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요.
아직도 늦더위가 한창인 저녁 시간 아들과 마주 앉아 밥을 먹을 때였다.
“엄마 마음에는 하나님이 계셔?”
아들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마음을 쿡 쑤신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유난히 힘든 날이었다.
퇴근하고 집에 와 보니 아들은 배가 아프다며 화장실에서 한 시간째 나오지 않았고, 그로 인해 학원은 또 빠지게 되었다.
시간이 난 김에 병원이나 가자며 썽이 난 채로 아들과 함께 병원 진료를 보고 물리치료를 받고,
집으로 와 부랴부랴 저녁상을 차리면서 다용도실에 쌓여있는 재활용 쓰레기와 아직 정리하지 못한 빨랫감들이 눈에 들어왔다.
육퇴를 할 수 없는 직장맘의 괴로움에다가 갑상선 기능 항진증 때문인지 조금만 끼니때를 놓쳐도 기운이 빠지고 어질한 듯한 몸의 통증까지 겹치고 보니 짜증이 밀려왔다.
그런 상태에 하나님이 내 마음에 계시냐는 질문을 받는 일은 생각지 못한 사건이었다.
화가 났음을 온몸으로 표출하는 엄마의 태도를 더 이상 못 봐주겠다는 듯이.
“글쎄. 교회도 나가지 않는데 뭐가 예쁘겠어.”
“엄마는 내가 말 안 들으면 날 사랑하지 않아?”
“밉지. 특히 네가 아플 때는 자기 몸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는 것 같아서 속상하지. 네가 게임에 빠져있는 모습을 볼 때면 또 싫지. 하지만 그렇다고 너를 사랑하지 않는 건 아냐.”
“나는 하나님이 엄마와 함께 하신다고 생각해.
엄마. 엄마는 누군가를 위해 나를 희생시킬 수 있어?”
“못하지.”
“거봐. 하나님은 하셨어. 자기가 가장 사랑하는 아들을 희생시켰잖아.
수련회에 가서 뭘 가장 깨달았는 줄 알아?
하나님은 언제나 나를 사랑하신다는 거야.
그리고 내가 요청하면 언제나 도와주실 것을 알게 되었고, 나와 늘 함께 하신다는 거야.
하나님은 그렇게 은혜를 베푸시는 분이야.
그래서 이런 생각도 했어.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사람이 되어도 좋겠다. 연기나 다른 것 하지 말고.
가족, 친구, 그리고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에게, 힘이 필요한 사람에게.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
“엄마는 있잖아. 너희가 아플 때나, 자기 할 일 안 하고 마냥 시간을 보낼 때 엄마가 엄마 역할을 제대로 못해서 너희가 그런 게 아닌가 생각했거든? 그런데 그거 아니었어.
그건 교만이야.
반대로 말하면 엄마가 제대로 하면 너희가 잘 큰다고 생각하는 거잖아.
그게 아니었어.
하나님이 키우시는 거야. 엄마가 키우는 게 아니라.
그리고 지금 보니까 우리 아들 잘 컸다.
아무리 똑똑하고 잘나면 뭐 해. 하나님이 얼마나 사랑하는 사람인지 깨닫지 못하면
그거야 말로 행복하지 않은 거니까.
우리 아들 잘 컸네.
고마워.
엄마가 어른스럽지 못했지? 힘들다고 짜증 막 냈잖아.”
“괜찮아. 그건 어른이랑 상관없이 사람이라 그런 거니까.”
열여섯 살 아들과 대화를 하며 천방지축 날뛰던 마음은 가라앉았고, 감사가 올라왔다.
교회를 가지 않아 목사님 설교를 듣지 않았더니
아들의 입술을 통해 말씀하신 걸까?
아들이 들려준 이야기 모두가 벌써 희미해져 가지만
아들의 질문은 계속 남아있을 것 같다.
내 마음에 하나님이 계시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