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ADHD 외계인의 지구 적응기
우리 집에는 만 7세짜리 외계인이 살고 있다. 이름하여 '말안들인'. ADHD라는 특별한 선물을 받고 태어난 이 친구는, 최근 우울증과 조증이라는 보너스 옵션까지 의심받고 있는 중이다.
이 외계인은 나를 '공주맨'이라고 부르거나, 기분 좋을 때는 '엄마'라고도 한다. 참고로 이기는 것에 대한 집착이 장난이 아니고, 폭력성도 보유 중. 완전 작은 헐크다.
만 5세부터 시작된 우리의 약 찾기 여행. 벌써 3년째다. 한 달에 한두 번씩 병원에 가는 건 우리의 일상. 약이 맞지 않아서 상태가 악화되면 매주 병원에 문안을 드리기도 했다.
지난 병원에서는 증상이 잡히지 않자 약을 늘리기만 했다. 5개! 무려 5개나 되는 약이 우리 말안들인의 작은 뇌를 공략했지만, 여전히 선생님을 때리고 친구들에게 욕을 하며 물건을 투척하는 미니 어벤저스는 건재했다.
새로운 병원에서 처방받기 이제 한 달 차. 오늘 병원에서 받아온 새로운 조합은 콘서타와 리스페리돈 두 개. 마치 새로운 K-팝 듀오 같은 이름이다.
그런데 여기서 반전! 지난 한 달간 먹였던 폭세틴이라는 우울증 약의 부작용 때문에 말안들인이 조증 상태가 되었다는 것. 나는 그동안 조증이라고 하면 기분이 좋아져서 착해지는 '말잘들인' 모드라고 생각했는데, 완전 오산이었다.
조증은 우울증보다 무서웠다. ADHD 증상을 터보 엔진으로 강화시켜 버렸다.
말안들인의 조증 증상 베스트 컬렉션:
밥 먹다가 갑자기 물고기 이야기, 그다음은 자작 캐릭터 소개
러닝 중 통제불가 전력질주 (올림픽 나갈 기세)
길가에서 갑자기 영어 실력 폭발: "Oh! Dandelion is growing in a crack in the sidewalk!" (뭔가 시적이긴 하다)
선생님 욕하는 만화 창작: "빡침샘에게 개가 붙었어요" (개빡침샘- 센스는 있다)
반성문을 시로 작성 (문학적 재능?)
학교 탈출 후 보안관과 담임의 추격전 (액션 영화 같았음)
아침식사 후 폭세틴을 먹이고 30분 후부터 시작되는 방언 같은 주절주절 토크쇼도 약의 부작용이었던 것.
정신과 선생님 말씀으로는, 조증환자들은 모두 슈퍼빌런이라고. 자신감이 하늘을 찌르는 말안들인들의 집합소. 창문에서 뛰어내리려 하거나 의사 말도 안 듣는 완전 통제불가 상태라고 한다.
오늘 아침 폭세틴을 중단하자, 아토목세틴을 안 먹었는데도 과잉행동이 거의 사라졌다. 약 좀 바꿨다고 이렇게 변하는 걸 보니, 우리 말안들인의 뇌가 참 예민하고 특별하구나 싶다. 역시 외계인이야.
조증이 절정일 때는 나도 한계였다. 집에 혼자 있으면 펑펑 울었다.
"이놈의 새끼야, 언제까지 네 뒤치다꺼리를 해야 하는 거야? 학교도 제대로 못 다니고, 친구도 못 사귀고... 내 인생 참 불쌍하다..."
그래도 내가 슬퍼하면 잠잠맨(잠이 많다고 해서 말안들인이 지어준 이름. 남편) 이 커피랑 떡볶이 사주고 위로해 줘서 기분이 많이 나아졌다.
뇌과학 책에서 우울증 약 찾기를 탐험에 비유했는데, ADHD 약 찾기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지금 미지의 영역을 탐험하는 모험가들.
언제쯤 완벽한 약 조합을 찾을까?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건, 우리 말안들인이 지구에서 좀 더 편하게 살 수 있는 그날까지 이 탐험을 멈추지 못할 거라는 것.
오늘도 우리의 모험은 계속된다. 화성에서 온 말인들인 외계인과 공주맨의 지구 생존기, 시즌 2가 곧 시작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