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고 싶은 만큼 꾸는 게 꿈이라지만, 우리는 어디까지를 꿈 꿀 수 있을까.
화성을 꿈 꾸는 일론머스크처럼, 엄청난 재력가만이 큰 꿈을 꿀 수 있다고 믿어온 건 아닐까.
어쩌면 꿈을 꾸는 것조차 연습이 필요한 일인지도 모른다. 하루를 살아내기도 버거운 날들 속에서 손에 잡히지도 않는 꿈을 꾼다는 것은 여유로운 사치에 불과하니까. 그리고 그런 날들이 지속되면 꿈을 꾸라는 누군가의 긍정적 메시지도 그저 야속한 헛소리로 밖에 들리지 않게 된다. 축축하게 젖은 하루 속에서 꿈이라는 단어는 오히려 나를 더 작아 보이게 만들 뿐이다.
우리는 “온 세상에서 사랑받는 브랜드를 만드는 회사”를 만들기로 했다.
한국어 밖에 할 줄 모르고,
해외 경험도 거의 전무하지만,
브랜드를 만드는 방법도, 사랑받는 방법은 더더욱 잘 모르지만,
그래도 우리는 그런 꿈을 꾸기로 했다.
세계를 무대로 꿈을 펼치기 위해 우리는 한 달에 한번씩 해외로 나갔다. 첫 달 태국을 시작으로 인도네시아, 중국, 대만, 일본, 프랑스, 이탈리아, 헝가리, 폴란드, 오스트리아, 독일, 베트남, 두바이, 그리고 얼마 전 홍콩까지… 달력 한 장을 넘길 때마다 지도 위의 작은 점들이 우리 발자국으로 채워져 갔다.
두 발로 그 땅을 밟고 두 눈으로 그 나라에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그 안에서 우리가 서 있을 자리를 조용히 상상했다. 익숙하지 않은 짧은 영어로 더듬거리며 질문하고, 설명을 들으며 머리를 끄덕이고, 수없이 많은 샘플을 만지고 테스트하고 실패하고 다시 배웠다. 그 여정은 거창한 모험이라기보다, 우리가 꾸고 싶은 꿈에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가기 위한 작고 진지한 걸음들의 연속이었다.
오늘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그 무엇이 불과 5년 후에 10조의 가치를 지닐 수 있을까?
그런데 그러기로 했다. 그게 될까? 안 될까? 가능해? 라는 질문만을 던진다면 아마도 답은 “불가능”일 것이다. 그래서 그런 질문은 하지 않기로 했다. 될지 안 될지를 물어봐 봤자 누구도 그렇다 답할 수도, 혹은 답을 한다 한들 그게 어떤 의미를 주지도 못한다. 마치 앞날이 창창한 사회초년생이 “내가 잘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으로 고민의 늪에 빠지는 것과도 같다. 그럴 땐 그 질문 자체가 틀려먹었기 때문이다. 답을 알고 시작하는 사람은 없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시작하고, 누군가는 시작을 미루다가 영영 시작하지 못한다. 미래에 대한 의구심을 품는 질문 대신, 우린 꿈을 이루기 위해 “지금 무엇을 할 것인가”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그러면 5년 후 10조의 방향으로 단 몇 걸음이라도 걸어가 있을테니…
그렇다면 우리의 꿈은 돈인가?
물론 돈을 많이 번다면 아주 좋을 것이다. 함께 하는 동료들이 돈을 많이 벌어서 자신의 삶을 안락하고 풍요롭게 잘 일궈갔으면 참 좋겠다.
그러나 누군가 내게 “너의 꿈은 무엇이냐”라고 묻는다면, 이렇게 말 할 것이다.
‘꼬부랑 호호 할머니가 되어서도 이러고 있는 거에요.
지금의 내 동료들과 다 함께 늙어가면서 지금처럼 사업을 한답시고 니가 맞네 내가 맞네 해가면서 꽁냥꽁냥 싸우는 거에요. 그렇게 서로 울다가 또 다시 웃고 하면서… 그저 그렇게 무언가 계속 하는 일들이 재미가 있어서 깔깔 대며 사는 거에요.
근데 그게 꽤나 어려운 일이에요. 계속 이러고 살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우리가 진정으로 바라는 꿈은,
함께 늙어가며 오래도록 일할 수 있는 인생의 풍경 자체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