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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예경 Mar 30. 2024

서비스직의 덕목

(전에 공모전에 나갔던 글인데 낙방해서... 브런치에 공개해봅니다.)



 여러분은 서비스직의 덕목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하루에도 똑같은 말을 수백 번 반복해도 지치지 않을 정신력일까요? 몇 번이고 같은 안내 사항을 반복하는 일은 다소 지겹지만, 그래도 당신의 처음을 망치고 싶지 않아 힘껏 목소리를 냅니다.


그렇다면, 서비스직의 덕목은 역시 친절함일까요? 모든 매장에선 리뷰가 중요하고, 리뷰의 평점을 좌우하는 건 직원의 미소와 상냥한 목소리의 비중이 큽니다. 성실함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성실은 많은 직종에서 중요시되는 덕목입니다. 성실하다는 것은 신중하게 행동하고 책임감이 강하며, 이는 관리자가 유능하다고 판단하는 척도가 되기도 합니다.


이 모든 건 서비스를 이루는 중요한 요소지만, 저는 사실, 서비스직의 덕목은 '고객에게 너무 정 주지 말기.'인 것 같습니다.



저는 백화점 SPA 의류 매장과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투잡을 하고 있습니다. 둘 다 사람을 면대면으로 마주하는 서비스직입니다. 자주 오시는 손님은 어쩐지 알 수 있습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애써 외우려 하지 않아도 그냥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다, 손님이 가게에 오지 않으면, 저는 영문도 모른 채 갑자기 증발한 손님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제가 실수한 것이 있는지, 이사를 간 걸까, 무엇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까 등 여러 생각을요.

그대들은 마치 여행자 같아요. 불현듯 왔다가 언젠가 영영 떠나게 될 거란 점이 그러합니다.



매장에 처음 오실 때, 제게 코디를 부탁하셨던 분이 있었습니다. 어떤 스타일을 주로 입으시는지, 옷장 안에 무슨 색의 옷이 많은지 여쭤보고 옷을 추천해 드렸습니다. 이후, 그분은 오실 때마다 제게 코디를 부탁하셨습니다. 자랑하듯 제게


"저번에 추천해 주신 옷 입고 왔어요. 잘 입고 있어요."


라며 보여주셨는데, 그때의 뿌듯한 기분이 선연합니다.



카페에서 일할 때, 늘 따뜻한 바닐라 라떼에 시럽을 한 펌프 반만 넣어달라던 할머니 고객님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언제 한 번은 저 멀리서 오시는 게 보여서, 미리 샷을 내리고 우유를 스팀해서 음료를 내드렸는데, 아가씨가 일을 참 잘한다며 제 손을 잡곤 고맙다며 환하게 웃으셨습니다. 잡힌 손이 라떼보다 더 따뜻했습니다.



이제 이분들은 어느 순간부터 가게에 오질 않게 되었습니다. 조금이라도 상대를 알 것 같으면 떠나버립니다.

고객들은 언제든 떠날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이란 걸 알면서도, 서운한 기분이 듭니다.

그래도 되도록이면 갑자기 재정이 여유로워져 이런 저가 커피, SPA 브랜드 의류 대신 좋고 비싼 것을 두르고 마시느라 오지 않는 편이 좋을거라 생각합니다. 좋은 사람들에겐 좋은 일만 있었으면 싶거든요.


일을 하다 보면 스트레스를 안 받을 순 없지만, 제게 심한 소리를 했던 사람보다, 다정했던 사람이 더 오래 기억에 남았습니다.

오며가며 얼굴 본 정도로, 몇 마디 짧은 말로 정을 주기엔 언젠가 떠나버릴 여행자들. 섭섭하기도 했지만, 스쳐 지나간 인연들은 오래도록 제 마음속에 남아, 따뜻한 마음을 지킬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 이 일을 계속할 수 있도록 해주었습니다.



손님이 가게에 오시면, 저는 "안녕하세요."하고 인사합니다. 손님은 가게를 나서며 "안녕히 계세요."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흔히 쓰는 인사말이지요. ‘안녕(安寧)’이란 말에는 아무 탈 없이 편안함, 몸이 건강하고 마음이 편안하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새삼 별거 아닌 것 같은 인사가 참 따뜻하게 느껴집니다. 우리 계속 서로의 편안을 바라며, 안부를 물으며 오래 보았으면 합니다.

어려운 시대잖아요. 사는 것이 가끔은 아프고 괴로울지라도, 당신을 궁금해하고 이따금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아주었으면 합니다.



오늘 당신의 하루는 안녕하신가요, 저는 안녕히 잘 있습니다.


어디선가 다시 만날 그날까지, 아무쪼록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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