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해지고 싶다

by 윈스턴

일을 마치고 방에 들어왔다. 지금 내 안에는 분노가 차오르고 있다. 책상 위에 있는 집기들을 전부 손으로 쓸어버리고, 벽이 부서져라 내려치고 싶었다.

하지만 참을 수밖에 없었다. 내 왼 편에는 이등 기관사가 살고 있고 오른편에는 기관장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나의 분노를 표출하기에 두께 3.0mm의 철판은 신뢰할 수 없었다. 고래 사이에 끼여 있던 새우는 의자에 앉아 숨을 고르는 일 밖에 할 수 없었다.


나는 삼등 기관사. LNG를 나르기 위해 중동으로 가는 바다 위에 있다.




고등학교 3학년. 내가 한국해양대학교에서 합격 통보를 받은 다음부터 나의 미래는 고정되었다. 배를 타는 미래. 멋있는 직업이라 생각했다. 전 세계를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여러 나라에 정박해서 다양한 사람들, 다양한 문화를 접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물론 입사할 때쯤엔 이미 그런 기대는 저 멀리 날아가고 그저 공포만이 남아있었다. 아련한 실습 때의 기억은 내 몸을 수축시키고 경직되게 만들었다.

승선할 때부터 느껴지는 강한 벙커C유의 향. 나는 냄새와 노래에 추억을 같이 묻어 놓는다. 그리고 기름의 냄새는 나의 고통스러웠던 추억을 끄집어 올려주었고, 덕분에 나는 시작도 전에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었다.

일등 기관사가 된 지금도 처음 승선할 때 올라오는 기름 냄새 때문에 괜스레 몸이 경직된다.

배에서 일을 시작할 때는 너무나 강한 책임감이 내 어깨를 짓눌렀다. 항해사들도 항해를 하며 많은 부담을 느끼겠지만, 배가 입항하거나 출항할 때를 제외하면 그 긴장감은 다소 낮은 편이다. 하지만 기관사는 다르다.

통제실 밖을 나가면 눈앞에는 3층 건물보다 큰 보일러, 터빈 혹은 엔진이 작동하고 있다. 그 엔진에서 나오는 박동은 내가 지금 자고 있는 침대 머리맡에서, 책상 위에 올려놓은 물컵의 파문을 통해서, 그리고 내 머릿속에서 계속해서 울리고 있다.

엔진 박동은 배가 건강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청신호이기도 하지만, 나를 상시 긴장 상태로 몰아넣는 범인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런 긴장 상태를 오랫동안 경험한 사람들 중 일부는 한껏 예민해진 정신을 가진 채 나의 상관으로 머물다 가셨다. 그런 분들을 보며 나는 배는 절대 오래 타서는 안된다는 결심을 하곤 했다.

배의 근무환경은 상당히 열악하게 느껴진다. 우선 인터넷이 거의 되지 않는다. 카카오톡 문자를 보낼 수 있게 된 것도 몇 년 되지 않았고, 지금도 이모티콘은 한참 있다 보인다. 이 점에서 대한민국 국민의 절반 이상은 근무 의지가 상실됐을 거라 자신한다. 그리고 돌아다닐 수 없기 때문에 주말이라는 것은 그냥 방에서 들숨과 날숨을 반복하는 날이라고 생각해도 무방하다. 또한 일터가 과하게 가깝다. 방 밖을 나와서 엘리베이터 버튼만 누르면 그것은 나를 바로 기관실로 끌고 간다. 출근 시간이 거의 걸리지 않아 장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한국인 특성상 출근 시간이 거의 걸리지 않으면 출근이 그냥 빨라질 뿐이다.

7시 30분 쯤되면 모두가 출근해 있고, 35분이 되면 방으로 실습 기관사가 친절하게 당장 출근하라는 전화벨을 울려준다.

마지막으로 상사의 방은 아주 과하게 가깝다. 변기 물 내리는 소리를 통해 상사께서 오늘 유난히 일찍 일어났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조합은 흡사 감옥과도 같다. 그 차이는 통장에 돈이 꽂히냐 안 꽂히냐의 차이로 밖에 보이지 않고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나는 이 휴대폰에 보이는 숫자가 진짜 존재한다고 믿는 게 옳은 건가에 대한 철학적인 고민이 늘어간다.


그렇게 같이 입사한 동기들은 본인들의 퇴사 일자를 서로 공유하기에 이르렀고, 지능 순으로 배에서 탈출하는 듯하였으며, 나의 고민은 깊어져만 갔다.




4년이 지난 지금도 배에서 일을 하고 있지만, 어떤 것이 정답이었을지는 아직 모른다. 나는 과연 배에서 일하는 것이 정말 좋다고 생각해서 일을 하는 것일까, 아니면 그렇게 믿도록 나 자신을 기만한 것일까.

하지만 당장에 결정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외항선을 타는 이 생활이 대체 복무가 되었기 때문이다. 대략 3년 간 이 생활을 이어나가게 되면 나는 국방의 의무에서 자유로워지게 되었다.

그렇기에 나는 소문으로 들었던 무시무시한 군대보다 나은 점들을 머릿속에 하나 둘 상기시키며 생활을 이어나갔고, 그렇게 우울이 가슴을 지나 머리까지 파고들던 날 나는 문득 생각이 들었다.

‘행복해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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