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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드캠퍼스 Jul 23. 2017

데이트 폭력, 더 이상 사랑싸움이 아니다

"범죄를 모르면,

  피해를 입어도 자기가 피해자인줄도 모른다."

    (이창무 중앙대 교수, 박미랑 한남대 교수



얼마 전 생애 첫 여자친구를 사귄 B군(19세). 사귄 지 며칠 지나지 않았지만, 여자친구가 너무나도 좋다. 주변에서 친구들이 진도는 어디까지 나갔냐고 계속 물어본다. 얼마 전 데이트를 하다가 갑작스럽게 여자친구를 껴안았다. 여자친구는 많이 놀란 것 같았지만 딱히 싫다고 하지 않는다. 오늘은 진도를 더 빼서 입을 맞춰봐야겠다.
B군의 여자친구 A양(18세). 평소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 본 남자주인공이 여자주인공의 손목을 거칠게 잡는 등의 행위를 로맨틱하다고 여겨왔다. 얼마 전 남자친구가 갑작스럽게 껴안았다. 실제로 겪어보니 아주 당황스럽고 불쾌감이 들었지만, TV에서 자주 보던 것이기도 하고 딱히 고민을 나눌 곳도 없어서 남자친구가 나를 많이 사랑해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C양(17세)은 연애 시 상대방에 대한 질투심과 소유욕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같은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는 남자친구에게 수시로 메시지를 보낸다. 하지만 친구들과 어울리기 좋아하는 그녀의 남자친구는 필요한 연락만 간략하게 한다. 오늘도 2시간째 답이 없는 남자친구에게 화가 난 C양은 남자친구에게 20통이 넘는 전화와 50개가 넘는 문자를 보내 놓았다.



나이를 불문하고 연인 간에 쉽게 일어날 수 있는 상황들이다. 그런데 사실 위 상황들은 데이트 폭력에 노출된 피해자와 데이트 폭력 가해자 간의 상황이기도 하다. 데이트 폭력은 염산 테러와 같은 이별 범죄를 통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하지만 하나의 용어로 분명히 규정된 지도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많은 사람은 해당 상황에처해 있거나 가해자가 된 상황에서도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한 채 방관하기 쉽다.


언론매체는 심각한 피해가 있는 경우를 선별해서 보도하고, 그 외 다른 폭력의 종류는 설명해 주지 않는다. 또한, 우리나라의 많은 드라마와 영화는 데이트 폭력을 미화하고, 그 심각성을 간과한 장면들을 가감 없이 제공한다. 그런데 연인 간 상황이 주를 이루는 미니 시리즈 등은 주로 10대 20대 미혼여성이 주 시청연령으로 ‘로맨틱’과 ‘폭력’의 경계를 넘나드는 장면들을 모두 ‘로맨틱’으로 치부해버리기 일쑤다.


모르는 것은 가르쳐주면 된다. 그런데 우리는 누구한테 배워야 할까? 필자도 대학에 와서야 교양강좌를 통해 ‘데이트 폭력’이 뭔지를 알게 되었다. ‘고등학생 때 미리 배웠으면 좋았을걸’ 이라는 후회가 들었기 때문에 얕은 지식이나마 우리 학생들과 나누고자 한다. 성교육이라고 해봐야 임신과 출산에 대한 것만, 그것도 겉핥기 식으로 가르치는 학교 보건시간에서는 절대 알 수 없다. 물론 임신, 출산, 피임 그리고 성적 자기결정권은 중요한 문제지만 그에 앞선 다른 문제에 대한 고찰도 분명 필요하다. 그 예로 한 여학생이 임신하게 된 과정에는 데이트폭력 중 성적 폭력인 ‘성행위 시 피임거부’가 있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데이트 폭력 피해자를 무조건 여성으로 고정해 사고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어쩌면 칠판 앞에서 열심히 정자가 난자에게 가는 법에 대해 수업하고 계신 그 분들도 피해자 혹은 가해자일 수도…….



데이트 폭력에 관한 정의는 고정되어 있지 않고 학자마다 다양한 견해가 있지만, 필자는 Carlson(1987)의 정의를 기반으로 논의하고자 한다. 그는 “낭만적 관계에 있는 결혼하지 않은 커플 사이의 폭력”이라고 정의하였다. 이 정의에서 중요한 것은 ①결혼 및 이혼 관계의 커플은 포함하지 않는다. 이들은 가정폭력 및 일반 상해, 폭력으로 간주한다. ②요즘 유행하는 ‘썸’의 관계에서부터 첫 데이트, 동거 상황까지 다양한 상황에 처해있는 관계를 모두 아우른다. ③이성뿐만 아니라 동성 간 커플도 포함한다. 라는 것이다. 데이트 폭력의 종류는 크게 감정적, 정신적, 성적, 물리적 폭력과 통제 권력적 행위 이렇게 5가지로 세분될 수 있다.


