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친 고민은 나를 정체시키기만 할 뿐
목요일 저녁, 다음날 자정까지 제출해야 하는 칼럼을 쓰기 위해 카페에 가서 자리를 잡았다. 딸기 요거트 블렌디드를 한 입 마시고, 노트를 펼쳤다. 먼저 주제를 정해야 한다.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는 글을 쓰기 위해서는 독특한 주제를 선정해야 한다. 먼저 내가 글을 쓰고 싶은 주제를 다 적어 보았다. 흔하지 않고 특이한 주제가 나올 때까지.
“세상에 정답은 없으니, 남들 의견에 휘둘리지 말고 스스로를 믿으세요.”
“모든 것은 장단점이 있습니다.”
“힘들면 쉬세요.”
따뜻하고 좋지만 요즘은 너무 흔히 보이는 말들이다.
‘아냐, 이 정도로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없어. 좋은 글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없어.’
조금 더 적어 보았다.
“인간은 완벽할 수 없다.”
“모든 사람의 총 능력치는 동일하다.”
능력치?
순간 게임이 떠올랐다.
‘모든 게임 캐릭터는 서로 밸런스를 맞추기 위해 장단점이 확실히 존재해. 그래서 절대적으로 우월하거나 열등한 캐릭터가 없어. 그래! 게임에 빗대어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주는 거야! 이 정도면 충분히 독특한걸? 오버워치에서 삶의 교훈을 얻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 제목은… “걱정이 있다면, 아이헨발데로 떠나 보세요” 어때? 이거 오버워치하는 사람들이라면 절대 못 지나치겠는걸? 좋아. 이 주제로 가자.’
하지만 순간 또 불안해졌다.
‘혹시 이 주제로 글을 쓴 다른 사람이 있으면 어떡하지? 이 생각이 독창적이고 나만 할 수 있는 생각이 아니면 어떡하지?’
그래서 네이버에 “오버워치와 사회”, “오버워치 교훈” 등을 검색해 보았다. 다행히도 오버워치 관련 글은 다 게임 자체에 대한 글이었다. 이번엔 브런치에 “오버워치”를 검색해 보았다. 역시 내 주제와 비슷한 글은 없었다 그렇다면 처음으로 이런 주제로 글을 쓴 사람이 내가 될 확률이 매우 높아진다. 스스로에게 뿌듯해졌다.
‘좋았어. 이 정도라면 조회수도 폭발적일 거고 잘 쓴 글이라는 칭찬도 받을 수 있을 거고 우수 칼럼으로도 선정될 수 있을 거 같아.’
주제를 정했으니 이제는 개요를 짤 차례이다. 개요는 짜임새 있는 글을 쓰기 위해 꼭 필요하다. 오버워치에서 도출해낼 수 있는 메시지들을 다 적어 보면서 본문에 들어갈 내용 구성을 한 후, 기준을 세워 본론에 들어갈 내용의 전개 순서를 짰다. 그다음, 서론을 쓰기 시작했다. 서론은 독자들이 글을 읽을 때 가장 먼저 접하는 부분이기에 독자들이 이 글을 더 읽을지 말지를 결정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그만큼 독자들이 관심을 집중할 수 있도록 써야 한다.
“‘저는 잘하는 게 하나도 없는 것 같아요’ 이런 고민이 있는 사람들이 요즘 많다. 이 고민들의 답은 하지만 의외의 곳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바로 컴퓨터 안에서.”
‘좋아, 이런 고민을 가진 사람은 많을 테니까 분명 내 글을 읽게 될 거야.’
그렇게 서론의 방향을 잡고 쭉 써 내려가던 중 갑자기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근데, 정말 이런 고민을 하는 사람이 많을까? 아니면 어떡하지?’
‘왜 오버워치를 인간 사회에 적용할 수 있냐고 물으면 어떡하지? 오버워치와 인간 사회의 연관성을 뭐라고 설명해야 하지?’
‘비유가 괜찮기는 한 건가? 이 두 비유가 서로 모순되는 거 같은데.’
걱정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점점 더 커지기 시작했다. 나는 노트북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아무것도 타이핑할 수 없었다. 노트북 화면 보호기가 몇 번 뜨고 나서 시계를 보았다. 카페에 들어온 뒤로 3시간이 지나 있었다. 짐을 챙겨 카페에서 나왔다.
집까지 가는 버스에서 고민들에 대한 답을 찾으려고 했다. 하지만 해결책을 찾기는커녕 고민들은 불어나기만 했다. 끝도 없고 답도 없는 고민들이 머리를 지배하자 나는 생각하기를 포기했다.
‘아 몰라. 그냥 잘래. 집 가서 생각하지 뭐.’
하지만 집에서도 고민이 해결되지 않은 건 매한가지였다. 역시나 나는 화면만 켜 놓은 채 아무것도 쓸 수 없었다. 일단 글을 써 보려고 했지만, 이미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운 걱정들은 글을 쓰는 순간마다 나의 손을 멈춰 세웠다. 한 글자 한 글자 쓰면서도 찝찝함을 지울 수 없었다. 독창적이라고 생각했던 주제는 맘에 안 드는 것 투성이가 되어 버렸다. 결국 나는 노트북을 끄고 침대에 누워 버렸다. 그렇게 제출 두 시간 전까지 글 쓰기를 미뤘다. 사실 칼럼을 쓰지 말까 하는 생각까지 했다.
