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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마요 Aug 19. 2017

엄마, 나 돌고래랑 수영했어!

뉴질랜드 캠핑 여행 'CURIO BAY'



"뭐시라쿠노 위험하게."


거제도에 있는 엄마는 흥분한 내 목소리가 묻어나는 문자에도 전혀 동요치 않고 내 안부를 걱정했다. 연이은 뉴질랜드의 멋진 풍경을 담은 사진 공세에도 휴대폰을 가로저으며 오직 내 얼굴이 가득 찬 사진을 요구한다. 몇 번쯤 수줍게 셀카를 찍어 보내도 봤지만 엄마는 이왕이면 예쁜 사진을 보내라고 다그쳤다. 캠핑 여행 중에 예쁨은 쉽지 않았다. 나는 결국 작년 어느 아름다웠던 결혼식에서 받은 부케를 들고 활짝 웃고 있는 사진을 보냈다. 이내 엄마의 카카오톡 프로파일 사진이 슬쩍 내 사진으로 바뀐다. 이렇게  오늘도 엄마 아빠의 폭발적인 반응 유도는 실패했지만 그토록 염원하던 돌고래와 수영을 했으니, 뉴질랜드 남쪽 끝을 향한 긴 여정은 성공이다.


바다사자를 건드리면 위험할 수 있어요.


남섬 여행지를 추천해달라는 내 짧은 영어 질문에 본격 키위 마이클은 그곳으로 가면 돌고래와 서핑을 할 수 있다며 말랑한 내 가슴에 돌을 던졌다. 덕분에 남섬 여행을 출발한 지 한 시간만에 비로소 최종 목적지가 정해졌다. 우리는 뉴질랜드 남섬 최남단인 슬로프 포인트(Slope Point) 옆에 있는 큐리오 베이(Curio Bay)까지 가야만 했다. 그리고 일주일 후, 인적없는 들판을 지나 휴대폰이 터지지 않는 황량한 곳, 우리는 마침내 돌고래 놀이터에 도착했다. 두근대는 마음을 안고 캠프 사이트로 향하는 길에 마주한 경고문에 가슴이 철렁한다. 세상에 바다사자를 조심하라니, 어떡해, 여기 바다사자도 있나 봐. 오, 나 여기 너무 좋아. 나 되게 조심할래. 라고 생각했다.



널찍하게 펼쳐진 바다는 생각보다 한적했다. 물이 빠져 더욱 넓어진 백사장에는 작은 웅덩이가 있었고, 따뜻한 햇볕에 적당히 데워진 얕은 물은 이미 꼬맹이들의 차지였다. 어린 생명체의 싱그러운 소리와 몸짓은 지나치게 사랑스러워 돌고래와 바다사자를 잠시 잊게 했다. 그중에서도 제일 작은 꼬맹이가 엉금엉금 팔과 다리로 백사장을 누비는 모습은 알을 품은 어미 바다거북을 닮았다. 너무 귀여워 연신 터져 나오는 괴성을 겨우 삼키며 걸음걸음을 비디오로 남겼다. 그제야 저 멀리 파도 속에서 함께 출렁이고 있는 몇 무리의 사람들이 보였다. 그중에는 무엇보다 리드미컬하게 파도를 타고 있는 작고 검은 것 무리가 있었다. 세상에서 제일 작다는 헥터 돌고래였다.


사랑스러운 가족이 바라보고 있는 헥터 돌고래 두 마리


멸종 위기인 작은 돌고래가 파도를 오르내리며 스칠 때마다 바닷물에 몸을 담근 사람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나는 꽉 조이는 레깅스를 최대한 걷어 종아리까지 바닷물에 담그고 사랑스러운 움직임을 바라보았다. 서핑 보드 위에 몸을 싣고 가만히 떠있는 서퍼 곁을 맴도는 돌고래의 부드러운 담금질이 다음 날 서핑 강습에 대한 기대치를 무한 끌어올렸다. 내일은 스윔슈트를 입고 바다에 몸을 던지리라. 해지는 차가운 바다를 뒤로 하고 캠핑카로 돌아가는 길, 서핑 교실 앞에는 작은 안내판이 세워져 있었다. '내일은 수업이 없어요.' 내일이 전부인 내게는 꽤 슬픈 소식이었다. 발목이 조금 늘어난 레깅스처럼 몸 한 구석이 헐렁해졌다.


노란 눈 펭귄의 서식지로도 유명한 큐리오베이 홀리데이 파크. 캠프 사이트는 비싸고 불친절했지만 티켓이 예뻤다.
거대한 바다 식물이 출렁이는 모습을 지켜 보는 것만으로도 오금이 저렸다.
1억 8천만년 전 삼림 화석이 있을지도 모르는 해안 암벽 끝에서 낚시왕 심건.
뾰족하고 커다란 식물 울타리에 둘러쌓인 큐리오 베이 홀리데이 파크.