정의 및 종류에 관한 논의는 사실 핵심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데이트 폭력 피해자 혹은 가해자인지를 확실히 구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수면 위로 떠오른 데이트 폭력, 보호받지 못하는 청소년들.


아직까지 이 장황하고 따분한 글을 읽고 있다면 아마 이성교제중이거나, 관련된 고민이 있는 친구일 확률이 높다고 생각한다. 데이트 폭력은 그 특성상 구분하기 쉽지 않고, 가정폭력 특별법이 시행되기 전 가정폭력처럼 지극히 개인적이고 사적인 일로 치부되어 국가와 사회의 제제가 지양되는 일종의 자유영역으로 간주된다.


따라서 신체적 상해와 같은 눈에 보이는 피해가 없다면 자신의 피해를 증명하기 어렵고, 가해자를 처벌하기도 쉽지 않다. 분명히 명시하지만 연인 관계에서 한 사람이 상대방에게 신체적 폭력을 가하는 것 이외에도 언어적/심리적 학대, 상대를 지배하고 통제하려는 행위, 강압적 성관계, 피임기구 사용거부 등은 모두 데이트 폭력이다. 통제라고 해서 감금, 스토킹 등 악질적인 범죄만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옷차림, 인간관계등에 대한 통제도 데이트 폭력에 포함되는 통제다.


덧붙여서 많은 인권단체와 여성단체들은 데이트 폭력을 젠더폭력과 동일시 한다. 물론 데이트 폭력에서 이어진 강력범죄 피해자의 평균 95% 이상의 여성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청소년 데이트 폭력’에서는 남학생은 가해자, 여학생은 피해자라는 프레임을 버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청소년 데이트폭력’에서는 심리적, 정신적 학대가 주로 일어나기 때문이다. ‘혹시 내가 예민한건 아닐까’, ‘원래는 좋은 사람인데 내가 잘못한것 같다’, ‘나만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등의 생각을 가지고 있는 친구가 있다면 다음의 통계자료를 꼭 읽어 주길 바란다.



경찰청에 따르면 2011년부터 2015년까지 데이트 폭력 건수는 평균 7296건이다.


2015년까지는 데이트 폭력이 처벌대상이라는 점이 알려지지 않았을 시기임에도 연간 평균 7천건이다. 2016년에는 연초부터 데이트 폭력 처벌가능을 홍보해 2달간 2천 여 건의 신고를 접수했다. 표본을 좁혀서, 경찰이 2016년 2월 3일부터 7월 31일에 처리한 사건만 본다면 폭행상해가 67.2%, 체포감금협박이 14.5%, 성폭력이 2.9%, 살인이 0.6%, 기타14.8% 다. 데이트는 보통 두명의 사람이 하는 행위이므로 가해자비율이 곧 해당 항목의 피해자 비율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또한 지금까지 데이트 폭력의 피해자를 성인 여성이라고 한정했던 것과는 다르게 다양한 연령층에서 피해자가 나오고 있다. 이 중 10대는 평균 4~5%다. 비율로만 보면 역시 10대에서는 폭력의 정도까지 갈등이 지속되지 않는 듯 보인다. 하지만 그 10대는 곧 20대, 30대가 된다. 2~30대는 전체 신고건수의 60%로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가볍게 여겼던 어린 학생들의 관계 안의 폭력이 성인이 되어 보다 큰 자유를 접했을 때 증폭된 것은 아닐까. 필자는 10대들의 낮은 신고 비율의 배경에 억압적인 이성교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서울시립청소년성문화센터에 따르면 초등학생 41.5%, 중학생 37.8%, 고등학생 46.3%가 과거 연애를 했거나, 현재 하고 있다고 답했다. (3천여 명 대상) (위의 설문 결과를 찾기가 매우 힘들었다. 각종 통계사이트에서는 청소년의 성 경험 여부에 관한 통계만을 수집하고 있다. 단적인 예지만 사회는 청소년의 연애에 큰 관심을 두지 않는 듯하다) 또한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의 연구 결과 이성 교제를 경험한 학생 3명 중 1명은 교제 중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는 말을 듣거나 다툼 중에 폭언에 시달렸다고 한다. 한 반에 평균 30명이라고 하면 13명 정도가 연애를 하고 그중 4명 정도가 데이트 폭력의 피해자라는 뜻이다.


그런데 왜 신고접수는 많이 되지 않았을까?


