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사건(2) - 나는 모른다는 인정

by 육아하는노무사


카코크레인을 운전하는 기사였던 첫 의뢰인은 본인의 하루 일과를 읊어주었다.

출근시간보다 1시간씩 일찍 출근하여 작업준비를 했고 법정근로시간을 초과하는 근무도 일쑤였는데

고정급여외에 별도의 연장근로수당을 받지 못하였다고.


이런 경우 보통 본인의 근무기록이 뒷받침되어야 하는데 별다른 입증자료는 없었고,

간신히 중기가동일보를 습득하여 근로자의 근로시간을 추정할 수 있는 기록과

혹여나 근로자성을 부정할까 하여 급여이체내역 확인과 4대 보험 직장가입자 자격 확인청구를 동시에 했다.


명확한 직접입증자료가 없었기에 근로자의 진정요지대로 입증하는 것이 어려웠지만

의욕에 가득 찼던 난 '그럼 사용자는 입증할 수 있는지?'를 기본으로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하는 사건이다 보니 내가 마치 근로자 본인인 양 의욕이 넘쳤다.

의욕은 넘치는데 오랜만에 하는 실무인 데다가, 필드에 있을 때도 접해보지 않았던 절차들이 있었기에 알아볼 것도 참 많았다. 결국엔 관할기관들에 연락해서 절차를 묻고 안내받았다.


처음엔 구체적인 신상을 숨기고 근로자 본인인 것처럼 묻기도 했었지만 상황에 맞는 더 상세한 정보를 알기 위해서는 결국 내 신분과 질의 목적을 알려야 했는데 이 상황은 '내가 잘하지 못하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할 뿐 아니라 남에게까지 알리는 일이었다. 누군가는 '그게 뭐 별거냐' 하겠지만, 이건 내겐 나름의 벽을 깨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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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부터 자존심도 세고 인정욕구가 강했던 나는 '못한다'는 소리를 듣기 싫어했다.

'열심히 했다' 보다는 '잘했다'여야 했다.


크면서 모든 상황에 잘했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의 결과를 내지도 못하고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

내 맘에 안 드는 결과가 나오면 혼자 엄청난 자괴감을 가지거나 결과를 낼 수 있는 지원이 부족해서 그런 거라고 자기 합리화를 하기도 했다.


그래도 그건 누군가의 지원을 기대해도 되는 시기에 한했다. 그러니까 학창 시절까지였다.

학원을 다녔다면, 과외를 받았더라면, 내가 구태여 아르바이트를 하며 시간을 써야 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그렇게 툴툴거릴 수 있을 때까지였다.


이제는 모른다는 것에 자존심을 상해할 상황이 아니었다.

내가 모른다고 해서 누가 도와주지 않을 일이고, '몰랐으니까' 하고 넘어갈 선량한 환경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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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견서는 거침없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사건의 해결가능성에 초점이 맞춰지는 현재와 달리

당시의 나는 "법 지켜야 하는 건 회산데, 뭐 어쩌라는 건지?" 수준이었다.


100% 근로자에게 동화된 나는 근로자처럼 스트레스받고 절실해졌고

그렇게 두 달, 적당한 조건으로 사측과 합의하여 근로자의 사건을 종결할 수 있었다.


단순히 오랜만에 실무에 뛰어들어 사건을 처리했다는 마음과 함께

내 나름의 벽을 깼다는 뿌듯함도 함께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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