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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마요 Jul 23. 2017

양치기가 된 기분이다.

뉴질랜드 과수원 우핑


Sue가 양을 불러 모으면 우퍼(wwoofer)들은 단 하나의 퇴로만 남겨 두고 양을 한 방향으로 몬다. 닦달하거나 겁을 주면 당황한 양이 울타리를 넘어 도망가는 수가 있으므로 서두르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양이 무리를 이탈하지 않고 잘 도착할 때까지 천천히 뒤를 따라 걸으면 즐거운 아침 임무가 무사히 끝난다. 출렁이는 양의 뒤태를 보는 것은 언제나 즐겁다. 하지만 나는 몇 마리 양이 우리 뜻대로 움직이지 않고 대나무 숲으로 숨거나 샛길로 빠질 때가 더 좋다. 양을 따라 쫒아 좁은 대나무 길로 들어가거나, 다시 짝을 지어 무리를 벗어난 양을 몰 때면 더욱 양치기가 된 기분이다.



비가 많이 내리는 오클랜드 겨울, 과수원의 땅은 무척 질어서 잔디가 벗겨진 곳을 디딜 때면 엄청난 진흙이 장화에 묻어난다. 장화도 신지 않고 이 진흙땅에서 생활하는 양들을 위해 주기적으로 발톱을 체크해야 한다. 먼저 양을 번쩍 들어 뒤로 눕힌 다음 어르고 달랜 양의 발톱을 자른다. 쌍둥이를 임신해서 몸이 불어난 언니들은 힘 센 John 아저씨가 직접 다루는데, 몸부림이 심한 녀석들이 앞뒤로 John과  Sue를 들이받아 넘어지기도 했다. 겨우 진정시킨 양의 발톱을 붙잡아 이물질을 제거하고 상태를 확인한 후에는 초록색 소독약을 바른다. 발톱이 아픈 양은 이마에 주홍글씨를 갖는다. 이 녀석들은 관심 양이 되어 지속적으로 관리를 받는다. 발톱 관리가 끝나면 초로색 패디큐어와 주황색 염색으로 멋 부린 양들은 자유를 찾는다. John이 내게도 패디큐어를 권했지만 사양했다. Sue는 스무 마리 중에 한 마리만 수컷이고 이 놈은 눈에 띄게 덩치가 작아서 성별을 쉽게 구분할 수 있다고 했다. 수컷은 일 년에한 번씩 다른 놈으로 교체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니, 왠지 녀석이 좀 더 작아 보였다.



Clara가 독일로 돌아가는 날, 일을 마친 우리는 차로 15분가량 떨어진 Bethells Beach로 나들이를 떠났다. 오클랜드 서쪽에 있는 이 해변은 검고 고운 모래와 석양으로 유명하다. 일부 한국인들에게는 태연이 뮤직비디오를 찍은 장소로 알려져 있다고 하는데, 나는 그저 오랜만에 만난 바다가 반가웠고, Clara는 마지막으로 보는 뉴질랜드 바다라서 신이 났다. 해변의 왼쪽 끝에는 두 개의 동굴이 있었는데 동굴 입구까지 들이치는 바닷물 때문에 처음에는 감히 들어갈 엄두가 나질 않았다. 그러나 우리는 John 아저씨의 구호에 맞춰 바닷물을 피해 두 동굴 속을 모두 구경할 수 있었다. 커다랗고 동그란 입구를 가진 동굴은 내부가 온통 초록색으로 뒤덮여 인상적이었지만 멀리서 바라보았을 때 상상했던 것만큼 멋있지 않았다. 동굴에는 속을 보여주지 않을 때 완성되는 매력이 있다.



