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VS일탈 여행 왜 가는데?내 평범한 일상이 주는 안락함이 좋다
나의 일상은 여행에서는 누릴 수 없는 편안함이 있다.
언제든 냉장고에서 먹을 것을 꺼내 먹을 수 있고..
더러운 옷은 바로 빨 수 있고
샤워하고 화장대엔 내가 쓰는 화장품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다이슨 드라이기.. 그리고 얼마든지 고를 수 있는 내 옷.. 일교차가 큰 날은 하루에 두세 번 갈아입을 수 있으니까
내가 가진 공간은 패리스힐튼이 사는 그런 넓고 화려한 공간은 아니지만 이 모든 것이 여행을 가면 불가능? 또는 불편해진다..
먹고 싶은 건 검색부터 하고 나가서 사 먹어야 하고.. 내 화장품들은 미니어처로 변신하거나 까먹고 안 가져오는 아쉬운 순간이 생긴다.. 다이슨 드라이기는 모든 롤을 못 가져가거나 어떤 나라는 전압이 안 맞으니 쓸 수 없다.. 옷은 트렁크 안에서만 고르거나 날씨가 안 맞아 춥거나 덥거나 그리고 사려면 맘에 쏙 들지도 않는 차선의 옵션에 타협해야 한다..
이십 대 때에는 여행만을 너무 간절하게 기다려왔다… 특히 내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세상… 이국적 풍경 속에서 누리는 자유를 만끽할 수 있는 해외여행만큼 짜릿한 것은 없었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근근이 모은 돈으로 부모님 눈칫밥을 먹으며 어떻게든 여행 갈 궁리만 했었다… 돌아오면 지루하고 갑갑한 일상이 다시 나를 기다리고 있어 허탈한 몸을 이끌고 다녔었지
그랬던 내가 사십 대가 되어 아이 둘을 키우니 여행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특히 코로나 팬더믹 때 경험한 유목생활은 트렁크만 봐도 숨이 막히는 트라우마를 가져왔다.
남편은 해외 발령으로 먼저 이주해서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집을 세놓고 아이들 학교를 처리하고 바로 따라가기로 했는데 코로나 바이러스를 막듯이 국경을 막는 바람에..
우리 셋은 비자가 나올 때까지 무기한 기다려야 하는 “기약 없는 유목생활”이 시작되었다..
우리 이삿짐은 먼저 선편에 보내는 바람에 트렁크 두 개에 필요한 것만 채워서 친정집에 얹혀 지냈다.
세 식구 때문에 집안일이 늘어나 심기가 불편한 부모님께 일이백씩 용돈을 드렸지만 내 생활은 일이백을 소비하고도 더 불편했다.
친정집 눈치도 보이고 독박육아가 화가 나서 애들을 데리고 호캉스를 종종 갔다. 청소도 안 하고 빨래도 안 하고 조식을 먹으며 애들은 수영장에 풀어놓고 풀사이드 바에서 맥주를 마셔도 갑갑했다.. 젖은 수영복은 어떻게 하지 조식 말고 점심 저녁은 어디서 사 먹지? 룸서비스는 괜찮을까? 몇 시까지 주문이었더라… 애들은 태블릿을 쥐어주고 편의점에서 급하게 필요한 생활용품.. 컵라면, 맥주를 사가지고 방으로 들어간다
친정집과 호캉스를 하다 다시 짐을 싸서 시댁에서 지냈다. 우리가 안쓰러운 시부모님은 잘해주셨지만 곧 이사를 앞두고 있어 오갈 데 없는 우리는 또 트렁크를 싸고 호텔형 오피스텔을 들어갔다.
짐을 쌀 때마다 쓰레기 같은 자질구레한 것들을 다 짊어지고 다녀야 했다. 오래 사용할 것이 아니라 다 임시로 산 미니어처 주방살림들, 빌려서 돌려줘야 하는 물품들. 애들 학원, 학교, 과외 교재들 재빠르게 버릴 건 버리고 챙길 건 챙겨야 하는.. 몇 가지 옷만 자꾸 빨아 입으니 후줄근하게 되어버린 옷가지들..
이런 나와 달리 애들은 이 집 저 집 새로운 집에서의 생활이 재밌었다고 한다.. 그렇게 기억해 주니 참 다행인데 엄마인 나는 이제 트렁크만 봐도 멀미가 난다.
내 일상은 여행보다 안락하고 편안하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내가 다니는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고 시장을 다녀와
집안을 청소하고 빨래를 하고 가족들을 위한 건강한 음식들을 준비해 놓는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커피와 달다구리간식을 먹다가 마사지 기계에서 깜빡 잠이 든다.
모든 게 갖춰져 있고 안정적이다. 집은 각자가 꿈을 향해 열심히 달려가다가 쉴 수 있는, 재충전의 공간으로 세팅되었다.
여행을 가기 위해 내 짐을 미니어처로 만들 필요도 없고 아이들의 빠진 학교 스케줄 그리고 숙제를 메꾸기 위해 애쓸 필요도 없다.
여행비보다 여유로운 생활비로 내가 먹고 싶은 것, 소소하게 누리고 싶은 것을 누려도 그만큼의 효용이 있는 것이 내 일상이다.
그래도 아이러니하게 가끔은 여행을 간다..
이젠 트렁크만 봐도 한숨이 나지만
잦은 해외출장과 코로나 격리로 짐 싸고 풀기에 베테랑인 남편의 도움으로..
엄마의 교육열과 학업 스트레스로 여행을 기다리고 즐거워하는 아이들을 보기 위해
가급적 편하고 좋은 여행지를 고른다..
그런 날은 외식도 하고 청소도 안 해도 되는데…
나는 가족들이 아플까 걱정하거나 이상하게 내가 아프다..
내 집에 가면 원래 가던 병원도 갈 수 있고 내 집에서 쉬고 싶다는 생각이 계속 들지만
그래도 가끔은 여행을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