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부모님들은 아이돌을 좋아하는 것을 반대하신다. 학업 증진에 방해가 된다, 쓸데없는 데 돈을 쓴다. 등의 이유를 들어서 말이다. 오늘은 고등학교와 대학교의 덕질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나는 중학교 2학년 때 덕질을 시작했다. 당시 인기 많던 아이돌의 최고 인기 멤버였다. 친구가 영상을 보여줬고, 나는 순식간에 빠져들었다. 한참 영상과 사진으로만 오빠를 보고 있던 때, 친구들이 오빠를 보러 서울에 가자고 말했다. '드림콘서트'였다. "뭐? 서울을 가자고? 그 먼 데를 어떻게 우리끼리 가?"라고는 했지만 오빠를 실물로 보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엄마와 아빠에게 허락을 구했으나, 당연히 반대였다. 친구 엄마와 통화를 하고, 친구들 열댓 명이 간다는 소식을 듣고서야 허락이 떨어졌다.
사실 그날 서울에서 오빠들은 정작 면봉처럼 보였다. 정말 면봉이었다. 하지만 그 날의 열기는, 내가 갔던 어떤 행사나 모임보다 뜨거웠다고 자부할 수 있겠다. 아직도 그날을 생각하면 너무 좋았던 기억밖에는 없다. 그 이후로도 쭉 덕질을 시작했다. 2-3년 단위로 오빠는 바뀌었지만, 내 열정만큼은 아직도 중학교 2학년에 머물러있다.
고등학교 2학년 시험기간, 나는 우리 동네에서 1시간 정도 걸리는 곳에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이 팬싸인회를 하러 온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는 엄청난 고민에 빠졌다. 보통 아이돌을 보러 가려면, 3시간정도 걸리는 서울에 가야 하는데 1시간 거리의 가까운 동네... 나는 그날부터 공부를 열심히 시작했다. 새벽을 새면서 공부를 했다. 내가 할 공부량을 다 끝내놓고 오빠를 보러 갈 속셈이었다. 시험 이틀 전, 아이돌 오빠를 보러 향했다. 엄마에게는 하루 종일 독서실에 있겠다고 거짓말을 쳤다. 아이돌 오빠는 열렬히 빛났고, 그날 나는 소위 '계'를 탔다. 포옹 이벤트에 내가 당첨된 것이다. 아이돌 오빠의 품은 따뜻했고, 허리가 굉장히 말랐던 기억이 난다. 품에서 나오기 싫었지만... 나와야 했다. 그날 집에 돌아가는 길, 내 정신은 내 것이 아니었다. 그 정신으로 택시를 타서 핸드폰을 잃어버렸다. 그리고 집에 돌아갔는데, 집은 온통 난리가 나 있었다. 경찰인 아빠는 나를 찾으러 쉬는 날 동료와 같이 우리 동네 곳곳을 순찰돌고 있었고, 엄마는 방금 핸드폰을 찾았다고 전화가 왔다며, 네가 그 동네를 왜 갔냐며 물어보셨다. 아이돌을 보러 갔다고 하면 엄마한테 더 혼날 것 같아, 나는 그냥 친구랑 놀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날 나는 가방이 불태워질 뻔했으며, 집에 감금되었고, 핸드폰이 없어 친구들과 연락도 할 수 없었다. 당연히 다다음날 시험도 망쳤다.
이제는 엄마에게 일거수일투족을 보고하지 않아도 될뿐더러, 집이 서울이기 때문에 더 열정적으로 덕질을 하고 있다. 아직 엄마는 아이돌을 좋아하던 내가 그때의 치기어린 마음이라고 생각하신다. 하지만 나에게 아이돌은, 힘든 수험생활을 버티게 해준 버팀목이며, 삶의 원동력이자 비타민이었다. 수험생의 엄마들도 아이돌 덕질을 제재하는 것보다는, 그로 인해 공부를 더 열심히 할 수 있게 응원해주고, 수험생활의 스트레스를 푸는 것을 도와주어야 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친구들과 수능을 끝나고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들떠 있던 때, 혹시 대학에 들어가면 탈덕의 길로 들어서나? 하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나는 대학에 들어와서 한참 '덕질' 을 쉬었다.
대학에 들어와 바빠졌고,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이 4년째 별다른 수익을 못내고 있어 거의 해체 수순에 가까워졌다. 자연스레 나는 휴덕(덕질을 쉬는 것을 말함)상태가 되었다. 그러나 탈덕은 없었다. 한번 덕후는 영원한 덕후. 고등학교 때보다 더 열렬히 좋아하면 열렬히 좋아했지, 절대 탈덕은 없다.
