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워킹홀리데이 일곱 번째
뉴질랜드, 여기 넬슨 작은 방에 지낸 지 삼 개월이 지났다. 그동안 이곳에서 겪었던 많은 일들을 사진으로, 메모로 잔뜩 남겨 두었지만 막상 생각을 정리하여 글로 남기는 일은 하루 이틀 미루다 보니 어느새 지난 사진에서 계절의 변화가 느껴진다. 다시 오지 않을 소중한 순간들을 글과 사진으로 남기고 나누겠다는 생각이 바랜 이유는 밝고 예쁜, 내가 좋아하는 뉴질랜드의 초록초록한 이야기들만 다루고 싶었던 마음 때문이었다. 몸이 힘들 때, 잔과 삐걱거리는 일이 생길 때, 늘 그랬듯이 컴컴한 미래 때문에 불안할 때,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한 순간들이 그리워질 때에는 무너진 마음을 바로 세우고 그럴듯한 사진에 어울리는 글을 쓰기는 쉽지 않았다. 뉴질랜드의 격한 일교차 못지않게 내 마음의 기온 차이도 컸고, 그 평균 온도는 낮았다.
나는 모아둔 돈도 없고, 외국에서 써먹을 수 있는 유용한 기술이나 경력도 없고, 생각보다 형편없는 영어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가서 부족한 나를 드러내며 다가갈 수 있는 뻔뻔함과 용기가 없었다. 아무래도 황홀한 여행지에서 큰 감명을 받고 덜컥 결정한 '외국에서 살아보기'에서는 예상하기 어려웠던, 어쩌면 현실에서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애석하게도 내게는 부족했다. 현지인들과 부딪힐 때마다 오히려 자존감은 떨어졌고 실패가 뻔해 보이는 단단한 벽에 달려가서 깨지고 싶지 않았다. 결국 구인구직 웹사이트를 지겹도록 바라보다 조금은 덜 단단해 보이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초밥 가게를 직접 찾았고 나는 그날 바로 고용이 되었다.
우리 가게는 주로 테이크아웃 김초밥을 판매하고 있다. 오픈을 맡은 날은 일곱 시 반에 가게 문을 열고 먼저 엄청난 양의 쌀을 씻어 커어다란 영업용 쿠쿠 밥솥에 밥을 짓는다. 갓 지은 밥을 단촛물에 휘리릭 섞고 나서는 초밥 속에 들어갈 닭고기와 소고기를 조리한다. 태워서는 안 되지만 불맛은 나야하며 너무 많이 익혀서는 안 된다. 요리 초보인 내게는 갑이 내리는 요상한 디자인 주문같이 들렸지만 이것이 이 작은 불판 위의 요리 세계였다. 지금은 기름을 따라 붉은 불길이 팔을 휘감아도 꿈쩍하지 않는 담대함이 생겼지만 아직도 화끈한 열기에 눈이 침침해지거나 뜨거운 기름이 손에 튀어 화상을 입기도 한다. 어떤 날은 전기 프라이팬에 연결하던 전선이 뻥하고 터지는 바람에 전선을 잡고 있던 손이 숯검댕이가 되기도 했다. 이 날은 너무 놀라고 억울해서 눈물이 핑 돌기도 했다.
김발 위의 세계도 녹록지 않다. 고슬고슬한 밥알을 짓누르지 않고도 썰었을 때 초밥 단면이 예쁘게 나올 수 있도록 재료를 배치하여 형태를 잡아야 하고, 김이 밥알 사이로 밀려 들어가서 동그라미를 망가뜨려서는 안된다. (이것이 김밥과 김초밥의 차이라고 사장님이 강조하셨다.) 완벽하고 동일한 동그라미 안에 밥알과 공기와 모든 재료가 색도 곱게 어우러져야 이것이 모두가 원하는 공기 반 소리 반의 김초밥이 된다. 그리고 이어지는 재료 준비와 청소. 칼날에 손을 베는 것은 나의 칠칠함으로 볼 때 당연히 예상했던 수순이었고, 표면이 날카롭기로 유명한 강판으로 당근 채를 만들다가 손가락도 같이 밀어버리거나, 설거지를 하다가 뜨거운 물에 손을 데는 일도 많다. 20KG 쌀포대를 들어 옮기고 빈 통에 쌀을 채워 넣으려면 나도 모르게 우주의 힘을 모아 기합을 내지른다.