나는 그저 더 좋은, 더 완벽에 가까운, 더 많은 사람의 인정을 받는 글을 쓰고 싶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 욕심 때문에 나는 글쓰기를 아예 포기해 버렸다. 어떻게 써도 맘에 안 드는 구석이 있으니 그럴 바엔 그냥 글을 안 쓰겠다는 것이다.
물론 좋은 글을 쓰기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결과만 보자면 나는 “이번 주 칼럼 미제출자”였다. 칼럼 미제출자는 벌점을 받으며, 일정 양 이상의 칼럼을 제출하지 않으면 칼럼멘토단 활동을 수료하지 못할 수도 있다. “조금 부족한 칼럼”을 쓰지 않으려고 “활동 수료 실패”라는 가장 큰 실패를 감수한다니. 나는 누가 봐도 바보 같은 짓을 하고 있었다.
나는 항상 이랬다. 예를 들어, 진로를 정해보려고 해도 항상 “내가 잘 해낼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뒤따랐다. 얼마 전, 심리상담사라는 직업에 관심을 갖고 이쪽 길로 가볼까 생각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또 걱정 보따리가 열려 버렸다. ‘심리 상담사는 다른 사람 말을 잘 들어줘야 하는데, 나는 다른 사람 말을 듣다가도 내 얘기를 꺼내는 걸 좋아하지 않나? 그럼 난 좋은 심리 상담사가 되지 못할 거야,’ ‘심리 상담사는 내담자에게 상처를 주면 안 되니까 신중하게 말하야하는데 나는 말실수를 자주 하는 편이지 않나? 그럼 난 좋은 심리 상담가가 되지 못할 거야.’ 결국 나는 심리상담사라는 진로를 포기했다. 그리고 이렇게 나는 수많은 진로를 포기했다. 결국, 내가 “아무 문제없이 완벽하게 잘할 수 있는 일”은 없었고, 나는 진로를 정할 수 없었다. 결국 수많은 고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다시 원점에 돌아왔다.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을 선택하기 위해 고민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고민만 하다 보면 아무것도 이룬 게 없게 된다. 내가 그 일을 하기 위한 준비가 지금 완벽하게 되어있지 않다고 해도 일단 그 길로 결정하고 부족한 능력을 키우기 위해 노력할 수도 있고, 일단 시도해 보다가 정말 아닌 것 같으면 그만두고 다른 길을 찾을 수도 있다. 전자든 후자든 이렇게 하면 일단 뭔가는 이룬 것이다. 전자의 경우 본인이 하고 싶어 하는 일을 성취할 수 있고, 후자의 경우에도 적어도 본인에게 확실하게 안 맞는 게 무엇인지를 알 수 있어 선택에 있어 선택지 하나를 확실하게 지울 수 있다. 하지만 고민만 하고 있으면 당연히 성취하지도, 선택지 하나를 확실하게 지우지도 못한다. 남들과 똑같은 시간이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그 시간에 남들이 앞으로 나아갈 때 나는 머리만 아픈 채 제자리에 고여있다.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행동을 필요로 한다. 그 행동이 어떤 결과를 불러오던, 그 결과는 나에게 새로운 정보이고 그 새로움을 토대로 나는 발전할 수 있다. 실패를 해도 그 실패는 내 앞에 있는 수많은 선택지 중 하나를 지워주고 다른 길로 가도록 나를 안내해 준다. 처음부터 완벽한 선택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오히려 조금 걸리는 점이 있더라도 일단 선택하고 도전해 보고 나중에 정말로 문제가 생기면 그때 해결해도 된다. 그렇게 해도 적어도 나는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완벽한 선택을 하려고 머리만 쥐어짜다가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것보다 낫다.
그래서 나는 일단 워드를 켰다.
개요도 짜지 않았다. 하지만 일단 막 쓰기 시작했다.
문단 간 흐름이 어색할 수도 있고 문장이 깔끔하지 않을 수도 있다. 지나치게 글이 길 수도 있다. 서론, 본론, 결론이 명확하게 나눠져 있지 않을 수도 있다. 내가 생각한 “좋은 글”과는 거리가 멀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글 하나를 완성했다.
본 칼럼은 ©TENDOM Inc.과 한국청소년재단이 함께 운영하는 '애드캠퍼스 온라인 칼럼멘토단' 소속 대학생 멘토가 대한민국의 청소년들을 위해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담은 글입니다. 글의 내용은 운영기관의 공식의견이 아니며, 일부 내용은 운영기관의 의견과 다를 수도 있음을 밝힙니다. 칼럼은 출처를 밝히는 한 자유롭게 스크랩 및 공유가 가능합니다. 다만 게재내용의 상업적 재배포는 금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