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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d Fontes Nov 27. 2015

음악이야기 - 에디트 피아프

에디트 피아프





프랑스 파리의 Belleville에서 1915년 12월 19일에 태어난 에디트 피아프의 본명은 Édith Giovanna Gassion으로  거리에서 노래를 부르는 가수였던 프랑스인 어머니와 거리의 곡예사였던 이탈리아계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군대에 가야 하는 아버지는 에디트를 알코올중독자인 할머니에게 데려간다. 친할머니에게 맡겨지면서 에디트는 창녀촌에서 유아 시절을 보낸다. 그녀는 가난 때문에 영양실조와 시력을 잃을 위기에까지 처할 정도로 에디트의 어린 시절은 불우했다. 에디트는 3살 때 각막염에 걸려 실명의 위기에 놓여 있었으나 7살에 기적적으로 실명에서 벗어난다.


1929년, 에디트는 14살 때 유랑곡예사인 아버지를 따라 프랑스 전역을 돌아다니나, 곧 아버지와 결별한다. 16살 때 루이 뒤퐁과 사랑에 빠져 딸을 낳지만 수막염으로 2살에 죽고 만다. 


1935년, 20살의 에디트는 나이트클럽을 하는 루이 르플레의 눈에 뜨이게 되어 샹젤리제 거리의 클럽 르 제르니에서 노래를 하게 된다. 그는 그녀에게 ‘작은 참새 피아프’라는 뜻의 'Môme Piaf'라는 예명을 지어주지만 이듬해 1936년 르플레가 조폭에게 살해되고, 에디트는 사건의 혐의자로 연루되나 무혐의로 석방된다.


그녀는 이미지를 회복을 위해 레몽 아소와 손잡는다. 아소는 그녀의 예명을 에디트 피아프로 바꾸고 올바른 발성법을 훈련시킨다. 예술적 감각과 매너를 교육시키고 후에 그녀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검은 드레스를 입게 한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국제적으로 명성을 얻게 된 에디트는 유럽과 미국, 남미를 순회 공연하였다. 1950년, 미국 공연에서 처음에는 그리 좋은 평판을 얻지 못하였다. 그러나 점차 주목을 받게 되어 유명한 에드 설리반 쇼에 8번, 카네기 홀에서 두 차례의 공연을 갖는다.



피아프는 1951년 교통사고를 당해 그 후유증으로 매일 10차례가 넘는 진통제를 맞는다. 그 때문에 모르핀과 술에 젖게 되고 중독에서 벗어나려고 무진 애를 쓴다. 남편 자크 필스는 그녀를 재활원에 입원시키나 효과가 없었다. 그리고 그들은 이혼하고 만다.

피아프는 1963년 10월 10일 간암으로 세상을 뜬다. 


피아프가 진심으로 사랑했던 연인은 권투선수 마르셀 세르당이었다. 마르셀은 프랑스의 전설적 권투선수로 그 당시 미들급 세계챔피언이었으며 세 아이들 둔 유부남이었다. 그녀는 그에게 자신의 모든 사랑을 걸었으며 그녀의 사랑은 신문의 머리기사를 장식했다. 그러나 불행히도 1949년 10월, 막셀은 프랑스에서 뉴욕에 있는 그녀를 만나러 오다가 비행기 추락사고로 그만 세상을 뜨고 만다. 마르셀의 비행기가 지상으로 곤두박질쳤을 때 그녀는 비극적 사랑의 무게를 온몸으로 짊어지게 된다. 피아프의 대표적인 노래 ‘Hymne à l'amour’(사랑의 찬가, 1949)가 그것이다. 소설과 같은 현실 세계의 비극적 사랑이 영원의 세계에서 더욱 아름다운 노래로 태어나게 된 것이다.