점심 겸 쉬는 시간 15분을 제외하고는 온종일 서있는 좁은 가게에서 그나마 계산대를 마주하고 손님을 상대하는 시간이 내게는 휴식 같은 순간이다. 친절하고 매너 좋은 손님들은 그저 계산을 마치고 초밥을 봉투에 담아주는 일에도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길에서 눈만 마주쳐도 입고리를 올리며 웃어 주는 사람들의 칭찬이란 '굉장해! 아름다워! 완벽해!'의 연속이다. (이곳 손님들은 'Cheers!'를 자주 쓴다. 나도 건배할 뻔.) 회사에서 몇 년을 더 일했다면 상사에게 이런 말을 들을 수 있었을까. 하지만 기분 좋은 칭찬을 연달아 들어도 결국 나는 이곳에서 행복하지 않다. 초밥 만들고 파는 것은 좋아하는 일, 계속하고 싶은 일, 보람 있는 일이 아닐 뿐만 아니라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일도 아니었고, 쉬이 적응이 되지 않는 고된 일에 몸이 망가지는 게 느껴졌다. 이럴 때는 길을 잃은 기분이다. 나는 뉴질랜드에서 초밥을 만들고 있는 나를 상상해본 적이 없었다.
워킹홀리데이를 결심하고 주변에 알린 이들은 한 번쯤 이런 조언을 들어봤을 것이다. '되도록 한국인을 멀리하고 웬만하면 한국인이 운영하는 업소에서는 일하지 말라.' 요즘 나는 이 말에 짓눌려 한 대도 맞지 않았는데 왠지 진 기분이었다. 나도 모르게 부모님께 일식 레스토랑에서 일한다며 적당히 얼버무린 취업 소식을 전했고, 지인들에게도 일터에 대해 자세한 이야기를 늘어놓은 적은 없다. '뉴질랜드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 혹은 간단히 '외노자'라는 근황 소개와 약간의 징징거림이 전부였다. 그리고 가끔 SNS에 올리는 아름다운 풍경으로 내 삶을 포장하려고 했다. 짧은 휴일에 대자연 속에서 지친 몸과 마음을 위로받으면 힘든 일주일을 버틸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머지 6일이 행복하지 않다면 결국 나는 행복하지 않은 것, 그래서 더 이상 초밥집에서 일한다는 사실이 나를 우울하게 만들도록 내버려 둘 수가 없다. 나는 여기서 행복해야 했다.
퇴근길에 산책을 하다가 고슴도치를 만나면 나는 행복하다. 드라이브를 하면서 마주치는 양 떼의 엉덩이를 바라보면 나는 행복하다. (그들은 늘 무언가를 먹고 있어서 얼굴보다 엉덩이를 마주하는 순간이 잦다.) 잔잔한 바다에서 카약을 타다가 어느 거친 바위 위에 축 늘어진 물개를 만나면 나는 행복하다. 커다란 나무들이 뿜어내는 푸르름을 마시면 나는 행복하다. 맑은 개울에서 물놀이를 하는 아이들을 만나면, 해변에 누워 빠르게 변하는 구름을 바라보고 있으면 나는 행복하다. 그리고 이 모든 행복을 아주 쉽게 누릴 수 있는 곳이 뉴질랜드다. 깊은 사정은 알 수 없지만 이 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대부분 행복해 보인다. 적어도 여기 넬슨에서는 서울 친구들이 출퇴근 길에 늘 마주친다는 날이 선 사람들은 찾아보기 힘들다. 나는 행복한 사람들을 바라보고 그 행복의 일부를 공유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
이 행복은 철저하게 보장되는 저녁 있는 삶(가게는 오후 5시 30분이면 문을 닫는다.)과 법규에 따라 매주 꼬박꼬박 지급되는 임금 덕분이다. 다정한 직장 동료들과 상냥한 손님들 사이에서 정직하게 몸을 써서 정당한 대가를 받는 일도 이방인에게 주어진 행복이다. 나는 꽃과 나무가 가득찬 공원에서 오리에게 나홀로 인사를 건네며 출퇴근을 한다. 출퇴근길에 나와 눈이 마주치는 사람들은 가볍게 인사를 건네거나 입꼬리를 올려 미소를 만들어 준다. 게다가 초밥은 언제나 맛있고, 나는 적어도 이틀에 한번 꼴로 초밥을 먹는다. 이제 나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초밥 가게에서 일하는 것을 창피하게 생각할 이유가 없다.
여러분, 저는 지금 넬슨의 초밥말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