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마스 Nov 10. 2023

선 결혼 후 연애

결혼은 언제 하는 게 적당할까?


 나는 글을 쓰는 게 무섭다. 내 현실 속 지인들이 내 글을, 아니 내 삶을 읽게 될까 봐. 누구나 알다시피 때로는 가까운 지인보다 완벽한 타인에게 내 속을 털어놓기가 쉬운 법이다. 그래서 타인이 가득한 브런치라는 공간에 얼굴을 버젓이 올려두고 가장 가까운 친구마저 모르는 내 삶을 적는 거겠지. 언젠가 나를 아는 사람이 나타나 사라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직까진 완벽한 타인만이 가득한 안전한 곳이다.


 나는 유난히 어린 시절부터 이사를 많이 다녔다. 그래서인지 남들 다 있다는 유치원 학사모 사진 한 장 없으며 5학년까진 매년 다른 학교에 다녀 친구가 없었다. 그나마 6학년쯤 지방의 한 동네에 정착해 고등학교 1학년까지 살았는데 한 다리만 건너면 다 알 정도의 작은 도시였다. 그래서 소문이 빠르고 와전이 쉬우며 비밀이 없었다. 그 덕분에 나는 몇 년간 속마음은 털어놓는 게 아닌 혼자 간직하는 것임을 배웠다. 사실 길고 긴 교제 끝에 결혼하는 게 내 꿈이었지만 주위를 보면 동네가 좁아 헤어진 남자친구의 친구를 만날 수밖에 없는 게 이 동네의 현실이었다.


 그러던 중 고등학교 2학년 때 다른 지역으로 이사한 후 우연히 일을 하게 되었는데 매일 마감 때면 판매된 물량을 도매처에 주문하고 거래처 직원(이하 삼촌이라 칭함)분께 운송료를 드렸다. 삼촌이 매장에 머무르는 시간은 3~5분 남짓, 정산만 확인하고 가시는 터라 “안녕하세요.”“감사합니다.”가 오가는 대화의 전부였다. 첫 출근이자 처음 삼촌을 마주친 날 나는 막연히 우리가 만나게 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그러면 그렇지. 삼촌에겐 이미 만나는 상대가 있었다. 그러다 한 한 달쯤 지났을까? 여느 때처럼 운송료 정산을 기다리던 삼촌이 머뭇거리며 내게 남자친구가 있냐고 물었다. 하늘 높이 올라간 내 입꼬리와 새빨개진 얼굴도 잠시, 여자 좋아하는 바람둥이인가 싶어 확인이 필요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우리가 처음 마주친 날 삼촌도 나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고, 여자친구분과 헤어졌다는 것! (근데 지금은 대답 못 하는 걸 보면 아마 잘 보이려고 꾸며낸 것 같기도 하다. 이런, 내가 남편에게 당한 건가?)


 그렇게 난 처음 본 사람과 결혼했다. 게다가 우리는 너무 달라서 맞는 게 별로 없다.​ 물론 지금도 5년 이상 연애하는 친구들을 보면 신기하기도, 긴 연애 끝에 결혼하면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기도 하다. 그러나 부럽진 않다. 비밀이 많은 내겐 가장 친한 친구에게도 보여준 적 없는 본연의 나를 온전히 보여줄 수 있는 완벽한 타인, 그게 남편이었으니까. 더군다나 나와 연결고리가 없는 사람, 그래서 안전한 사람.


매거진의 이전글 너는 남편이랑 잘 맞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