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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초 Jun 05. 2019

반만 하고 싶은 날

20190421 

영어문법을 봐주면서 문제를 푸는 동안 두릅을 데치고 초장을 만들고, 다시 타이머가 울리면 아이 방에 들어가 채점을 한 후 틀린 문제를 설명해 준다. 다시 타이머를 맞춰놓은 뒤 세탁기를 돌리고, 시금치를 다듬고, 데치고, 무치고, 청소기를 돌린다.

아침은 부엌에 서서 데친 두릅으로 간단히, 점심은 갓 무친 시금치로 또 간단히, 그 사이사이 샤워를 하고, 랑지의 배변패드를 갈거나 물통의 물을 채워주거나 빨래를 널거나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을 줍거나 청소기를 돌린다.  

학교 수업을 받고 학원과 과외를 받고 혼자서도 공부를 하지만 아직까지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배외하는 시험문제 후보들이 아이 머릿속에 들어갈 수 있도록 옆에서 밀어 넣어준다. 3일 남았으니까 방법이 없다.^^ 

'오늘 수학, 영어, 과학을 다 끝낼 거야. ' 

오후 7시 무렵. 영어는 끝이 났고, 수학을 조금 한 뒤, 과학을 시작했다. 학원에서 수도 없이 설명했을 관계대명사나 분사구문을 내가 다시 설명해주고 있을 때의 답답함이란! 학원 교재에서 많이 본 문제들을, 수없이 푼 문제들을 지금도 틀리고 있는 것을 확인할 때의 안타까움이란.... 아주 미세하게 핑 도는 느낌이 올라온다.

며칠 전 어지럼증 때문에 쓰러졌을 때 요가 강사가 내게 했던 말이 생각이 난다. 

“그 부지런함을 반만 덜어 내세요. 반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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