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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괜찮은 죽음 Mar 09. 2024

내가 언제 이렇게 늙었을까

성이 다른 세 여자

세상은 변했는데 나는 정체되어 있다고 느낄 때가 언제일까?

아니, 변해가는 세상에서 나만 홀로 적응하지 못하고 뒤떨어져 있다고 느낄 때는 어떻게 해야 하지? 


그녀는 우리 중 가장 나이가 많았다. 

그럼에도 그녀에게 앳된 마음이 있다고 느낄 때가 있는데 

길 가다 예쁜 것이 있으면, 

무언가 신기한 것을 발견할 때면, 

어쩌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깔깔거리고 환하게 웃기 때문이다. 


"야야~~ 이것 좀 보래이~ 우째 이렇게 만들었을꼬? " 하면서 감탄하는 그녀를 보면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노후를 위한 것은 생각도 못하고 그저 오늘과 내일을 살아내기 위해 일을 하고 

어떻게 키워야 할지 방황하면서도 아이들을 자라난다. 

팍팍한 노동 속에 몸이라도 아프게 되면 

하늘 한번 보기 힘들고, 꽃 냄새 맡기 힘들고, 벤치에 앉아 그저 찾아오는 새소리 듣기도 힘들어진다. 

그렇게 늙어가기만 하진 말자. 

나도 세상 모든 것이 신기하고 재미있고 호기심 나는 일들로 감탄하며 살아보자.라고 생각했었는데, 

오늘 그녀는 매우 슬퍼했다. 


높은 건물이 우뚝 솟은 여의도도 아니었고, 

저마다 갈길 바쁜 테헤란로도 아니었다. 

그녀는 자기가 훅 늙었다고 슬퍼했다. 

깔끔하게 전시된 전자제품 매장 안의 인조 화분을 보고서 말이다. 


여인초와 몬스테라가 군데군데 놓여있었는데 

원래의 그것과는 달리 초록색의 싱싱함을 달고 있는 인조화분이었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을, 그저 그 공간의 장식품가 같은 화분을 만져본 그녀는 당황했다. 

살아있을 것만 같았던 화분이 생명이 없는 것이었다니. 


"나는 이게 살았는 줄 알고 만졌지 뭐야. 그런데 이게 아니었다. 너무 뻣뻣해.

내 좀 바보 같다. 세상이 이렇게 변했는데 그동안 몰랐네." 


아마도 그녀의 세상에서는 가게에 있는 화분은 진짜였을 것이다. 

살아있는 화분이 있어야 했다. 

빛이 잘 쬐어주고, 물도 적당히 주며, 잎의 먼지도 닦아주어야 하는 그런 살아있는 세계. 

정성을 들이면 그 보답을 얻을 수 있었던 세계말이다. 


그녀는 반으로 접는 핸드폰을 처음 만져보았고, 

장난감처럼 생긴 우스꽝스러운 이어폰을 처음 열어보았다. 

처음 본 신기한 세계 앞에서는 호기심을 반짝거렸지만

생명 없는 화분에서는 주저 없이 슬퍼했다. 

그녀의 슬퍼함에 나도 슬펐다. 

내가 그녀의 나이가 되었을 때가 잠시 보였기 때문이다. 

그녀보다 조금 더 젊은 그녀가 말했다. 


"나도 그래, 나도 내가 많이 늙었다고 느껴."


더 젊은 그녀보다 조금 더 젊은 내가 말했다. 


"그러니 우리, 매일을 행복하게 살아요. 오늘이 가장 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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