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아빠가 가자고 할 때 따라나서라.
마침 비가 온 다음날이어서 공기는 더 투명했고 높고 파란 하늘에 펼쳐진 흰 구름이 조각처럼 아름다운 날이었다.
주말이면 해가 중천으로 넘어간 뒤에야 잠에서 깨어나는 아이를 어르고 달래 가며 납치하듯 차에 태웠다. 닭백숙을 먹자고 꼬시며.
우리의 목적지는 남한산성이었다. 남편의 목적은 이장우가 먹은 닭백숙을 먹는 것이었지만
나의 목적은 이장우가 보았던 서울의 전경을 보는 일이었다. 서로 다른 욕심을 안고 한 차에 올랐다.
산행이라고 하기에는 어른의 빠른 걸음으로 20여 분만 오르면 되는 왕복 한 시간도 되지 않는 코스였다. 그럼에도 남편은 움직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딸은 발목이 약한 상태이고, 아들은 산을 오르는 지도 모르고 길에 올랐으니 이 산행을 아름답게 마무리할 수 있을까 염려스러웠다.
역시나 경사가 조금 시작되자마자 남편은 헉헉대고 딸은 힘겨워했으며 아들은 무엇이 불만인지 저만치 혼자 앞서 걸었다. 손도 잡아주고 뒤에서 밀어주며 두런두런 재미나게 오를 것이라 기대하지 않았지만 모처럼 가족 나들이를 왔는데 신나 하지 않은 아이들 모습에 마음이 상했다. 그럴수록 나는 더 오버스럽게 큰소리로 웃으며 즐거워했다.
하지만 서문전망대에 오르자 고민은 모두 해결되었다.
탁 트인 전경을 보면서 마음이 꿍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터.
시원한 바람과 함께 도시의 전경을 바라보는 일은 우리 가족 마음을 넓게 만들어주었다.
자연이 주는 넉넉함 앞에 마음은 유들해졌다.
내려오는 길은 럭비공이 이리저리 튀듯 대화가 여기저기 튀어나왔다.
“등산 아니고 이 정도면 동산이네. 옷이 좀 불편해서 그렇지 힘은 안 들었어.”라는 아들의 멘트를 시작으로 불합격도 합격이다. 탈락도 락이다라는 언어유희를 알려준 딸. 그 말을 처음들은 나는 크게 웃으며 그런 삶의 태도는 너무 바람직하다고 말해주었다.
‘시험기간인데 돌아다녀도 되느냐. 우리 집은 왜 아무도 공부를 안 하냐. 우리는 아빠를 닮아서 공부를 안 하는가 보다’라며 공부 이야기를 했다가, 산이 낮아서 배가 안 고프다는 얘기를 하면서도 닭백숙을 다 먹고 찹쌀 도넛까지 야무지게 먹었으며, 운이 좋아서 주차도 빨리하고 산에도 잘 갔다 왔다며 지금도 주차를 못하는 사람들 걱정까지.
올라간 길과 달리 내려오는 길에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대화를 하느라 즐거웠다.
함께 걷는 길이 따뜻함이었고
함께 나누는 이야기가 즐거움이었으며
함께 바라보는 풍경이 예술이었다.
가족이 함께한다는 그 당연함 속에 일상의 행복이 가득 담겨있다.
그게 다다.
p.s 사춘기 자녀들아~ 부디. 방안에만 콕 박혀있지 말고 엄마 아빠와 대화를 좀 하렴. 모르긴 몰라도 기분 좋아진 부모님이 뭐라도 주지 않을까? 그게 용돈이든 닭백숙이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