
나는 이들을 직접 만나기 위해 샌프란시스코 옆 도시 오클랜드에서 열린 International Plant-Based Nutrition Conference에 참가했고, 인증샷도 찍고, 짧은 대화도 나눴다. Lifestyle Medicine 부스도 들러 소개를 받고 권유도 받았다. 나는 갑자기 적극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주장을 하는 그룹과 교류해야겠다고 생각했고, 베지닥터에 합류했다. 로마린다 대학에서 진행하는 국제 생활습관의학 전문의 과정을 교수님들의 도움으로 이수했고, 코넬대학교에서 콜린 캠벨의 과정을, 스탠퍼드 대학의 Nutrition and Health도 수강했다. 나만의 이론 지평이 열리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의료인 중 하위 10%쯤 되는 위치에 있었던 것 같다. 돈도 없고, 배운 것도 없고. 늘 제도 바깥에서, 아웃사이더로 살아왔다. 그런데 이제 서양의학과 동양의학을 큰 그림으로 다시 보게 되었다. 둘 다 허점이 분명했다.
나는 내가 알아낸 걸 한의사들과 의사들에게 나누기 시작했다. 많은 의료인들이 자기 한계조차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존의 의학들, 그리고 그것들을 보완한다고 나선 통합의학, 기능의학, 생활습관의학, 자연치유까지… 뭔가 놓치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왔다.
그들은 구체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거나, 강조점이 빗나가 있거나, 서로의 서사를 설명하지 못했다. 그러던 중 나는 인공지능을 만났다. 학습 속도가 비약적으로 빨라졌고, 나는 질문할 줄 아는 사용자였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이제 말하고자 한다. 학교에도 적응 못하고, 그들만의 문법을 혐오하던 열등생이 감히 새로운 의학을 써야겠다는 동기를 갖게 된 이유를. 교육에 대한 비웃음, 치기, 분노 같은 게 내 안에 섞여 있었던 것 같다. 똑똑한 척하던 친구들과도 많이 어울렸지만, 그들이 정말 지성적인지는 늘 의심스러웠다.
지금의 교육은 철학자들이 하던 공부 방식과 전혀 다르다. 누가 더 빨리 외우고, 누가 더 빨리 써먹는지를 겨루는 게임 같다. 잘 적응하면 당근 받고, 싫어하거나 뒤처지면 채찍 맞는다. 나는 그 게임을 싫어했고, 지금도 그렇다.
그래서 나는 그들과는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다. 나는 비주류 중의 비주류다. 그런데도 새로운 의학을 써야겠다는 확신이 있다.
기존 의학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환자를 더 아프게 만든다. 의료비는 끝없이 늘어나고, 국가 재정을 위협할 정도인데, 사람들은 더 건강해지지 않는다. 오히려 더 병들고 있다. 의학은 이미 응용과학으로서의 도덕성과 목적을 잃어버렸고, 원인을 정반대로 지목한다. 환자를 수동적인 존재로 만든다.
환자들은 이미 직관적으로 기존 의학에 대한 신뢰를 접었다. 이 체계는 지속가능하지 않다. 고쳐 쓸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완전히 새로운 관점과 철학, 가치관 위에서 의학을 다시 쓰고자 한다. 내가 주장하는 바는 하나의 패러다임이다. 기존의 낡은 구조를 근본부터 무너뜨릴 것이다. 이 새로운 패러다임은 모든 것을 통합된 하나의 그림으로 연결시켜 설명할 수 있다.
이게 인간의 질병을 가장 잘, 가장 효율적이고, 근본적이며, 경제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길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이제, 나는 그 이야기를 시작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