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에세이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예경 Mar 14. 2023

<회전목마>

에세이




 회전목마가 돈다. 말 모형이 위아래로 오르락내리락하며, 원심력에 의해 피가 한쪽으로 쏠려 오묘한 쾌감을 느끼며, 회전목마는 돈다. 특별한 날에나 찾았던 놀이공원 속 회전목마가 나와 닮아 보인 것은 언제부터일까. 아무리 달려도 같은 자리를 도는 저 회전목마처럼, 나는 답답하게도 자꾸만 제자리를 빙빙 도는 것만 같다고, 오랜만에 찾은 유원지에서 따위의 상념을 하고 있었다.




 그저 온전한 내 방, 그 하나만을 바랐을 뿐이었다. 갑작스럽게 방문이 열릴까, 방 밖의 고함 소리에 깜짝깜짝 놀라지 않을 자유. 내가 소중히 여기던 물건들이 한순간에 버려지고 망가지지 않을 자유. 단지 그뿐이었는데, 나는 그를 위해 생각보다 비싼 값을 치러야 했다. 보증금 400만 원에 월세 45만 원. 기껏 모은 푼돈으로는 반지하나 겨우 들어갈 수 있어서, 나는 결국 대출을 했다. 은행 앱에 찍힌 ‘토스 비상금 대출 –3,000,000’. 빛 보려고 살기 위해 빚을지는 아이러니가 우스워, 헛웃음이 나왔다.


그래도 잘해보려고, 열심히 산답시고 일을 했지만, 이자가 붙는 속도와 물가 상승을 따라잡을 수 없었다. 돈을 벌고, 벌어도, 내 통장은 여전히 마이너스였다. 배달의 민족, 쿠팡이츠, 마켓컬리, 네이버페이, 카카오페이, 병원, 편의점, 친구 모임, 미용실 등 자잘한 돈이 계속 새고 도무지 모이질 않았다. 소비 중에 명품, 좋은 거, 오래 쓸만한 것 없이, 옷도 기껏해야 3~4만 원 선인데 대체 이게 왜 눈덩이처럼 불어났는가. 아낀다고 아꼈는데, 습관적인 과소비 같은 게 아닌데, 남들에겐 보통의 일들이 왜 내겐 사치일까. 쓰는 즐거움을 애써 외면해 보며, 덜 쓰려는 안간힘 속에서 나는 지쳐가고 있었다.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돌아와, 씻고 이를 닦으며 거울을 바라봤다. 거울 속에는 마른 볏짚처럼 푸석한 여자가 서 있었다. 소모품이 되어버린 또 하나의 밤이 저물어 간다. 모든 게 지긋지긋했다. 나는 이렇게 전전긍긍하며 사는 매일이 싫어서 꽥 비명을 지르고 달아나고 싶다가도, 내가 가진 건 오로지 빚밖에 없고, 자칫하면 여기서 더 마이너스가 될 수도 있으며, 채무 갚으려면 결국 이 짓밖에 없음을 상기한다. 내뱉은 긴 한숨 뒤, 끝없이 밀려온 공허함의 기억이 선명하다.




 계속 돌아가는 회전목마를 봐서 그런가, 머리가 어지러웠다. 나는 조금 비틀대다, 그 앞에 앉아 머리를 무릎 사이에 파묻었다. 꿈은 언제라도 그래, 놀이기구 같다.


이룰 가망이 있나 싶은 꿈을 꾸다 주저앉고, 끝없이 도는 매일에 지쳤다. 마음은 광야를 달리나, 현실은 같은 자리를 도는 저 회전목마처럼, 나는 답답하게 자꾸만 제자리를 빙빙 돈다. 열심히 산답시고 아무리 달려봤자, 변하는 것 없이, 꼬리를 따라서 결국 왔던 곳으로 돌아오고야 만다. 전전긍긍하는 매일의 반복.

회전목마의 운동의 방향이나 빠르기는 변할 수 있어도 같은 방향으로 도는 것은 변하지 않는 것처럼, 나의 궁핍은 어쩔 수 없는 일일까.




 어느새, 날이 저물고 있었다. 새파란 하늘보다 내 눈을 가릴 어둠이 지금 이 분위기엔 훨 더 맞지. 그렇게 생각하며 집에 가기 전, 기념으로 회전목마를 찍었다. 유난히 셔터의 속도가 길었다. 확인해 보니, 노출값이 잘못 설정되어 다시 찍어야 했지만, 희한하게도 흔들거리는 어둠이 눈부셨다. 어둠 속에서 장노출로 본 회전목마의 회전은 마냥 헛된 것이 아니었다. 목마가 돌고 돌아, 빛의 궤적을 이루고 있었다.


뒤는 생각 말고 지나간 건 지나가게, 앞만 보고 사는 것이 의미 있는 것이라 배워왔는데, 그렇지 않았다. 어슴푸레한 어둠 속, 점멸하는 네온사인, 멎어가는 사랑스러운 멜로디 속 돌고 돌아 만들어진 원이 여기, 사진 속에 남아 있었다. 어쩌면 내 초라한 현재도 의미 없지 않은 게 아닐까. 뒤를 잊는 것이 아닌, 잇는 힘을 기르는 것이 더 중요한 게 아닐까.

뭔가에 기대고픈 인생 속, 노출값이 잘못 설정된 사진 한 장을 위안 삼아 살아도 될 것만 같았다. 하나 잊고 있던 사실인데, 어린 시절의 나는 결국 회전목마가 돌아오기 때문에 좋아했던 거였다.



폐장 시간이 가까워진 놀이공원의 회전목마는 더 이상 달리지 않지만, 멈췄던 나의 가슴은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원목>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