Clara는 끼가 많았다. 쉬는 시간 동안 숙소에서 우쿨렐레를 연주하거나 그림을 그렸다. 그녀의 그림에는 환경을 오염시키는 인간의 추악함을 드러났다. 뉴질랜드에서는 대부분 우핑을 하며 여러 나라 친구들을 만났고, 지난달 독일에서 온 아버지와 함께 캠핑카를 빌려 3주 정도 뉴질랜드 이곳저곳을 여행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제 독일로 돌아가면 대학을 진학할 예정이다. 나는 돈 한 푼 벌지 않고도 즐겁게 뉴질랜드를 즐기고, 제법 딱 부러진 계획을 가지고 본국으로 돌아가는 독일의 청년들이 부러웠다. 누군가 내게 워킹 홀리데이가 끝나면 무엇을 할 것이냐고 물어볼 때마다 제대로 대답한 적이 없었기에 가끔 나 스스로 주눅이 들었기 때문이다. 워홀을 다녀 와서는 대체 뭐 하고 살 거냐는 부모님의 물음에도 나는 주저했었다. 그저 다양한 경험을 해보고 싶다는 내 대답은 부모님의 물음을 전혀 만족시키지 못했다.



Clara가 떠난 날, 우리는 돼지 목살에 바비큐 소스를 발라 구워 먹었다. 채식주의자가 떠난 숙소에서 오랜만에 뭉친 육식주의자들의 파티였다. 나는 삶은 달걀을 넣은 감자 샐러드와 사과를 잘라 넣은 어린잎 샐러드를 만들어 육식을 거들었다. 달걀노른자를 가루로 만들어 뿌려 완성한 감자 샐러드는 제법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라 다시는 만들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친구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이 보니 그새 흐뭇해졌다.



새로운 우퍼들이 도착했다. Ryan은 지질학과 원주민 문화에 관심이 많아 캐나다에서 뉴질랜드까지 왔다. 드디어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우퍼가 나타난 것이다. Ryan 덕분에 우리는 말문을 트기가 더욱 수월해졌다. 영어로 말을 꺼내는데 주저함이 없는 그는 대화를 주도하며 우리의 부족한 영어를 채워주었다. 캐나다 워킹 홀리데이를 앞두고 있는 내게 그는 '캐나다에서는 비니 같은 털모자를 'touque'이라고 불러.' '캐나다 원주민을 인디언이라고 부르면 안 돼.' 등 캐나다 영어나 문화의 특이한 점이나 청춘들이 즐겨 쓰는 슬랭을 조금씩 알려 주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맘에 들었던 슬랭은 'That's sick!' 우리말로 따지면 '존나 멋있어'였다.



다음 날 도착한 독일 커플, Markus와  Hanna는 4개월의 뉴질랜드 캠핑카 여행을 끝내고 이곳에 도착했다. 내가 묵는 방에는 내가 쓰는 싱글 침대와 빈 이층 침대가 하나 놓여있었는데, 이들이 나와 방을 같이 쓰게 되었다. 내심 쿨한 척 아무 상관없다고 말은 했지만 혈기 왕성한 커플과 한 방에서 생활한다는 것, 특히 잠을 잔다는 점이 내심 신경이 쓰였다. 게다가 나는 잠귀도 밝은데... 설마 이층 침대에서 별일이 생기겠냐며 조국의 친구들에게는 너스레를 떨었더니, 친구들은 별일을 바라는 분위기다. 오히려 별일이 생기면 다양한 경험을 바랐던 내 워홀 목적에 부합하는 셈이다. 비록 부모님께 자랑스럽게 말씀드릴 대답은 될 수 없겠지만, 나는 색다른 경험을 슬쩍 기대하게 되었다.



일을 일찍 끝낸 어느 날, 우리 다섯은 John 아저씨가 추천한 와이나무 호수(Lake wainamu)로 향했다. 검은 모래 언덕을 넘어가면 고요한 호수에서 수영도 할 수 있고, 트랙킹 코스를 따라가다 보면 근사한 폭포도 볼 수 있다고 했다. 겨울에 수영이라니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지만, 혹독한 캐나다 겨울에 비하며 뉴질랜드 북섬의 겨울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Ryan은 수영복을 준비했다. 청춘이구나. 그나저나 캐나다 겨울에는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길래 다른 나라 겨울 추위를 업신여기게 만드는 걸까. 불현듯 캐나다 구스에 강한 신뢰감이 생겼다.