붐비는 홀리데이 파크를 몇 바퀴 돌아 낡은 캠핑카 옆에서 겨우 빈자리를 찾았다. 평편한 땅을 골라 자리를 잡느라 잔은 몇 번이나 운전대를 돌렸다. 기울어진 땅에 자리를 잡으면 자다가 누군가를 쉽게 덮치거나, 은근히 피가 발이나 머리로 쏠리는 수가 있다. 마이클과 잔은 저녁 거리를 마련하기 위해 낚싯줄을 물에 담갔고, 나는 웅덩이를 뛰어 다니며 작은 물고기나 게 따위를 쫒았다. 거대한 바다 식물을 피해가며 깊은 바다에서 낚시를 하기 쉽지 않았다고 한다. 두 남자가 바다 사냥에 실패한 탓에 저녁 메뉴는 짜파게티였다. 갑자기 내리는  비를 피해 두 캠핑카에 천막을 연결하고 주방을 마련했다. 급히 식사를 마치고 천막을 그대로 둔 채로 잠을 청한 탓에 거센 바람이 천막에 부딪힐 때면 돛대를 펼친 것처럼 부웅하고 차가 들썩거려 잠을 설쳤다. 요란한 그라피티가 그려진 캠핑카의 주인은 뜻밖의 노부부였다.


먼저 세상을 떠난 이와의 추억을 기리는 의자가 놓여 있던 언덕


다음 날 아침, 바닷가 근처 주차장에 차를 옮겨 두고 산책을 하는 중에 발견한 안내문이 나는 무척 마음에 들었다. 바다사자를 만나지 못해 잔뜩 쌓인 불신을 닦아내는 안내문이었다. 내 마음대로 해석하자면 이렇다. ‘절대로 돌고래에게 다가가지 마세요. 그들이 당신에게 다가오도록 두세요. 거리를 두지 않고 다가가면 그들은 놀라서 도망갈 거예요. 돌고래를 유혹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냥 물에 떠 있는 거예요. 대신 먹이를 주거나 만져서는 안 돼요. 뉴질랜드에서 돌고래를 방해하는 것은 불법이에요.’ ‘disturb’의 여러 가지 뜻 중에서 아마도 ‘(환경)을 교란시키다. 파괴하다’ 쯤이 알맞은 한국어겠지만 나는 내 번역이 마음에 들었다. 저렇게 귀엽게 노는 돌고래를 방해하는 것은 불법이어야 한다. 마침 얼마 전 울산의 고래생태체험관에서 일주일도 견디지 못하고 폐사한 돌고래의 소식이 떠올랐다. 친절한 뉴질랜드 안내문을 울산 시청에 공문으로 보내고 싶은 심정이었다.


Never approcach a dolphin. Let them come to you.


다시 찾은 해변에는 바닷물이 많이 밀려와 있었다. 그리고 어김없이 사랑스러운 돌고래가 파도를 즐기고 있다. 우리는 비좁은 차 안에서 몸을 구겨가며 수영복을 챙겨 입고 바다로 들어갔다. 조금만 손을 뻗으면 닿을 곳에 돌고래가 헤엄을 치고 있었지만 바다는 너무나 차가웠고 커다란 파도는 쉬지 않고 밀려와서 정신이 없었다. 안내문의 조언대로 바다에 가만히 누워 있으면 그대로 모래 사장에 처박힐 것만 같은 파도였다. 지느러미도 없는 맨몸 인간이 헤엄치는 돌고래에게 가까이 간다는 것은 애초에 어려운 일이었다. 나는 발이 간신히 닿는 곳에 서서 파도가 덮칠 때마다 코를 막고 물속으로 몸을 숨겼다. 몇 번이고 파도 밑으로 숨기를 반복하고 있을 때, 내 눈 앞에 스쳐 지나가는 돌고래가 보였다.


photo by @jan.flim



돌고래들은 빠르게 내 옆을 지나가며 커다란 파도를 즐겼다. 운명의 남자를 만난 것처럼 천천히 흐르던 그 순간은 정말 꿈을 꾸는 것 같아 물 밖으로 나온 뒤에도 흥분이 가시지 않았다. 뉴질랜드 정부는 돌고래를 보고 흥분하여 심장이 아플수도 있으니 침착하라는 문구를 안내문에 넣어야했다. 저멀리 깊은 바다에는 안내문 따위는 까맣게 잊고 돌고래를 쫒으며 실컷 흥분한 남자도 있었다. 차가운 바닷물에 들어가길 마뜩잖아하던 잔이었다. 비록 나를 재쳐두고 물귀신에 홀린 사람마냥 깊은 바다 속 더 많은 돌고래 틈에서 홀로 소리를 지르고 있었지만, 사랑하는 사람과 소중한 순간을 공유할 수 있어 감사했다.  

무서워서 얼굴만 빼꼼 photo by @jan.flim


누군가 뉴질랜드 여행에서 가장 좋았던 곳이 어디냐고 물으면 나는 큐리오 베이를 꼽는다. 물론 헥터 돌고래는 내가 코를 움켜쥐고 잠수를 하고 쳐다보고 있는지 따위에는 관심도 없었겠지만, 나는 돌고래와 함께 수영을 했다고 뻔뻔하게 자랑을 하고 있다. 흰 머리가 우리를 덮치기 전, 낡은 캠핑카를 타고 다시 찾은 큐리오 베이에서는 둥실둥실 깊은 바다에 몸을 띄우고 돌고래가 내게 다가 오기를 기다릴 것이다. 그때는 돌고래가 내게 먼저 찝쩍거렸다고 동네방네 자랑을 할 것이다. 기회가 생길 때마다 바다 수영을 연습해야할 이유가 생겼다. 돌고래가 그려진 수영복이 있다면 무슨 일이있어도 사고야 말 것이다.




구글링으로 큐리오 베이 돌고래를 검색하면 제가 얼마나 흥분을 했는지 간접 경험할 수 있습니다.


해가 지기 전에 낚시를 접어라 이것들아.
photo by @jan.fl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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