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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지키기 위해, 나부터 단단해졌습니다

흔들리던 마음에서, 단단한 시선으로

by 아델린

아침 햇살이 눈부시던 어느 날, 아이와 함께 동네 마트를 향해 걸었습니다.

마트를 좋아하는 아이는 평소처럼 신이 나 있었고, 저는 그저 아이의 속도에 맞춰 한 걸음씩 걷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득, 등 뒤로 들려온 소리 없는 시선과 작고 낮은말들이 저를 멈춰 세웠습니다.

“왜 저래? 큰애 같은데 하는 건 어린애처럼 행동하네?”

“엄마가 힘들겠다. 아이가 어디가 아픈가?”

누군가의 시선은 의심이었고, 말은 판단처럼 느껴졌습니다.

그 순간 저는 아이의 손을 더 꼭 쥐고, 아무 말도 없이 고개를 숙였습니다.

아이는 이런 말들을 못 들어서 여전히 환하게 웃고 있었지만, 제 마음엔 조용히 멍이 들었습니다.

그 멍은, 생각보다 오래 저를 붙잡고 있었습니다.

며칠이 지나도 계속 그 말들이 떠올랐습니다.


주원이가 자폐 진단을 받았던 날 이후, 세상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동네 놀이터, 엘리베이터, 지하철 안… 어디서든 저는 먼저 주위를 살피고 있었습니다.

누군가가 불편한 기색을 보이기라도 하면, 괜히 제가 민망해졌고,

어느 순간부터 ‘사과 아닌 사과’를 반복하는 제 모습에 스스로도 지쳐갔습니다.

“그래도 이 정도면 다행이지.”

이런 무심한 위로조차 마음 깊숙이 박히곤 했습니다.

말을 삼키고, 표정을 감추고, 아이보다 제가 먼저 움츠러들었습니다.






어느 날, 놀이터에서 조용히 제 손을 잡은 아이가 물었습니다.

“엄마, 나도 친구랑 놀고 싶어. 나도 놀고 싶어, 저렇게.”

그 한마디에 모든 시간이 멈춘 듯했습니다.

그동안의 제 행동이 떠올랐습니다.

누군가 쳐다보면 아이를 숨기듯 제 쪽으로 안았고,

질문을 받으면 둘러대거나 웃어넘기기 바빴습니다.

사실, 부끄러웠던 건 아이가 아니라 ‘상처받는 나’였습니다.

아이에게 당당한 세상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해놓고,

정작 저는 저에게 돌아오는 시선을 외면하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결심했습니다.

아이를 지키고 싶다면, 나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이젠 누군가가 쳐다보아도 저는 웃습니다.

“우리 아이가 조금 다르긴 하죠. 그래도 귀엽죠?”

“그 말은 아줌마도, 우리 아이도 조금 아프고 속상한 말일 수 있어요.”

가끔 주원이 또래 아이가 무심한 말을 건넬 때면, 숨지 않고 이런 말들을 합니다.

돌아오는 반응이 미안함이든, 무반응이든,

중요한 건 제가 더 이상 그 말에 휘청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제 안에 생긴 단단함은, 쉽게 흔들리지 않는 보호막이 되었습니다.

그건 아이에게도 전해졌습니다.

아이도, 예전보다 눈빛이 밝아졌습니다.


누군가는 엄마의 역할이 ‘아이를 지키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제 압니다.

그보다 먼저, 엄마인 나 자신을 지키는 것이 우선이라는 것을요.

내가 단단해야, 아이도 세상 앞에서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오늘도 아이는 자신의 속도로 자라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 역시, 그 아이 곁에서 매일 조금씩 단단해지고 있습니다.

더 이상 시선에 흔들리지 않는, 담백하고 강한 엄마로.


사회의 시선과 말보다, 내 아이를 지킬 수 있는 사람은 바로 ‘나’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엄마인 제가 먼저 단단해져야, 우리 아이도 보호받고 지켜지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습니다.

그렇게 느낀 아이는 더 이상 뒤로 숨지 않고, 세상 앞에서 한 걸음씩 나아갈 수 있습니다.


잠든 아이를 보며 이런 생각을 합니다.

엄마가 먼저 걸어간 길을 따라오며, 너도 단단해지기를.

그리고 조금씩 너만의 세상으로 나아가기를 바란다.


이제라도 엄마가 깨닫고 너를 지키려 하는 게 너무 늦게 알게 되어서 미안해.

좀 더 빨리 알아차리고 널 지키고 곁에 있었더라면,

너는 더 나은 오늘을 살고 있을 수도 있었을 텐데… 정말 미안해.

예전의 나보다 지금의 내가 더 좋다고 말해준 너의 그 말이,

엄마에게는 참 고맙고도 미안한 말이었어.

많이 부족했던 엄마인데도, 그렇게 기다려주고 또 기다려줘서 고마워.

엄마가 너의 좋은 어른이 되어볼게.


엄마가 너의 엄마이자, 친구이자, 인생 선배이자,

세상에서 유일하게 너를 끝까지 지킬 사람이라는 걸 잊지 말아 줘.

엄마는 너를 지키기 위해, 앞으로도 계속 단단해질게.

그래서 널 언제나 지켜줄 수 있도록 말이야.








“부모가 단단해질수록, 아이는 세상을 향해 더 단단한 발걸음을 내딛을 수 있다.”

– 아델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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