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를 만든다는 것

by 빨간약

요즘은 뭐든지 넘치는 시대다. 다 외우지도 못할 브랜드들과 지구 어딘가에 쌓여 썩어갈지도 모를 제품들, 끝없이 스크롤해도 계속해서 노출되는 SNS 컨텐츠들까지.
조금만 이름이 알려졌다 싶으면 사람들은 곧 자기 이름을 단 브랜드를 만든다. 만드는 일 자체는 이제 어렵지 않다. 제조사에게 원하는 것을 이야기만 하면, 아니 때로는 말하지 않아도 이미 준비된 답안지를 내민다. 만들어진 것들 중에서 고르고, 로고를 붙이고, 설명 몇 줄을 얹으면 곧 브랜드가 된다. 이를 ‘화이트 라벨링’이라 부르며 당연한 듯 너무 쉽게 업무를 추진한다. 기획 역시 마찬가지다. 챗GPT에게 몇 번의 질문만 던지면 그럴듯한 브랜드 콘셉트와 세계관, 심지어 제조 커뮤니케이션 가이드까지 손에 쥘 수 있다. 브랜드는 이제 ‘만들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안 만들 이유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도 이 세상에는 만들어졌으나 불리지 않는 브랜드가 너무 많다. 이름은 있지만, 누구의 입에서도 불리지 않는 브랜드. 문제는 대개 그다음이다. 시작은 어찌어찌 하지만 발주 앞에서 망설이게 된다. 최소 수량이라 해도 한 번에 빠져나가는 돈은 결코 가볍지 않다. 유통기한이 있는 제품이라면 그 순간부터 시간은 적이 된다. 아무리 공들여 만들어도, 아무도 모른다. 조용히 창고에 쌓여가는 박스를 바라보며 브랜드의 첫 좌절은 그렇게 시작된다.


그래서 모두가 말한다. 마케팅이 가장 어렵다고. 그 말은 맞다. 마케팅에는 정답이 없다. 한 번의 성공이 다음을 보장하지도 않는다. 겉으로 보기엔 인플루언서 하나 잘 써서 한방에 터진 것처럼 보여도, 실제로 마케팅이란 한땀한땀 땀 흘려 일구는 농사와도 같다. 철저한 설계와 치밀한 실행 없이는 절대 손에 아무것도 쥘 수 없다. 하지만 그보다 더 어려운 건 결국 ‘총알’이다. 핫한 컨텐츠가 사람들의 시간을 사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의 시간을 많이 산 컨텐츠가 바로 핫한 컨텐츠이자 대세가 된다. 결국 자본이 이 시대의 새로운 기준을 만들어 가는 시대다.


브랜드를 만든다는 건 결국 선택의 연속이다. 어디에 시간을 쓰고, 어디에서 관심을 사고, 무엇을 기준으로 삼을 것인지에 대한 선택. 무작정 버티는 것도, 막연히 오래 걸릴 거라 체념하는 것도 답은 아니다. 그래서 나는 지름길이 없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대신, 정답에 가까워지는 길을 끊임없이 좁혀가고 싶다. 실패를 줄이고, 가능성을 모으고, 확률을 설계하는 방식으로.


브랜드는 결국 ‘이야기’가 아니라 ‘태도’에서 시작된다고 믿는다. 무엇을 만들었는지가 아니라, 왜 이것을 지금 이 방식으로 세상에 내놓는지. 돈으로 관심을 살 수는 있어도 신뢰까지는 살 수 없다. 그 신뢰는 반복되는 선택과 일관된 태도에서만 쌓인다. 그래서 나는 조급해지지 않으려 한다. 대신 가볍게 만들지 않으려 한다. 브랜드를 만든다는 것은, 결국 세상에 하나의 질문을 던지는 일이니까. 그리고 그 질문에 끝까지 책임지는 일일 테니까.


넘치는 시대일수록, 불리지 않는 이름이 되지 않기 위해.
나는 오늘도 브랜드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브랜드가 ‘불릴 이유’를 고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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