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 일기 열넷.
2017. 10. 19 목
수업이 시작되고 노래를 몇 소절 부르다가 알게 되었다. 나의 분노 게이지가 점점 상승하고 있다는 것을. 지난 열두 번째 수업 때는 가사를 외우고 싶은 욕심 때문에 힘들었고, 지난 수업 때는 ‘그냥’ 힘들었다. 오늘은 매 시간마다 반복하는 ‘수심가’, ‘초한가’ 외에 ‘영변가’의 앞 소절과 제주민요 ‘오돌똑’을 복습했는데, 전부다 어렵게 느껴진다. 말귀도 영 못 알아듣겠다. 되던 것도 안 되는 날이다. 이런 날은 노래를 굶었어야 했나ㅜㅜ
‘엮음 수심가’에 ‘해는 지고 저문 날인데’라는 가사가 나온다. 나는 ‘저문 날’까지는 괜찮은데 꼭 ‘데에’ 부분만 오면 소리가 목구멍 언저리로 내려가서 묵직한 소리를 내고 만다. 마치 마술에 걸리기라도 한 것처럼 어김없이. 다른 날 같으면 한 번쯤은 비슷한 소리를 내기도 하는데, 오늘은 한결같이 ‘데에’에서 소리가 내려갔다.
초한가는 계속 가사를 놓쳤다. 기본적으로 선생님 노래를 듣고 따라 하기 때문에 수업 시간에 굳이 책을 볼 이유는 없는데, 들으면서도 들리지 않으니 자꾸 책에 눈이 가고, 책을 보는데도 정작 부를 가사는 못 찾고 헤맸다.
영변가, 이미 지난 시간에 한번 배워서 큰 선율은 조금 익혔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불러보니 '어설프게 아는 게 더 무섭구나' 싶었다. 아예 모를 땐 선생님 소리에 100% 집중하게 되지만, 어설피 아는 데다가 집중력이 떨어지다 보니 단 한 가지도 맞다고 생각하고 부를 수가 없었다.
잠깐 내가 배운 영변가의 가사를 소개하자면 ‘노자 에~ 노자 노자 젊어서 노잔다’이다. (줄여서 말하면 ‘젊을 때 놉시다’ 정도?) 하지만 실제로 내가 부른 영변가는 ‘노자 에헤에(:세번째 ’에‘에서 5번째 박까지 센 다음 이어서)헤에에에에에에에 노자 노자아 아아아 하아아 아아하 아아아, 하아아 아아아 하~ 젊어서 허 허어허어허어어 어허 노오호오오오 자아하아아안 다 아아하아아’이다. 11글자가 69글자로 불어났던 수심가의 경험도 별 도움이 안 될 만큼 머릿속을 뒤죽박죽으로 만든 노래다. 오히려 내가 모르는 것과 잘못 알고 있는 것을 구분해서 들어야 하니 일만 더 커졌다.
오돌또기, 들어본 적은 있는 노래인데도 앞의 세 곡으로 이미 지쳐버린 나는 ‘오돌또기도 날 힘들게 하겠지’ 하고 겁을 먹은 채 노래를 불렀다. 잘 되었을 리 없다.
엮음 수심가가 끝나고,
“갑자기 멘붕 오셨는데?ㅎㅎ”
(음이 하나도 기억이 안 나요)
초한가가 끝나고 ,
“초한가 오늘 되게 불안하신데요. ㅎㅎ
원래 부르던 것보다 뭔가 정체되고 있어요.”
(제 말이 그 말이에요)
수업이 끝나갈 즈음,
“지금 약간 멍~하세요. 노래가 감기지도 않고…. 들린 대로 따라 하긴 하는데, 뭔지 아시죠? 들리는 게 튕겨나가는 기분. 바로 들어간다는 느낌보다 튕기는 기분이 들어요. 말을 해 줘도 그거는 안 들리고 ‘나는 내가 할 걸 열심히 하겠어요’ 그런 느낌, 제가 말하는 게 반밖에 안 들어가요.”
“집중이 안 돼요. 이유는 잘 모르겠는데….”
음정 박자 틀리고 가사 헤매고 말귀 못 알아듣고 할 때마다 화나고 짜증 나고 그랬다. 그래서 수업이 진행될수록 점점 감정이 격해져서 더 많이 틀리고 헤매고 못 알아들었다.
“힘들어서 못하는 게 아니라 힘들어서 노래를 찾는 날이 올 거예요.”라고 선생님이 그러셨는데, 내 마음은 아직 열세 번째 수업에 머물러 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