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히 해요 그러면
하고 있는 체불사건이 있다.
사건만 보면 복잡한 건도 아닌데, 장기간 근속하시면서 사업주 명의도 바뀌고 퇴직연금을 중도에 가입했지만 원체 오래 다니셨어서 쌓여있는 퇴직금 자체가 많은 근로자건이다.
접수 후 다음 달에 첫 조사를 받고, 그 후 사업주가 조사에 출석하지 않았다는 얘기를 듣고 사업주에게 전화를 해봤다. 처음에는 예의를 지키시는 것 같더니 퇴직금 안 준 게 얼마라는 소리를 하자 버럭 화를 내신다.
왜 체불하는 사장님들은 다 똑같은 레퍼토리인지 왜 주실 돈 안 주시고 외려 역정 내시는지. 내가 굳이 근로자편만 드는 노무사는 아니지만 이럴 땐 아주 질려버린다.
그 후 몇 주지나 사업주가 조사를 받았고 회사 자문 노무사님이 전화가 오셨다. 원만한 합의를 위해 근속기간 중 일정시점 이전 것은 그 간 퇴직금명목으로 받은 금원(정당하지 못한 중간정산)을 퇴직금으로 치고(오로지 사건종결을 위해. 체불금이 크면 합의종결을 곧잘 하기도 한다.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는 것도 근로자에게 좋은 게 아니니) 일정시점 이후 것으로 조율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사업주 측에서 하는 말이 다 줄 수 없고 2개월에 걸쳐 줄 수 있다는 제안이 왔다. 사실 합의안하고 끝까지 가면 시간이 길어질 뿐 받아낼 수 있는 금액인지라 근로자한테 설명하고 합의하지 않는 것으로 결정했다. 사건을 빨리 끝내야 근로자도 돈을 빨리 받는 건 맞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이 합의조건이 근로자에게 크게 득이 될 것도 없어 보였고, 난 근로자의 대리인이니까. 나도 사건이 오래 끌리는 게 싫지만, 근로자분을 생각하면 지금 이렇게 끝내선 안될 것 같아서 상대 노무사님께 해당조건으로는 합의가 어렵겠다고 절차대로 진행하겠다고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웬걸
“합의를 거부하신다면
1. 재직 중에 퇴직금 명목으로 받아가신 돈은 부당이득이니 전액 환수 하고 퇴직금 재정산 필요
2. (일정시점 이전 것을 일부러 건드리지 않았는데) 그 시점 이전에 미리 받으신 것도 부당이득이니 그것도 전액 환수 후에 받아가셔야 할 것“
이라는 회신이 왔다.
물론, 퇴직금 명목으로 재직 중에 지급한 금원은 퇴직금이 아니니 그것은 곧 부당이득이 되고 후에 퇴직금을 재정산할 때 상계하거나, 퇴직금 전액 지급 및 부당이득 환수로 진행해야 하는 것이 맞다.
그런데 ‘부당이득 전액 환수 ’ 후‘ 퇴직금 정산‘이라는 문구에 나는 내게 사건을 맡기신 근로자의 딸이 되어버렸다.
“지금 돈을 안 준 사람이 도대체 누구인 거야? 왜 근로자가 돈 떼먹은 사람처럼 얘기하시는 거야?”
사업장은 20년 이상 근로하신 분의 퇴직금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20년 이상 근무하셨으니 퇴직금도 굉장히 고액이다. 작은 사업장에서 일시에 그 목돈을 지급하기 어려울 테니 일정시점을 정하고 그 후의 금액을 조율했던 건 근로자의 편의도 있으나 사업장의 현실적 상황도 고려한 것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사업장에서 “부당이득 전액 환수 후 정산”이라는 문구는 근로자에게 충분히 불쾌한 감정을 들게 할 수 있다. 내가 못 받은 퇴직금을 달라하는데 “네가 먼저 주면 나도 줄게” 랑 뭐가 다른 말인가.
여기서 당연히 돈을 줘야 할 주체는 퇴직금을 안 주고 뭉개고 있는 사업장이지, 사업장의 목돈 털이를 위해 중간에 일방적으로 정산을 당한 근로자가 우선되는 것이 아니다.
내게 상대측에서
환수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언급보다 ‘지급할 퇴직금에서 상계’라는 워딩을 썼거나, 아니면 차라리 ‘퇴직금 지급과 “동시에” 환수’라는 워딩을 쓰셨다면,
또한 합의종결을 위해 애초에 건들지 않고있던 근로기간까지 언급해가며 ‘해당 근로기간에 중간정산 받은 금액도 환수 먼저 해야 한다’는 워딩으로 자칫 “퇴직금 받으려면 돈 먼저 돌려내라” 라는 뉘앙스를 보내지 않았다면 나도 조금 더 편한 쪽으로 종결방향을 잡았을 수도 있다
부당이득으로 정의될 강제 중간정산이 당연히 상계 및 환수 처리 되어야 할 것은 맞다. 그렇다 해도 근로자가 먼저 환수해야 퇴직금을 줄 수 있다는 워딩은 지양해야 한다.
당연히 법 위에서 다투어야하는건 맞고 그것을 벗어날 이유도 없다 그래서도 안된다. 그런데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같은말이라도 아다르고 어다르듯 노동분쟁은 항상 사람사이의 분쟁이고 특히 노동분쟁은 사람사이의 감정의 골이 악화되면서 촉발된다는 점을 노동법앞에 서있더라도 항상 유의해야한다. 그게 내가 그래도 10년을 이일을하며 견지하고 있는 기본전제다.
근데 “합의를 거부하면 환수해야 한다“ 이 말은 20년 이상 근무 후 퇴사하고 퇴직금을 못 받고 있는 근로자를 생각하면 도의적으로 해서는 안 되는 말인 거다.
난 그 메일에 답장했다.
[네 노무사님. 사업장에서 일방적으로 중간정산한 것이 부당이득이니 당연 상계해야 합니다만, 부당이득을 환수 후 정산하자 하시니 저도 합의를 위해 조율하던 금액을 최근 N 년으로만 잡고 있었는데요, 20년 전부터 정확히 다시 계산해보고자 합니다]
난 그렇게 합의금으로 거론되던 금액의 약 2배의 금액을 추가로 계산해 냈고 더 이상의 합의는 없음을 알렸다.
항상 감정이입을 자제하자 해놓고
내 사건엔 내가 당사자인 것처럼 이입이 된다.
이번 사건도 결국 그렇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