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죄는 삶이 피폐하지 않은 죄
# 17
검찰청에서 문자가 왔다. 내가 고소한 형사사건이 증거불충분으로 혐의없음, 무죄 결정되었다고.
오래전의 이야기다. 당시 나는 고등학생이었는데 내가 일하던 곳은 소위 말하는 ‘남초*’. 즉 나를 제외하면 사장님을 비롯해 직원 모두가 남자였고, 심지어 상가 사장님들만 모인 조기축구 동호회가 있었는데 그 사장님들의 매장 직원까지도 전부 남자였다. 가끔 조기축구 모임 매장이 다 같이 모여 회식하는 날이면 30명가량의 남자 사이에 유일한 여자가 바로 나였다. 나랑 적게는 2~5살 차이부터 크게는 30살 이상 차이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남자분들이 한자리에 모인 곳에 내가 껴서 회식하다니, 고기가 식도를 꽉 막고 내려가지 않는 느낌이었다.
내가 학생이었기에 더 그랬을까? 술에 취해 애인이나 결혼 유무와 관계없이 내게 사랑한다고 말하거나 어깨동무 같은 가벼운 터치가 회식할 때마다 있었고 어느 순간 내 의사는 묻지 않는 게 당연시해졌다.
아무튼, 같이 일하는 직장 상사도 여느 남자분들처럼 내가 편해졌는지 몸매 지적이며 본인의 사생활에 관해서도 스스럼 없이 얘기하기 시작했다. 본인이 술을 먹으면 개가 된다느니, 본인의 성관계 파트너가 어쩌고 하면서 말이다. 가수 박원 님의 ‘노력’이라는 노래를 들을 때면 본인 이야기 같다며 결혼을 약속한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싶다고 거의 울부짖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직장 상사는 술에 잔뜩 취한 채 나를 불러냈고 일하던 매장의 창고 겸 직원 휴식용으로 마련된 오피스텔로 향했다. 성폭행이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내 바지의 버클은 풀지 못했지만, 그 외 추행은 피할 수 없었다. 차마 어떤 일이 있었는지 자세히 적을 수 없음을 양해 바란다. 머리로는 이미 모든 걸 적어냈지만 차마 손이 움직이지 않는다. 다음 날 전혀 기억 못 하던 직장 상사, 나는 매장을 그만두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 뒤에야 고소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바지 버클 푸는 것을 시도했으니, 강간미수가 아닌가? 싶지만 실제 고소 당시 죄목은 달랐다. 그렇게 검찰청에 출석했을 때였다. “단순 호감 아니었느냐?”, “왜 도망가지 않았느냐?”, “왜 주위에 알리지 않았느냐?” 등 갖가지 질문과 가해자 조사 없이 피해자 조사만 진행한다는 걸 토대로 추측건대 기소되지 않겠구나 싶었다.
하긴 변호사님도 검찰의 피해자 조사는 이례적이라고 하셨을 만큼 피해자인 내가 거짓말 탐지기 조사를 거부한 점, 피해자인 내가 정신과 진료를 받지 않은 점, 피해자인 내가 성폭행 피해를 주장하고도 결혼과 출산을 한 점 모두 누군가에겐 신빙성이 없다고 판단되는 듯했다. 온전치 못한 정신으로 피폐하게 살아야만 피해자가 되나 보다.
결국 직장 상사의 거짓말 탐지기 검사 결과 일부 거짓이 나왔음에도 사건이 오래된 점, 직장 상사의 ‘내가 직장 상사를 좋아했고, 진지하게 교제를 고민하던 사이에서 일어난 합의된 관계’라고 진술한 점을 근거로 증거불충분, 혐의없음이 결정되었다. 바로 다음 날도 기억 못 하던 사람의 터무니 없는 진술이 기가 찼고 전부 수용되었다는 것에 무력했다. 내가 허락하지 않았는데 합의는 누가 한 걸까? 세상이 미웠다. 소위 말하는 빽 하나가 없어 허우적대도 그대로인 내 인생이 싫었다. 나는 몇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직장 상사를 마주칠까 봐 그 동네에 가지 않는다. 다시 일하는 게 무서워 평생 세상 밖을 나가고 싶지 않았다.
나는 이기적인 사람이다. 피폐한 삶을 살기 싫어서, 정신과는커녕 문밖 나가기조차 싫어서 내 지옥 같은 삶의 도피처로 결혼과 출산이라는 합법적 은둔생활을 선택했으니 말이다. 피해자가 멋대로 가정을 꾸린 벌이라고 생각하자. 그래도 살고는 있으니까,
마음 같아선 지금도 저 직장 상사의 사진과 함께 신상을 마구 올리고 싶지만 이 마음을 한 방울도 남김없이 모아두다 기필코 저 악랄한 직장 상사의 이름과 대대손손 저 집안을 괴롭혀 주라는 유언을 남길테다.
남초*
한 인구 집단 내에서 남성(男)의 수가 여성의 수를 초과(超)하는 상태를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