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이 글은 작년, 좋은 생각사에서 주최한 ‘청년 이야기 대상’에서 장려상을 탄 글입니다.
제가 원래는 잡지에 글이 실리면 소식 전할 겸 업로드하려 했는데 어쩌다 보니 좀 늦어졌네요 ㅎㅎ;
재밌게 감상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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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랗게 멍든 원룸 안에서 나의 청춘은 곪아가고 있었다.
동물들의 가장 큰 욕망은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아무리 일에 지쳐도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자취방에 가면 젖은 천장과 곰팡내가 나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누수. 누수가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은 겪고 넘어가는 것이라지만, 나는 그런 이벤트를 감당할 수 없었다.
집주인은 기본적으로, 여기서 먹고 자고 생활하는 세입자에 대한 공감 능력이 없다. 내가 직접적으로 피해를 보거나 화나는 일이 아니니 먼 산 보듯 한다. 7월에 발생한 누수는 한 달이 넘도록 해결되지 않았다. 천장 보수 공사는 장마가 끝나면 해주겠다, 옥상 방수 먼저 하고 하겠다, 8월 초에 해주겠다, 8월 15~20일 사이에 해주겠다... 차일피일 미뤄졌다. 내가 하루빨리 해결해 달라고, 언제까지 기다리냐 따지니, 집주인은 그럼 나가라고 윽박질렀다. 분하지만, 그렇다. 세상은 나를 우습고 만만하게 본다. 무른 몸은 공격성이 없고, 나는 그에게 전혀 위협이 되지 않는다.
'청춘'. 무언가 꿈틀거리고, 튀어나오려는 탄력성과 무한한 가능성이 연상되는가. 그 찬란한 푸르름과 거대한 에너지가 본래 청춘의 것이라면, 젊은 혈기로 절망을, 세상을 이겨내기엔 나는 이미 지쳐 있다고 말하고 싶다.
친구는 반지하에 산다. 돈 없는 청년들에게 주거 선택지는 둘 중 하나다. 빛 보고 살기 위해 빚을 지거나, 빛을 반쯤 포기하고 살거나. 친구는 침수를 당했다더라.
"물이 종아리까지 찼는데, 그걸 다 퍼내고 바닥을 닦고..."
걘 그 말을 하면서 웃었다. 왜 우린 비의 침입에 취약한 집에서 살아야 하지. 장마가 지독하다.
퇴근길, 지하철 3호선이 구파발에서 지축을 가로지르는 지상 구간에선, 북한산이 보인다. 곡선구간을 지날 때면, 휘어지는 길 따라 들이닥치는, 해가 질락 말락 하는 북한산 전경이 웅장하다. 덜컹, 덜컹. 철길 위로 미끄러지는 산을 바라보며 집 가는 그 길에서, 고개를 돌리면, 어디서나 먼발치에서 산이 보이던 고향 생각이 났다. 언제나 멀리서 단단히 존재하는 산들이 있는, 나의 고향이. 그러자, 연고 없는 타지에 사는 서러움이 북받쳤다.
그냥, 엄마 밥 먹고 엄마 품에 안겨 잠들고 싶은데 걱정할까 봐 말은 못 하겠고. 사랑한다, 보고 싶다, 언제든 와라 그런 이야기들이 듣고 싶고. 아빠가 그냥 막무가내로 내 편 한 번만 들어주면 좋겠다. 그리고, 고생했다며 애틋하게 등 뚜드려 줬으면. 나는 그런 다정한 다독임이 간절히 필요했는데.
비밀번호 치며 자취방에 들어간 그 순간,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공격성 없는 무른 몸을 가진 나를 탓하다가, 내 뜻대로 되는 거 하나 없는 이 상황이, 속상하고 괴롭고, 스스로가 나약한 게 미워서. 그게 서러워서. 그러다가, 내가 너무 가엽고 안쓰러워 눈물이 났다. 꽤 오래 울었다.
사실, 매 아침이 버겁다. 아침이 버거운데, 어김없이 해는 뜬다. 우울이 깊다. 우울이 길다. 절망이, 체념이, 무기력이 너무 길다. 앞길이 구만리인데, 벌써 사는 게 지겹다. 인생이 너무 길다. 사정없이 일그러진 젖은 얼굴을 손으로 마구 문댔다. 곰팡이로 생긴 화폐상 습진에 눈물이 닿아, 살이 에렸다.
여름날, 공기는 후덥지근하고 태양 빛은 불타는데 삶이 시렸다.
침수된 집에서 물을 퍼 나르던걸, 무슨 무용담처럼 말하던 그 애는 덧붙였다.
"그래도 살아야지 어쩌겠어. 암만 살기 지랄 같아도, 죽자니 또 청춘이잖아."
일렁, 일렁. 쉬폰 패브릭 커튼을 비집고 뿜어져 나오는 지는 해의 에너지와 넘실대는 금빛의 향연 속, 그 천진함이란. 하는 수가 없어서 나도 웃고 말았다. 우리는 마주 웃었다.
분명, 아침이 버거웠는데 지는 해는 또 아름답더라. 그 애도 그렇다.
앞으로도 우리는 상처 받으며 나이 들겠지. 당하고 나니 철들고, 후회만 가득 상처를 안고서. 하지만, 찰나의 아름다움과 웃음으로, 사랑으로 평생을 살아갈 힘을 얻을 것이다.
여름날, 지독한 장마와, 지는 해 속 고향 생각과, 울음과 웃음, 빛의 그 일렁임은 분명 '청춘'이었다.
파랗게 멍든 원룸 안에서, 곪아가는 청년이 미래에 대한 회의감이나 절망으로 몇 번이고 마음이 무너진다는 것을 기성세대들은 모른다. 하지만, 청춘들은 안다.
일렁이는 청춘이여, 세상의 악의에도 푸짐하게 떠들고 싸우고 사랑하고 울고 웃고 하는 그대들은 아름답다.
인생은 길다. 그러니, 마음껏 힘들어하고 마음껏 절망하자.
그리운 고향을 등진 타향살이가 모질고 서러워도, 버거운 듯, 우직하게 앞을 향해 나아가자.
우리 모두 죽기에는 너무 청춘이니, 우리의 부박함은 용서하고,
부디, 흘러가는 대로 살아도 농담과 미소가 섞인 따뜻한 날이 오기를.
말도 안 되는 우연들이 겹치며 장난 같은 축복이 있기를 바라자.
아, 일렁이는 청춘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