2017년 3월, mnet에서 시작한 프로듀스 101이라는 프로그램은 나를 자연스레 덕질의 길로 인도했다. 사실 처음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그저 그런 진부한 프로그램이 또 시작됐구나- 하는 생각으로 101명의 사진을 차근차근 보고있던 때였다. 한 소년이 마트 카트에 앉아 목을 짚고 있는 사진이었다. 와- 오랜만에 나의 취향을 저격한 소년이었다. 쌍꺼풀 있는 눈과 없는 눈의 차이. 오똑한 코. 예쁜 피부. 또 입술 옆에 있는 점은 얼마나 더 예쁜지. 한 스무살쯤 됐으려나. 하고 그 소년의 이름을 쳤을 때, 아뿔싸. 2002년생. 16살이었다. 그래도 그 소년의 외모는 날 랜선 이모의 마음으로 저격하기에 충분했다.
나는 그날부터 친구들의 표를 얻어 투표를 시작했고, 그 소년을 데뷔시키기 위해 사진을 찍으러 다녔고, SNS에도 올리기 시작했다. 또한 경연에도 당첨되어 갔었다. 나는 사실 경연 전 날 컨디션이 좋지 않아 박물관에서 답사를 하다가 쓰러졌었다. 그러나 나는 절대 내 소년을 보는 것을 포기할 수 없었고, 약을 먹고 경연 현장으로 향했다. 그 경연은 선착순 입장이기 때문에 거의 일주일간 밤을 새우는 사람이 다분했고, 나는 그 정도로 현생(현재 생활)을 포기 한 사람은 아니었기 때문에, 전날 밤만 새웠다. 그리고 나는 101번으로 입장할 수 있었고, 101번이라는 번호에 또 의미를 부여했다. 그곳에서 본 내 소년은 아직도 생각하면 눈물이 날 만큼 아름다웠다- 고 할 수 있겠다. 내 소년이 첫 번째 경연이었기 때문에, 사실 뒤에 아이들은 생각이 잘 안난다. 사실 마지막에는 정말 나가고 싶을 만큼 다리도 아팠다. 당시 지방으로 바로 가야했기 때문에, 찜질방에서 자고 첫차를 타고 나오는데 정말 허리도 뽀개질만큼 아팠다. 이러다 죽겠구나. 싶었다. 그러나 그 날 경연에서 내 소년은 팀 내 1등을 했고, 난 자랑스러운 이모의 맘으로 행복해 할 수 있었다.
결국 내 소년은 16등으로 '워너원'으로 데뷔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지금 다방면의 모델로, 또 월드투어 팬미팅을 돌며 슈퍼스타의 인생을 살고있다. 나는 결국 1년 정도 덕질을 쉬고 다시 덕후의 세계로 돌아갔다. 고향집에 온 것 마냥 편안한 마음으로 말이다.
나도, 내 친구들도 그렇듯 대학에 들어왔다고 탈덕(아이돌 덕질을 그만두는 것)을 할 수는 없다는 것을 알았다. 다들 20살 바쁠 때는 잠깐 쉬었다가, 1-2년 후인 지금은 열렬하게 덕질을 하고 있다. 물론 20살 때도 덕질을 열렬히 하고있던 친구들도 있었다.
건강한 중독자 '덕후'는 어느덧 21세기 인재가 되었다. (기사 원문 : https://1boon.kakao.com/dbr/3 ) 아이돌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심리학적으로 건강하고, 무언가에 몰두할만한 집중력을 지녔다고 말한다. 그 놀라운 집중력으로 덕후들은 오늘도 다방면에서 활동하고 있다. 연예인부터 정치인, 교수, 교사, 박사, 기자 등 다방면에 존재하고 있는 덕후들을 위해 오늘도 부모님은 건강한 덕후가 되라고 응원해주셔야 할 것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학생들 역시, 오늘도 열심히 건강한 덕질을 하길 바라며.
본 칼럼은 ©TENDOM Inc.과 한국청소년재단이 함께 운영하는 '애드캠퍼스 온라인 칼럼멘토단' 소속 대학생 멘토가 대한민국의 청소년들을 위해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담은 글입니다. 글의 내용은 운영기관의 공식의견이 아니며, 일부 내용은 운영기관의 의견과 다를 수도 있음을 밝힙니다. 칼럼은 출처를 밝히는 한 자유롭게 스크랩 및 공유가 가능합니다. 다만 게재내용의 상업적 재배포는 금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