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우핑 생활
뉴질랜드의 겨울을 살고 있다. 내가 살고 있는 오클랜드 근교 시골은 요즘 최고 기온이 15도, 최저 기온이 10도 정도로 믿기지 않을 정도로 따뜻한 겨울이다. 그래도 겨울답게 해가 귀하다. 아침 일곱 시 반이 지나서 떠오른 해는 다섯 시가 넘으면 종적을 감춘다. 덕분에 저녁 식사 후에는 수분 섭취를 최대한 자제하고 있다. 숙소 밖에 있는 화장실에 가려면 서른 계단을 올라야 하는데, 해가 지면 세상 무섭다. 온갖 잡새가 노래를 한다.
과수원의 일꾼답게 굉장히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 여섯 시 반쯤 꿈틀꿈틀 일어나 조용히 거실에서 삼십 분 정도 요가를 한다. 어쩌다가 이효리가 요가하는 영상을 보고 잊고 있었던 요가 욕망이 다시 터진 덕분이다. 사실 요가하는 모습을 다른 친구들이 쳐다보면 부끄러우니깐 일찍 일어나게 된다. 요가가 끝나고 화장실에 들러 속된 것들을 쏟아내고 나면 오트밀에 이것저것을 넣고 죽을 끓인다. 독일 아가씨 Clara에게 레시피를 얻은 이후로 줄곧 아침으로 먹는 오트밀 죽은 빈속을 따뜻하게 데워 오랫동안 포만감을 준다. 어쩌면 많이 먹어서 배가 계속 부른 것일 수도 있지만, 나는 주문을 외우듯 죽을 젖는 고요한 아침 시간이 좋다.
우프(WWOOF)에는 다양한 형태가 있겠지만 우리 과수원의 식사 제공은 우퍼가 필요한 식재료를 쇼핑 리스트에 적으면 호스트가 제공해주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보통 아침과 점심은 각자 또는 끼리끼리 간단히 해결하고 저녁은 돌아가며 메인 요리사가 되어 다 같이 함께 즐긴다. 서양 음식에 익숙한 나와 달리 한국 음식에 익숙치 않은 아이들을 위해 요리를 해야 한다는 것은 꽤 고민이 된다. 게다가 이곳에서 코리언 마트에서나 구입할 수 있는 식재료를 요청하기도 어려운 탓에 늘 어정쩡한 요리가 탄생해 진땀을 흘리곤 한다. 반면에 친구들이 만들어주는 음식은 꽤 훌륭하다. 나는 특히 독일 친구들이 해주는 요리를 좋아한다. 건강한 재료로 담백한 맛을 내는 것들이 많다. 돌아가며 자국의 느낌이 가득한 음식을 요리하고 삼시 세끼를 함께하는 우퍼들은 덕분에 친해질 수밖에 없다. 낯선 곳에서 낯선 나라의 사람들과 24시간을 함께 보내는 특별한 시간이다.
아홉 시부터 열한 시까지 두 시간의 노동 후에 간단한 스낵과 함께 15분의 티타임을 갖는다. 호스트와 모든 우퍼가 도란도란 둘러앉아 수다를 떨다 보면 15분을 훌쩍 넘기는 경우도 많다. 대게는 호스트가 대화를 주도한다. 나는 최대한 집중해 보지만 60% 정도 겨우 알아듣는 것 같다. 그리고 오후 1시까지 남은 일을 마치면 하루 4시간의 노동이 끝난다. 이렇게 우퍼는 4시간의 노동을 제공한 대가로 잠자리와 식사를 해결한다. 호스트는 우리를 감시하거나 무리한 일을 시키지 않고 우리는 스스로를 재촉할 필요가 없다. 꽤 힘들지만 최소한의 의무와 책임이 있을 뿐 스트레스가 없는 노동 시간이다. 일이 끝나는 1시가 되면 호스트 John과 Sue는 언제 우리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잊지 않는다. 나는 그 인사가 고맙다.
점심 이후의 시간은 온전히 우퍼들의 자유 시간이다. 날이 좋으면 우리는 점심을 마치고 다 같이 과수원 근처의 트랙을 걷거나 바다로, 호수로 떠난다. 존은 우리가 외딴 숙소에 틀어박혀 있을까 오히려 걱정되어 주변의 숨겨진 명소로 우리를 데려가거나, 안내를 해준다. 그는 우퍼에게는 과수원 일을 돕는 것보다 뉴질랜드를 즐기는 것이 언제나 중요하다고 진심으로 강조한다. 해가 좋은 날, 점심 후에 노곤해진 몸이 늘어지다가도 존의 성화에 못 이겨 밖으로 나간 날도 몇 번이나 있었다. 그리고 그때마다 돌아오는 발걸음은 더 많이 피곤해진 만큼 무겁지만 뿌듯하다. 대게는 말 많은 친구들 덕분에 영어를 과다 복용한 탓에 귀가 더 피곤했다.
