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없음. 그러나 도망갈 수도 없음.

by 빨간약

너무나도 감사하게도 좋은 사업 기회에 합류하게 되었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감당하기엔 너무 큰 무대였다. 그럼에도 대표님은 어떤 필요와 믿음으로 나를 불러 중역의 자리에 앉혔다. 단순히 친분 때문만은 아닐 거라 생각하면서도, 문득 불안이 스친다. 혹시 그녀가 과거 화려했던 시절의 나를 기억하고 착각한 것은 아닐까. 곧 후회하게 되는 건 아닐까.


그 못난 의심을 몇 번이나 입 밖으로 내뱉었다.

“아니라고 생각하면 언제든 말씀해주세요.”


그러나 그런 말을 반복하는 것도, 우리 모두에게 도움이 되지 않음을 안다. 그래서 이제는 속내를 삼키고, 매일 쏟아지는 과업 속에 몸을 묻듯 하루를 보낸다.


전 직장에서도 그랬다. 나는 스스로를 유능하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그저 몸을 사리지 않는 성실함으로 버텼고, 사람들은 그 희생과 의지를 높이 사주었다. 신입일 때는 그것으로 충분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이젠 내 어깨 위에 너무 많은 사람들의 삶이 걸려 있다. 조직을 똘똘 뭉치게 하고, 불가능해 보이는 일도 결국 ‘되게 만드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진두지휘할 만한 능력은 부족하지만 그래도 오늘,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는다. 하루에도 수십 번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괜찮은가.”
그 물음은 나를 잠시 흔들어놓지만 이내 곧 나 자신을 내 자리로 돌려놓는다.


난 어른이니까.
어른이란 모든 것이 괜찮은 사람이 아니라,
괜찮지 않더라도 스스로를 책임지기 위해 언제나 제 자리로 다시 돌아오는 사람이니까.



요즘 내 마음을 붙잡아주는 문장이 있다.


“용기를 내어, 현재에 안주함으로써 생기는 ‘불만’을 선택하기보다
변화를 선택함으로써 생기는 ‘불안’을 선택하기를 바란다.”
— 오은환, 《꽃은 누구에게나 핀다》


어쩌면 지금의 나는, 불안을 선택한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아직은 모든 게 낯설고 버겁지만, 그래도 ‘불만보단 불안’을 택한 내가 조금은 괜찮게 느껴진다.



얼마 전, 업계 대표들과의 라운드 테이블에 참석했다. 대표님의 대리인 자격으로 앉은 자리였지만 마음속에선 내내 낯선 그림자가 드리웠다. 나와 비슷한 나이의 사람들은 이미 각자의 회사를 운영하며 브랜드의 성과와 매출, 시장의 흐름을 이야기했다.


그들 사이에서 나는 유난히 조용했다. 내가 꺼낼 수 있는 이야기가 없었다. 이제 막 첫 페이지를 넘긴 사람에게 그들이 던질 질문도, 내가 답할 이야기들도 없었다. 한때는 비즈니스를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마케팅 전문가로서 조언을 아끼지 않던 내가, 그 순간만큼은 그 모든 과거의 모습을 접어 넣듯 감춰두었다. 지금의 나로는 감히 꺼내기 어려운 이야기들이었기에.


의도적으로 어깨를 펴고, 가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속으로는 서늘한 바람이 지나갔다. 식사가 끝나갈 무렵, 쑥스럽게 명함 몇 장을 내밀었다. 그들의 손에 건네진 내 이름이 그저 가벼운 종이 한 장처럼 느껴졌다.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 창밖으로 스치는 불빛이 유난히 흐릿했다.

‘조금 더 당당했어야 했는데.’
‘나도 언젠가는, 저들처럼 이름을 가진 브랜드를 세우겠지.’
그런 생각을 되뇌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아직 자신은 없다.
그렇다고 도망칠 수도 없다.
깊은 밤 끝에 새벽이 찾아오듯, 불안한 마음 위에 작은 결심을 켜며 다시 하루를 시작한다.
오늘도, 불만이 아닌 불안을 선택하며 버티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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