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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드리비튬 Aug 11. 2020

크리스마스이브에 결혼 이야기는 반칙 #2

내가 왜 결혼 이야기를 하고 있지?


내가 왜 결혼 이야기를 하고 있지?





박사와 박사 후 진로에 대해 오늘은 먼저 이야기해야 할 것 같다.

이 이야기는 내가 있는 분야인 생물학 계열 쪽에만 해당되는 이야기이다.

같은 자연 계열이라고 해도, 화학이나 물리랑은 또 다르다.



학위는 보통 학사, 석사, 박사 이렇게 진행된다.

박사 후에는 포닥이라고 하는 과정이 있는데, 이는 학위 과정은 아니다.

포닥은 포스트 닥터 과정, 박사 후 과정이라고 불리며, 

박사 학위를 받은 후에, 

좀 더 실적을 쌓아서 좋은 곳에 지원하기 위해 거쳐가는 과정이다. 

필수 과정은 아니고, 보통은 교수직이나 연구원에 지원하기 위해 하며, 

한국에서나 외국에서나 모두 할 수 있으나, 

한국에서 학위를 받고, 

교수를 목표로 하는 사람들은 외국으로 포닥 과정을 많이 간다.

(한국에서 석, 박사 하고, 포닥을 거쳐서 교수가 되는 분들도 있다!)



보통 포닥은 2-5년 혹은 그 이상 많이 하고 있다.

한국에는 일자리가 많이 없으니, 

그만큼 실적을 많이 쌓아 스펙을 빵빵하게 만들어두면 

좋은 곳에 자리가 생겼을 때, 지원할 수 있기에, 

점점 더 포닥은 길게 하는 사람들이 많은가 보다.



참, 그리고 논문도 약간 토익이랑 비슷하게, 

유효기간 같은 것이 있는데,

토익처럼 기간이 딱 정해진 것은 아니고,

암암리에 출판하고 약 3-5년 정도가 지나면 경력으로 써도 큰 영향력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다들 더 좋은 논문을 많이 내고 바로 좋은 직업에 지원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이쪽 계열에서는 논문이 스펙이고, 실적이다. 

가끔 특허로 필요하기도 하던데, 특허보다는 논문이 더 중요한 듯 보인다.



우리 교수님의 선배님 때 (지금 약 50대 중후반에서 그 이상이신 분들)는

박사를 받으면 바로 교수가 되었다고 한다.

(물론 학교가 좋으니, 그렇지 않을까 하지만...)

그때는 박사를 받기도 힘들고, 박사과정 하는 사람도 적고,

그리고 우리나라에 대학이 막 여기저기 생겨나던 시절이니까.



그리고 우리 교수님 때(약 40 중반 이상)는,

박사 학위를 받고 교수를 희망하면, 포닥을 외국으로 갔다고 한다.

박사 학위를 받아도 교수 자리는 없었기에,

보통은 기업에 가려면, 바로 취업하는 경우가 많았고, 

교수를 원하거나 연구소의 연구자로 가려면 포닥을 갔었다고…



지금은…

교수 자리는 정말 없어지고 있는 추세이고..

(당장 이번 달에 부산에 있는 한 학교는 폐교가 된다고 한다.)

학생들도 없고, 부실 대학도 많으니 여러 이유로.

그리고 예전에 학교 교수로 갔던 스펙으로는 연구소에 들어가기도 힘든 듯 보인다.

나도 아직 취업 시작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것은 아니지만,

건너 건너 선배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정말 무섭다.

진짜 연구 잘하시고, 논문 많으신 분도 대학교 교수 자리를

결국 못 잡으시고 연구소로 가신 분도 많다.

그리고 요즘은 기업들도, 박사라고 하면, 

해외 포닥을 한 사람들을 좋아한다는 소식을 졸업한 선배에게 들었다.

또한 한 기업 공고에서 포닥 나가 있는 박사 대상으로만

채용 전형이 열리는 것도 확인했었다.



점점 갈수록 스펙이 하늘을 찌르는 것 같다.

어느 책에서 읽었는데,

지금 우리 세대라 단군 이래 최대의 스펙을 가진 젊은이들이라고 한다.



정말 대학 나온 사람도 많고,

석사, 박사도 많고,

무한 경쟁 사회이다. 

스펙 좋은 사람들끼리 경쟁하다 보니, 점점 그 선이 올라간다.



나의 목표도 박사 학위를 받고,

포닥으로 외국에 나갈 계획이었다.

나는 나가서, 그곳에서 자리를 잡아 사는 것이 목표였다.

이런 나에게는 당연히 결혼이라는 계획은 없었다.

결혼을 하게 되면, 둘이 같이 조율해가야 하니까.

나의 생각만을 고집할 수 없으니까.








크리스마스이브 저녁

따뜻한 차를 두 잔 앞에 두고 우리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는 우리가 나이가 있는 만큼 결혼을 전제로 만났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리고 졸업 후 포닥을 외국으로 나가려고 생각하는 나를 지지하겠다고 했다.




나 – 나는 졸업도 하고 포닥도 가고 싶어.


대뭉씨 – 응. 너 하고 싶은 거 다해.


나 – 결혼하고 싶다면서??


대뭉씨 - 결혼 시기에 대해서는 좀 더 생각해보고 이야기해보자. 

              우리가 만난 지는 얼마 안 되었지만, 나는 결혼까지 생각해. 네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 나는.


나 - 조금 더 생각해보고 이야기하자 우리.




지금 생각해보면,

결혼이 계획에 없던 나인데,

이 순간, 나는 당연하게 이 사람과의 결혼을 긍정적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도대체 왜 그랬을까?



크리스마스이브에 취해서 그랬을까?

저 남자가 좋아서 그랬을까?

주변에 다들 결혼한다고 하니, 나도 그런 걸까?



겨우 만난 지 한 달 만에 결혼 이야기를 꺼내는

이 남자.

그리고 좋다고 한 나.



정말 결혼은 알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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