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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야 Jan 27. 2023

라면과 금사료



라면은 인간용 사료가 아닐까 싶다. 언제 어디에서나 동일한 맛을 내고, 별다른 정성을 쏟지 않아도 평균 이상의 맛으로 끼니를 때우게 하니까. 






개그맨 강호동은 <라끼남>에서 안성탕면을 가장 좋아하는 라면으로 꼽았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안성탕면은 기본에 충실한 라면이라, 어떤 재료와 만나도 궁합이 잘 맞단다. 기본이라... 그래서 싫다. 개성 없이 밍밍한 국물, 없이 퍼지는 얇은 면발. 기본에만 충실한 이 라면은 강호동처럼 화려한 토핑을 더해 끓이는 사람이나, 남녀노소 누구도 싫어하지 않기 때문에 다른 브랜드의 라면을 사지 않는 사람들이 가장 좋아할 것 같다. 


어린 시절 우리 집 찬장에는 늘 안성탕면만 있었다. 20~30개씩 일렬로 쭉 서있는 주황색 봉지를 한참 쳐다보다가, 찬장 문을 닫고 끼니를 거른 적도 있다. 너무 지겨워서. 


할머니는 도대체 왜 안성탕면만 고집하셨을까. 안성탕면이 싫다는 손녀의 투정도 소용없을 만큼 안성탕면을 좋아하셨나? 


아니다. 할머니는 라면보단 국수를 좋아하셨다. 라면만 먹으면 속이 불편하다고, 꼭 거기에 소면을 넣어 끓이셨다. 그것도 멸치국수를 끓이는 게 손이 많이 가니까, 간단히 한 끼를 때우려고 라면을 꺼내신 거지 라면 자체를 좋아하는 분이 아니셨다. 그러면 도대체 그 이유가 뭘까.


몇 년 전, 오빠들과 옛날이야기를 하다가 "안성탕면이 싫어. 어렸을 때 너무 많이 먹어서 질려."라고 했다. 내 이야기를 듣던 큰 오빠의 대답에서, 왜 우리 집은 안성탕면만 먹었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때, 안성탕면이 제일 쌌을 걸.
제일 싸니까 그걸로 산 거지.







한 번 더 들어가, 비빔라면을 팔도비빔면, 배홍동 비빔면, 찐비빔면으로 구분하듯 육류 단백질 사료는 소고기 사료, 돼지고기 사료, 양고기 사료, 사슴고기 사료 등으로 정리가 되는데 이렇게 쓰면서 보니 사료의 세계가 라면 세계보다 훨씬 큰 것 같다.


아무튼 이처럼 다양한 사료 세계 속에서 일부 보호자는 큰 고민 없이 사료를 선택하지만, 또 어떤 보호자들은 끊임없이 사료의 세계를 탐험한다. 흔히 '좋다'라고 하는 사료는 꼭 샘플을 받아 먹여보고, 휴먼 그레이드 이상의 프리미엄 제품을 사는 데 조금도 주저하지 않는다. 


유기농 야채와 곡식, 과일이 들어가야 하고, 방목해 자라 스트레스 없는 육류 단백질원을 중요시한다. 음식에 부족한 유산균이나 천연 영양 성분이 들어가길 바라고, 사료 제조사의 경영 철학까지 따진다. 한 끼를 먹이더라도 좋은 걸 먹이고 싶은 마음에서다.



강아지들이 좋은 사료, 비싼 사료를 유독 잘 먹거나 좋아하는 건 별개의 일이다. 사람도 유기농 샐러드보다 인스턴트 라면에 더 끌리지 않나. 기호성에 따라 호불호가 나뉘는데 만약 개님의 입맛에 맞지 않아 끼니를 거른다면, 발을 동동 굴리며 계란이나 소고기, 닭고기 같은 토퍼를 더한다. 상대적으로 가격이 낮은 사료에 인공첨가물이나 출처를 알기 어려운 재료가 들어갈 확률이 높기 때문에, 한 번 사료 등급에 관심을 갖게 된 보호자라면 일정 기준 이하의 사료를 구입하지 않는다.







한 달 전, 사료계의 에르메스, 금사료라고 부르는 비싼 제품을 정가에 샀다. 할인은커녕 배송비를 내지 않은 걸 다행으로 여기면서. 


그런데 샘플 반응과 다르게 영 좋아하질 않았다. 애타는 마음에 이것저것 첨가해 주기도 하고 전자레인지에 살짝 데워 풍미를 올려 주기도 했다. 몇 끼를 깨작되던 강아지는, 꽤 배가 고팠는지 겨우 한 그릇을 비웠다. 그리고 그다음 날, 설사를 했다.


다 그러면서 크는 거지


생각하고 넘길 수도 있지만, 말을 못 하는 강아지에겐 설사가 큰 병의 증상일 수도 있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하다. 책과 블로그, 유튜브를 오가며 원인을 유추했다. 

(동일한 증상으로 병원에 간 적 있으나, 별다른 처치 없이 괜찮아졌던 적이 있었음)


결과적으로 가장 의심스러운 건 '식단'이었다. 








비싼 사료를 먹이고 싶었다. 누가 봐도 좋은 제품을 내 강아지에게 주고 싶었다. 그러면 강아지가 아주 건강할 줄 알았다. 


어쩌면 비싼 사료를 아무렇지 않게 사는 내 모습이 좋았던 건 아닐까. 그 욕심이 내 강아지를 아프게 한 건가 싶어 마음이 무거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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