http://www.youtube.com/watch?v=znQxWx5yrBQ




Hymne A L'Amour (사랑의 찬가) / Edith Piaf 


Le ciel bleu sur nous peut s"effondrer 

Et la terre peut bien s"ecrouler 

Peu m"import!!!!!e si tu m"aimes 

Je me fous du monde entire 

푸른 하늘이 우리들 위로 무너진다 해도 

모든 대지가 허물어진다 해도 

만약 당신이 나를 사랑해 주신다면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아요 


Tant qu"l"amour inond"ra mes matins 

Tant que mon corps fremira sous tes mains 

Peu m"import!!!!!e les problemes 

Mon amour puisque tu m"aimes 

사랑이 매일 아침 내 마음에 넘쳐 흐르고 

내 몸이 당신의 손 아래서 떨고 있는 한 

세상 모든 것은 아무래도 좋아요 


J"irais jusqu"au bout du monde 

Je me ferais teindre en blonde 

Si tu me le demandais 

당신의 사랑이 있는 한 

내게는 대단한 일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에요 

만약 당신이 나를 원하신다면 

세상 끝까지라도 가겠어요 


J"irais decrocher la lune 

J"irais voler la fortune 

Si tu me le demandais 

금발로 머리를 물들이기라도 하겠어요 

만약 당신이 그렇게 원하신다면 

하늘의 달을 따러, 보물을 훔치러 가겠어요 


Je renierais ma patrie 

Je renierais mes amis 

Si tu me le demandais 

On peut bien rire de moi 

Je ferais n"import!!!!!e quoi 

Si tu me le demandais 

만약 당신이 원하신다면 

조국도 버리고, 친구도 버리겠어요 

만약 당신이 나를 사랑해 준다면 

사람들이 아무리 비웃는다 해도 

나는 무엇이건 해 내겠어요 


Si un jour la vie t"arrache a moi 

Si tu meurs que tu sois loin de moi 

Peu m"import!!!!!e si tu m"aimes 

Car moi je mourrais aussi 

Nous aurons pour nous l"eternite 

만약 어느날 갑자기 

나와 당신의 인생이 갈라진다고 해도 

만약 당신이 죽어서 먼 곳에 가 버린다해도 

당신이 나를 사랑한다면 내겐 아무 일도 아니에요 

나 또한 당신과 함께 죽는 것이니까요 


Dans le bleu de toute l"immensite 

Dans le ciel plus de problemes 

Mon amour crois-tu qu"on s"aime 

Dieu reunit ceux qui s`aiment

그리고 우리는 끝없는 푸르름 속에서 

두사람을 위한 영원함을 가지는 거에요 

이제 아무 문제도 없는 하늘 속에서... 

우린 서로 사랑하고 있으니까요... 



부두 노동자였던 이브 몽탕(Yves Montand)과 캬바레를 전전하던 그리스인 조르주 무스타키(Georges Moustaki)는 피아프의 도움으로 최고의 가수가 되었다. 그러나 1947년 미국에서 만난 챔피언 마르셀 세르당 그리고 1961년 진정한 두 번째 남자 26세 연하의 미용사 그리스 청년 테오파니 랑부카스(Theo SArapo)를 제외한 그녀의 인생에서 모든 남자들은 모두 그녀를 버렸다. 이후 마약과 술과 문란한 사생활 속에서 피아프의 영혼은 서서히 죽어갔다. 그녀에게 돈과 인생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닥치는 대로 소비했고, 영혼까지도 아낌없이 소진시켜 버렸다.


어린 시절 밑바닥을 맴돌았던 피아프는 스타가 된 뒤에도 샹송을 통해 하층민의 일상과 감정을 절규하듯 극적으로 표현했다. 그리하여 그녀의 노래들 속에는 뱃사공, 창녀, 파리의 평범한 시민, 거리의 악사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파담 파담 (Padam Padam), 난 아무것도 후회치 않아(Non, Je Ne Regrette Rien), 장밋빛 인생(La Vie En Rose), 밀로드 (Milord), 나의 병사들 (Mon legionnaire). 거리에서 노랫소리가 울려 퍼지네 (Un refrain courait dans la rue), 파리의 지붕아래 (Sous le ciel de Paris) 등 이렇게 샹송의 서민성을 체험한 피아프는 프랑스를 넘어 전세계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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