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년식 세레머니
더는 아이가 아닌 나이의 끝과 아직 어른이 아닌 나이의 시작.
스무 살.
내 아이가 스무 살이 되었다.
법륜 스님은 아이가 성장하는 시기마다 필요한 사랑의 종류가 다르다고 말씀하셨다.
아이가 어릴 때는 안전하게 보살피는 돌봄이 사랑이고, 커갈 때는 아이의 자율성을 키우기 위해 과도하게 개입하지 않는 것이 사랑이며, 성인이 되는 아이는 독립시켜 보내주는 사랑을 해야 한다고 말이다.
그렇지. 잘 보내줘야지.
내가 부모 품을 떠나왔듯 내 아이도 어미의 둥지를 떠나야지.
동시에 나 역시 내 둥지에서 아이를 떠나보낼 준비를 해야지.
아이가 열아홉 살이 되는 새해에 그렇게 끝과 시작을 준비하자고 마음먹었었다.
그렇게 중요한 20이라는 숫자를 기념하기 위해 일 년을 기다렸다.
어떤 선물을 해줄까?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
어떤 마음으로 성년이 되는 아이를 축하해줄까?
그날의 나는 어떤 어른이고 싶은 걸까?
기대하고 설레는 날이 되길 바라는 마음은, 열 달 동안 태중의 아이를 기다리는 마음과 다르지 않았다.
잘 준비해서 새롭게 펼쳐질 아이와 부모의 인생을 기쁜 마음으로 시작하고 싶었다.
성장과 자립이라는 부모의 숙명 같은 과업을 잘 견뎌내고 있다는 욕심도 있었지만, 아이가 태어나며 내 세상이 바뀐 것처럼, 이제는 어른으로서의 세상을 맞이할 아이의 두 번째 탄생을 기념하고 싶었다.
그러한 마음으로 스무 살, 새해의 첫 번째 토요일인 1월 3일에 우리 아이의 성년식을 치렀다.
검색이나 지인들의 추천 선물은 대개 어른이 되어 쓸만한 물건들이 많았다.
그러다 우연히 읽은 책 속에서 선물의 힌트를 얻었다.
모든 영웅은 길을 떠난다. 되돌아왔을 때 과거의 그는 사라지고 새로운 그가 나타난다. 떠나기 전에는 평범했으나 귀환한 그는 영웅이 되어 있다. 여행은 단순한 놀이나 휴식이 아니다. 그것은 그 이상이다. 직장인들이 여행으로 휴가를 쓰지 못하는 것은 그저 얼마쯤의 휴식의 상실이 아니다. 현실에 묶인 것이고, 두려움에 묶인 것이다. 그들은 삶을 두려워한다. 그래서 나는 여행을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을 아직 중요한 인물이 될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 <나는 이렇게 될 것이다> (구본형, 김영사) 158쪽 중
안타깝게도 나는 여태껏 홀로 여행다운 여행을 해본 적이 없다.
떠나고 싶은 마음이야 있지만 가족, 돈, 건강 등 보이지 않는 것들이 발목을 잡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만약 내가 어려서부터 혼자 떠나는 여행에 도전했더라면 내 삶의 훗날은 얼마간 달라져 있지 않았을까?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내면의 세계가 바뀌어 있을지도 모른다. 분명 그럴 테다.
그렇기에 아이에게 도전을 선물로 주기로 정하고, 성년식을 하기 일주일 전에 미션을 제안했다.
그것도 멋진 카드를 만들어서 말이다. 이렇게.
성년식을 하는 날 아이는 눈빛을 반짝이며 조심스럽게 자신의 여행 계획을 발표했다.
산보다 바다를 좋아하는 딸은 독립 여행지로 강릉을 정했다.
매년 가족과 함께 갔던 그 길을 기차와 버스를 갈아타고 가겠다고 했다. 새 학기가 시작되기 전에 바다를 보며 새 출발을 다짐하고 오겠다고.
당일치기 여행으로 한정했기에 버스 타고 쉽게 갈 수 있는 서울을 가려나 했는데 착각이었나 보다. 차 없이 먼 길을 떠나고 싶지 않은 나는 몸과 더불어 마음도 나이 들어버렸구나 싶었다.
성년 선물을 생각한 시간보다 아이에게 쓸 글을 생각하는 일이 훨씬 오래 걸렸고, 적당한 어휘와 문장을 고르고 골라 글을 쓰는 시간도 만만치 않게 걸렸다. 그런데 아이는 계속 차일피일 편지 쓰기를 미루고 있는 듯해서 내심 서운했는데, 언제 준비했는지 태어나서 아이에게 가장 긴 편지를 받았다.
아이가 먼저 편지를 읽었고, 나도 준비한 편지를 읽었다.
해가 저물어 어둑어둑해지는 그 시각 모닥불에 둘러앉아 우리는 서로에게 편지를 읽어주었다.
코끝은 찡하고 손끝은 시렸지만 마음은 따스하게 전해졌고, 마지막 문장을 말하려다 울컥하는 바람에 짧은 정적의 순간이 고요히 흘렀다.
"다연아. 무엇을 주어도 아깝지 않을 딸. 사랑한다.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축하한다. 네가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보다 더.
고맙단다. 우리에게 와줘서."
'마음을 토한다'는 표현이 이럴 때 쓰는 말이었구나. 서로를 안아주며 성년식을 축하했다.
어렸을 적부터 병치레가 많았던 딸 아이가 스무 해 동안 잘 커 주어 고맙고, 얼렁뚱땅이지만 최선을 다해 부모 노릇을 한 우리 부부를 격려한다.
이제 곧 독립 여행을 떠날 아이가 어떤 얼굴로 집으로 돌아올지 너무 기대가 되어 벌써 상상 회로를 돌려본다.
“엄마, 오늘 어떤 일이 있었냐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