지나간 이들의 발자취만 남은 검은 모래 언덕은 황량하고 외로웠다. 이 넓은 검은 모래가 언덕이 개인의 소유라고 했다. 우리는 소프트 럭비공을 주고받으며 적막함을 깨뜨리면서 모래 언덕을 올랐다. 부스스 무너지는 가파른 모래 언덕을 오르는 것은 쉽지 않았다. 사진을 찍느라 뒤쳐진 나는 앞서 가는 이의 발자국을 계단 삼아 모래 언덕을 올랐다. 다른 이의 발자국에 내 발걸음을 꼭 맞추어 같은 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고생이 줄어들었다. 내가 이렇게 감성에 젖어 힘들게 넘어온 고개 위에서 우리 청춘들은 기가 막힌 미끄럼틀을 발견했다며 들떠 있었다. 그리고 가지고 온 프리스비를 썰매 삼아 언덕을 신나게 내려갔다. 내리막 길 아래 강물에 처박힐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올라오는 길의 고생스러움 따위는 아량곳 하지 않고 순간의 쾌락을 즐기는 청춘들은 엉덩이를 겨우 가릴만한 간이 썰매를 내게도 내밀었다. 누나는 돌아오는 길에 할게. 다행히 청춘들은 돌아오는 길에 내 차례를 잊어버리고 지나쳤다.



휴대폰도 터지지 않는 검은 모래 언덕에서 길을 잃어버려 우왕좌왕하고 있을 때, 갑자기 잘생긴 말 두 마리가 달려와 쏜살같이 지나갔다. 난데없이 멋있어서 나는 길을 잃어버리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말을 따라간 시선의 끝에는 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말발굽을 따라 물을 거슬러 호수를 찾아가기로 했다. 지리 수업이 비로소 빛을 발한다. 벗어 든 신발을 손에 쥐고 찰방찰방 물을 밟으면 발가락 사이로 고운 모래가 파고든다. 검은 모래 때가 낀 맨발로 마지막 언덕을 넘어서니 탁 트인 호수가 펼쳐졌다. Ryan은 겉옷을 벗고 호수로 뛰어들었고, 나올 때는 욕을 했다.



길을 잃어버리는 바람에 시간이 촉박했지만 폭포를 꼭 봐야겠다는 생각에 유일하게 마주친 사람들에게 길을 물어 찾아가기로 했다. 맨발로 강을 건너자 운동화를 디디면 순순히 내놓지 않을 듯한 진흙길이 이어졌다. 소 발굽과 말발굽이 깊숙이 흔적을 남긴 그 길을 우리도 맨발로 올랐다. 숲 속의 진흙길을 맨발로 오르며 이것이 진정한 호빗 투어라며 농담을 했다. 그러나 우리는 이윽고 나타난 자갈길의 강제 발바닥 마사지에 괴로워했다. 처참하게 더러워진 발 때문에 신발을 신을 수도 없고, 발바닥이 아파 빨리 걸을 수도 없는 상황이 되어서야 왜 호빗의 발바닥이 커다랗고 두툼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발굽도 두터운 발바닥도 없는 나약한 인간들이 신음 소리를 뱉어가며 겨우 도착한 폭포는 다행히 아름다웠다. 나는 폭포가 부서지는 물에 발을 씻고 얼른 등산화를 신었다.



좁은 숲길을 따라 돌아가 길에 갑자기 커다란 사냥개 두 마리가 잔뜩 화를 내며 달려왔다. 나는 본능적으로 옆에 있던 Ryan 뒤에 숨었다. 사냥개는 우리에게 잠깐 한눈을 팔았지만, 이내 미친 듯이 어디론가로 향했다. 뒤늦게 달려온 사냥개 주인은 우리에게 사과를 하고는 급하게 개를 쫒아 갔다. 그는 멧돼지를 잡으러 가는 길이라고 했다. 독서도 영화 감상도 아닌 사냥이 취미인 사람을 드디어 만났다. "It's okay. It's okay." Ryan은 놀란 나를 달랬다. 멧돼지가 주변에 있다는 사실보다 열 살이나 어린 동생 뒤에 숨은 것이 부끄러워 소름이 돋았다.



다행히 집으로 살아서 돌아가는 길, 노을 아래 검은 모래를 누비는 바이크가 있었다. 이 넓고 외로운 모래 언덕이 개인에게 대체 무슨 쓸모가 있을지 궁금했었는데, 엄청 잘 쓰고 있었다. 붉은 노을까지 누군가의 소유였다면 부러워서 꽤나 배가 아팠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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