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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별행자 Dec 07. 2022

책이라는 세계



  어릴 적 나는 책을 좋아했다. 왜인지는 잘 모른다. 친엄마와 4살 때 헤어져서 6살 때 새엄마를 만났었다. 새엄마와 친근하게 지낸 기억은 없다. 그 무렵 나는 책을 좋아했던 것 같다. 정확하진 않지만 누런 종이에 파란색 표지의 세계명작동화 세트가 있었던 것 같다. 그리스 로마 신화도 참 좋아했다. 이불로 굴을 만들어 그 속에서도 책을 봤다. 핀잔을 들었던 것이 생각난다. 그때는 컴퓨터도 없었는데, 나는 초등학교 3학년 때 인가부터 안경을 쓰기 시작했다. 다 내가 어두컴컴한 데서 책을 봤기 때문이라고 했다. 집안에 안경을 쓰는 사람이 없는 왜 너는 안경을 쓰냐고 부모님이 말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책의 세계가 나의 도피처였던 것 같다. 역경을 딛고 자기 삶을 찾아가는 공주의 이야기가 좋았다. 벌을 받는 계모의 이야기도 좋았고 권선징악의 이야기속에서 나는 위로를 받았던 것 같다. 중학생이 되면서 도피처를 만화책으로 삼으면서 책과는 멀어졌다. 그렇게 공부도 손을 놓고 오로지 반항, 지옥, 만화, 컴퓨터 게임으로 채워져 있던 청소년기가 지나고 19살 때 가출을 했다. 세상의 혹독함을 경험했다. 그래도 집을 떠났다는 것이 그 와중의 조그만 자유이고 행복이었다. 세상의 치열함 속에서 책을 읽을 시간 따위는 없다고 생각했다.


  다시 책을 찾게 된 것 첫아이를 낳고 였다. ‘엄마’라는 유예기간을 받은 나는 각종 삶의 무게로부터 도망갔다. 그런데 도망간 곳은 내면의 지옥이었다. 아이가 비추어주는 나의 내면은 지옥이었다. 그렇게 심리상담, 코칭, 여러 공부를 통해 다시 책이라는 세계로 되돌아왔다. 중학교 때부터 30대까지 그동안 손놓았던 독서를 만회하듯 미친 듯이 읽었다. 갈증이나 마셔도 마셔도 채워지지 않는 목마름이었다. 급하게 마신 물은 소화되지 않고 흘러나가기도, 배탈이 나기도 했다. 하지만 좋았다. 나만의 세계를 찾은 느낌이었다. 읽으면서 좋아하게 된 작가들의 책 속으로 참여했다. 그들에 세계에 참여해 제멋대로 삶이 왜 이런 거냐고 묻고, 화를 내거나 슬퍼해도 그들은 동요하지 않고 진득하고 끈기 있게 나를 가르쳐주었을 뿐만 아니라 좋은 친구들도 소개해주었다. 인생에 대해 묻고 답하고, 내면의 지옥을 열심히 정돈하고 나니 이제는 고독을 즐긴다고 말하고 싶어졌다. 고독하지만 외롭지 않다. 오늘도 만날 작가들이 방 한켠에 줄을 서서 나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어떻게 책이라는 세계에 들어왔을까? 문득 북코칭을 진행하다, 나는 책 읽는 어른은 본 적이 없다는 게 기억났다. 집안에 부모님이 늘 책을 읽으신다는 분의 이야기를 듣고 생각해보니 나는 새엄마나 아빠가 책을 읽는 것을 본 적이 없던 것이었다. 내가 자라온 가정환경에서 ‘어른’과 ‘책’은 어울리지 않는 그림이었다. 새엄마가 책을 손에 쥐고 있던 것을 본 것은 성서나, 운전면허문제집이었던 것이 기억난다. 그렇다고 내 친엄마가 나에게 동화책을 많이 읽어준 것도 아니었다. 내 친엄마는 60이 넘도록 한글을 몰라 이제서야 한글학교를 다닌다고 했다. 나를 임신했을 적 그저 태교에 좋다기에 미용실에서 패션잡지만 들여다봤다고 했다. 어쩌다 책을 좋아하게 된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도 책을 잔뜩 사주었다. 둘째 낳기 전에 첫째에게는 책을 많이 읽어주려고 노력해서인지 첫째는 책을 좋아한다. 자랄 때 독서문화를 물려받지 않아도 책을 잘 읽고 있는 나를 보면 아이들에게도 굳이 책을 읽으라고 잔소리를 하지 않아도 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 때가 되면 갈급해지면 찾게 되겠지. 하지만 그럼에도 권한다면, 책이라는 세계는 늘 누구에게나 추천하고 싶다.


  나를 알아가고, 자유로움을 얻는데 도움이 되는 책들은 다음 기회에 써보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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