학생들의 대다수가 비밀연애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어른들에게 비밀인 연애’. 2013년에 전국 중, 고등학교 가운데 81%가 이성 교제 금지 교칙을 두고 있다는 기사가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정해진 횟수만큼 이성 교제 사실을 들키게 되면 퇴학을 시키는 등의 조항이 포함된 교칙이었다. 4년이지난 지금 학생 인권은 많이 발전하지 못했고, 청소년은 여전히 성적 자기결정권을 비롯한 자유의지, 더 나아가 학습권을 침해당하고 있다. 어떤 종류이든 폭력을 당했을 때 학생들은 사회에 도움을 요청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친구를 제외하고 부모님, 선생님, 상담기관, 경찰 모두가 다 어른이다. 도움을 요청하면 대부분은 “그러게 학생 때는 공부나 하지 무슨 연애를 해 가지고선!”등의 모욕적인 어투로 시작하는 상투적인 잔소리가 이어질 뿐이다.


필자도 대입을 준비하며 첫 연애를 시작했다. 분명 상호 간의 존중과 배려가 있었고, 나름 진지했으며, 스스로는 서로에게 도움을 주는 괜찮은 관계였다고 자부하지만, 부모님께 교제 사실을 알린 건 대입 이후 우연한 기회를 통해서였다. 부모님이나 선생님에게 교제 사실을 알리게 되면 그 후 모든 실수와 실패의 원인은 단 하나로 규정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청소년기의 연애’ 특히 대입을 앞둔 ‘고등학생의 연애’는 환영받지 못한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당사자가 가장 잘 알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데이트 폭력 사실을 신고하기란 쉽지 않다. 데이트폭력의 특징, 사회의 인식, 청소년이라는 사회적 소수자의 위치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중고등학생들의 아픔을 방치되게끔 한다.




혹시라도 데이트 폭력 피해학생이 이 글을 보고 있다면.


헤어질 만큼 폭행이 심하지 않아서, 사랑하기 때문에, 평소에는 정말 좋은 사람이라서, 실수를 인정하고 용서를 빌었기 때문에 등의 이유로 신고를 꺼리거나 참고 있다면 당장 그만두길 바란다. 둘 사이의 연인 관계가 가해자에게 처벌을 피할 수 있게 해주는 가림막으로 작용하지 않도록 스스로를 피해자로 생각하는데 조금의 수치심도 느끼지 않았으면 한다.


폭력을 당한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너를 사랑해서 그랬어”라고 말하는 가해자에게 “다시는 그러지 마”라고 말하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이다. 지속해서 진행되는 폭력이라면 그게 언어적이든 신체적이든 반드시 증거를 남겨두어야 한다. 주변에 학생을 도와줄 수 있는 제대로 배운 어른이 있다면 정말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 잘 알고 있다. 큰마음 먹고 신고하러 간 경찰서에서 혹은 상담기관에서 “어린 학생들이 사귀다 다툰 거 아니야? 둘이서 잘 해결해보렴”, 혹은 “학생에게도 뭔가 이유가 있지 않을까?” 따위의 답변을 받을 수도 있다. 그래도 끊임없이 전문상담기관이나 공적 지원체계에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


데이트 폭력은 살인 등의 강력 범죄로 이어지는 비율이 높고, 재범률이 77%(치안정책연구소_2005년~2014년, 데이트폭력범죄자의 평균재범률)에 이른다. 또한, 가해자가 피해자의 지인과 가족에게 까지 보복성 추가범죄를 행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초기 신고가 중요하다. 학생이기 때문에 데이트폭력이 학교 폭력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경찰 또한 데이트 폭력코드 신설, 담당 형사 핫라인 구축, 스마트워치 지급, 피해자 보호 시설제공, 신변경호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의 개선을 보이니 신고 및 상담을 긍정적으로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여성긴급전화 1366 / 청소년전화 1388 / 상담 및 신고기관 112


폭력에 예민한 사람이 되자.
우리 사회는 지금보다 더 폭력에 예민할 필요가 있다.


만약 여성이라면 ‘한국여성의전화 2016 데이트 폭력 실태조사 결과분석’에서 더 많은 관련 정보를얻을 수 있다.





본 칼럼은 ©TENDOM Inc.과 한국청소년재단이 함께 운영하는 '애드캠퍼스 온라인 칼럼멘토단' 소속 대학생 멘토가 대한민국의 청소년들을 위해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담은 글입니다. 글의 내용은 운영기관의 공식의견이 아니며, 일부 내용은 운영기관의 의견과 다를 수도 있음을 밝힙니다. 칼럼은 출처를 밝히는 한 자유롭게 스크랩 및 공유가 가능합니다. 다만 게재내용의 상업적 재배포는 금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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