과수원에서 30분 걸음으로 떨어진 곳에 '와이타케레 공원(Waitakere Ranges Regional Park)'이 있다. 날씨가 유난히 맑은 날, 존 아저씨가 하이킹을 가라고 등을 떠밀었다. 하이킹은 이제 그만하면 되었다 싶은 마음이었지만 아직은 어색한 Therese와 친해지고 싶어서 아저씨를 따라나섰다. 'Cascade Kauri' 지역에는 10 여 개의 트랙이 있는데, 우리는 2시간 정도 걸리는 Dam까지 올라가기로 했다. 낯선 독일 아가씨와 나, 이렇게 둘이서 2시간을 걷는 길, 하이킹보다 힘든 영어 듣기와 말하기가 얼떨결에 시작되었다.
Therese는 독일의 한 대학에 입학 신청을 해두었다. 환경과 동물 복지에 관심이 많아서 관련학과에서 꼭 공부를 하고 싶다고 했다. 넉 달 동안의 짧은 시간 넬슨 근처의 사과 농장과 블루 베리 농장에서 일하고 모은 돈으로 뉴질랜드 여행을 마치고 독일로 돌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사과 농장 정말 힘들었다고, 그래도 돈을 많이 모았고 튼튼해진 덕에 각종 하이킹을 쉽게 정복했다고 했다. 뉴질랜드에서 제일 좋았던 경험은 고래 투어에서 커다라 고래를 본 것, 그녀가 보여준 사진을 보고 나는 헉하고 서글퍼졌다. 나도 고래 꼭 보고 싶었는데, 아무리 바다에서 고래를 불러봐도 소용없는 일이었다. 돈을 써야 고래를 볼 수 있다니 부들부들 속이 쓰렸다.
다행히 나는 쉬운 영어로 대답과 질문을 이어가면서 영어의 늪에서 하이킹을 즐길 수 있었다. 물론 내가 뒤에서 따라 걸을 때는 그녀가 말소리가 희미해져, 힘들더라도 늘 내가 앞서 걸었다. 영어가 이렇게 사람을 단련시킨다. 더구나 쉬울 줄 알고 선택한 코스는 난이도 3단계 정도로 꽤 가파르고 미끄러운 코스라 더욱 힘들었다. 옷을 한 겹 더 벗고, 신발이 만신창이가 되었을 때 마침내 댐에 도착했다. 댐에서 내려다보는 숲이 아름다웠다. 그리고 나는 "우리 꽤 높이 올라왔네."를 영어로 어떻게 말해야 하나 망설였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천 년을 넘게 살아온 카우리 나무를 만났다. 이렇게 커다란 나무를 만나면 나는 좀 더 겸손해진다. 그저 우러러보고 있는데도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 설마 나를 초파리 보듯이 바라보고 있지는 않겠지. 진작에 알았으면 나는 손목에 플라타너스가 아니라 카우리 나무를 새겼을 것이다. 말 한마디 없이도 위로를 전하는 존재가 고맙다. 영어로 말 걸었으면 좀 속상했을 것 같다. 대자연 사랑합니다.
돌아오는 길, 운 좋게 지나가는 차를 얻어 탈 수 있었다. 뉴질랜드에서 처음 시도한 히치하이킹이었다. 차를 몰던 검은 머리의 아저씨는 내게 중국인이냐고 영어로 물었다. 나는 침착하게 한국인이라고 전했다. 당연히 중국인인가보다 생각했던 아저씨는 한국어로 대답을 했다. 아, 오랜만에 아름다운 한국어였다. 오클랜드에서 살고 있는 아저씨는 특히 이 트랙을 좋아해서 일주일에 한 번 이상은 들른다고 하셨다. 아저씨는 꽤 좋은 차를 타고 있었는데 깨끗한 차 안을 더럽히고 싶지 않아 불편한 자세로 앉아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다. 뉴질랜드 정말 살기 좋다고, 직장 꼭 얻어서 여기서 살라는 꿈같은 이야기를 남기고 그는 우리를 과수원 입구에 내려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