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정도 경력 단절이 있었던 사람을 보면 보통 뭐라고 생각할까? 말은 하지 않아도 아마 속으로 “감을 잃었겠지” 라고 생각할 것이다. 자격지심에 발끈할지 몰라도 사실은 사실이니까, 할말은 없다. 매일 아침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고 하루 종일 자리에 앉아 업무에만 몰두하는 것 자체도 적응이 필요한 쉽지 않은 일이다. 일을 하는 순서와 방식, 조직에서의 커뮤니케이션, 문서 작업 등 모든 것이 다시 몸에 익을 때까지 시간이 걸릴 것이다. 게다가 이직은 처음이라 새로운 기업의 조직 문화에 대한 이해도 또한 부족하다. 모든 것이 낯설고 어색하지만, 어차피 나는 신사업 법인으로 설립되는 회사이니 크게 신경쓰지 말고 내 할 일이나 잘 해야지. 라는 생각은… 엄청난 착각이었다.
20년지기 지인과 나는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고자 이 그룹사에 함께 왔다. 신규 법인 설립을 하고, 사업 계획을 세우고, 채용을 하고, 거래처를 만나고… 차근차근 계획을 구체화시키며 추진해나갈 생각뿐이었다. 그러나 내가 발을 들여놓은 이 낯선 세상은 전혀 친절하지 않았다. 누구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누구도 설명해주지 않은 일들에 대해서 나에게 공격을 해오기 시작했다. 살면서 면전에서 듣게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던 말들.
“당신 월급 어디에서 나오냐”, “그거 하라고 앉아 있는 사람 아니냐”, “이게 동네 구멍가게에서 라면 사는 일이냐”
파악도 되지 않은 라운드에서 난데없이 얻어 맞으니 어안이 벙벙할 뿐이었다. 그나마 면전에서 하는 말은 대응이라도 할 수 있었다. “저렇게 중요한 자리에 저런 경단녀를 앉혀놔서 되겠냐”는 뒷담화를 들을 때에는 혼자 쓰디쓴 눈물을 삼킬 수 밖에 없었다.
모두가 대표
나이 지긋한 아저씨들이 줄줄이 앉아 있다. 노트북은 커녕 노트나 펜 조차도 들고 있는 사람이 없다. 다리를 꼬고 팔짱을 끼고 비스듬히 기대어 한 마디씩 얹을 뿐이다. 재밌는 건 모두가 서로를 “O대표”라고 부른다. 회사는 하나인데, 도대체 무엇의 대표들일까 저들은. 앞뒤 맥락도 없고 구체적인 현실화 방안도 오가지 않는다. 그렇게 이 사업에 한 발씩 담그고 싶은 O대표님들이 줄줄이 엮여 있었다. 그렇게 테이블 위에서만 그리는 “그림”은 장밋빛 미래가 따로 없다.
모두가 대표. 말로만 떠들면 소는 누가 키우나.
도와주는 포지션
“도와준다”고 했다. 이 그룹사에 대해 모르는 게 많을 테니 도와주는 역할을 맡았다고 했다. 처음에는 그냥 그렇게 생각했다. 도와준다니 감사한 일이지 않은가. 그러나 회사라는 조직에서 “도와준다”라는 말과 “역할”은 함께 공존할 수 없는 말이라는 것을 곧 깨달았다. 조직도 내에 들어온 이상 도와준다는 것은 없다. 도와준다는 것은 내 역할이 아니지만 해주고 싶을 땐 해줄 것이고 해줄 필요없다 느끼면 하지 않겠다 라는 뜻이라고, 게다가 본인 또한 그렇게 해석하고 있다면 더더군다나 말도 안 되는 RnR이다. 도와준다는 개념을 갖고 있으면 정당한 업무 요청을 할 수 없다. 업무를 요청하기 위해서는 매번 눈치를 보며 부탁을 해야 한다. 정상적인 업무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있어서는 안 될 개념이다. 이렇게 되면 어쩔 수가 없다. 그냥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러므로 당신은 이 조직에서의 어떤 역할과 기여도 없음이 분명해지리라.
다이다이 맞다이
새로운 세상으로 나와보니 세상에 희한한 사람들이 끝도 없이 나타난다. 이전에도 수많은 기업을 상대하는 일이라 정말 다양한 사람을 만나왔다고 생각했는데, 이종 업계로 넘어오니 도대체 사람들의 범주에 경계가 없다. 앞에서 웃고 있는 이 사람이 속으론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떤 방식으로 뒤통수를 칠지 경계를 늦출 수가 없다. 자신들의 이익에만 혈안이 된 사람들, 그러나 지금은 자신의 이익만 좇는 사람들과는 무엇도 이루어 낼 수 없는 시기이다. 모두가 같은 미래를 위해 지금을 희생할 생각이 없다면 좀처럼 나아갈 수 없는 일을 우리는 시작했기 때문이다. 사회에서의 일이란 여전히, 사람을 다루고 마음을 하나로 모아야 하는 참 어려운 일이다.
심지어 우리를 두고 내기를 했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올해가 가기 전에 집에 돌아간다고.
제대로 시작도 하기 전에,
집에 가셔야 할 사람들이 너무 많다.
두고 보시지요. 집에 가는 사람이 우리는 아닐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