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의 등장을 철학적 사유로 성찰한 책
책 읽기를 즐겨하는 편인데, 한 동안 사업적으로 변화도 많았고 바쁘다는 핑계로 책읽기를 게을리 했었다. 그래도 바쁜 와중에 조금은 느리게 생각하기를 실천하고 싶어서 잡아든 책이 ‘포스트 휴먼이 온다(이종은 저, 성균관대 철학과 교수)’이다. 평소 인공지능에 대해 관심이 많은데다 학부에서 철학을 공부했고 인문학에도 관심이 많기에 ‘인공지능과 인간의 미래에 대한 철학적 성찰’이라는 책의 부제에 마음이 끌렸다.
솔직히 이 책은 읽은 게 아니라, 힘겹게 읽어 낸 것이 맞다. 아무리 25년도 넘게 지난 대학시절이지만 철학책과 사상서적을 꽤나 읽었던 나로서도 책 앞단의 사상적 배경이 된 존재론적 배경 이론들, 그리고 이를 기초로 조명한 뇌과학, 인공생명, 휴머니즘과 네오휴머니즘. 그리고 현상학의 관점에서 바라본 유비쿼터스 컴퓨팅, 가상현실, 3D TV, 웨어러블 컴퓨팅에 대한 이론과 이에 대한 논의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난해한 논제들이었다. 이어 디지털 경제를 다시 존재론의 관점에서 분석하며 협력적 소비와 공유 경제에 대한 새로운 희망을 제시한다.
저자는 책 전반에서 트렌스휴머니즘 즉, 과학기술을 통한 인간 능력의 향상이라는 다분히 우생학적인 흐름 속에서 과학기술이 그저 생명체, 인간, 물질이 모두 나노 스케일의 물질로 수렴될 수 있다는 유물론적 환원주의로 치달을 수 있다는 점을 강하게 경계한다.
시장 논리에 포박된 과학기술의 한계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국가 차원의 개입이 필요하며, 가치지향적 성찰과 비판의식을 학문적 생명력으로 하는 인문학과의 협력이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 나라에서는 이 협력을 의미하는 Convergence의 개념을 ‘융합’으로 오역함으로써 탈가치적인 물리주의의 팽배를 야기시킬 위험이 있다.
이에 저자는 융합 대신 융화(harmonizing) 즉, 타자 지향적인 인문적 가치와 공공지향성을 함축한 용어의 사용과 함께 협력적 창의성(collaborative ceativity)의 증진이 필수적임을 주장한다. 인간이 인간인 이유는 모든 인간이 그 누구 혹은 그 무엇과도 같을 수 없는 자기 자신으로 존재한다는 하이데거의 존재론적 사유에서 출발, 후설과 메를로퐁티의 현상학적 통찰의 도움으로 첨단기술은 인간이 구체적인 일상 속에서 사용하는 도구의 모습을 띠고 다가온다고 평가하고 있다.
인류는 역사를 거슬러 수 많은 혁명을 통해 과거로부터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 왔지만 4차 산업혁명을 통해 발달된 과학기술은 인류를 돕는 단계를 넘어서 인류가 하던 역할을 대체할 가능성이 높으며, 소위 인공지능이 해결할 수 없는 고도의 판단력을 가진 지식자본가와 첨단 기술을 소유한 물적 자본가들에게 부와 권력이 치중될 수 있다는 비판과 우려도 무리한 주장은 아니지 싶다.
하이데거는 그의 존재론에서 인간의 실존의 특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일’이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AI와 로봇에 자신의 일을 빼앗기게 되면 인간은 미래에 대한 자신의 존재적 시간성을 잃어버리고 그저 미래가 없는 ‘지금’에 빠져 한없이 늘어지는, 무슨 행위도 의미가 없는 무기력 상태, 현재의 시간이 미래로 흐르지 않는 권태 상태에 빠지게 되는데 이런 상태는 바로 ‘중독’의 상태와 같다. 미래가 없이 매일 매일이 똑같은, 지금 이 순간 한없는 지루함과 권태를 마비시키는 수단에 탐닉하는 행위가 바로 중독이라는 상태와 다름이 아닌데, 인간이 자기 존재의 의미를 가진 ‘일’을 AI와 로봇에게 빼앗기게 된다면 인류가 맞게될 비극적 현실이 바로 이런 상황이 아닐까?
저자는 4차 산업혁명이 이끌어갈 미래 기술에 대한 새로운 방향 설정 즉, 생산의 효율성과 정확성을 위해 인간을 외면 혹은 대체하는 기술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 공동의 행복을 증신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고 기술적 창의성 만큼이나 사회적 창의성을 촉진하는 교육이 우선되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핵심은 경쟁에서 협력으로, 생산성에서 창의성으로, 성장에서 성취로, 선택과 집중에서 포용과 다양성으로, 평가와 서열에서 진단과 치유로 향해야 한다고 말이다. 아울러 UPenn의 마크 스턴(Mark Stern) 교수가 제안한 소외 계층과 지역을 배려하고 기회를 주며 참여를 유도하는 이웃기반 창의경제(neighborhood based creative economy) 개념을 소개한다.
아마도 이 포스팅을 지금까지 읽으신 분이라면 대단한 지적 호기심과 인내를 가지고 계신 분이라 생각된다. 정말 책 한 장, 한 문단, 한 문장을 꾹꾹 누르듯이 읽어야 했다. 몇 번이고 되읽은 문장도 많았다. 그만큼 단순히 사실을 전달하거나,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진지한 사유가 필요한 매우 철학적인 책이다.
모두가 느끼고 있겠지만 지금 온 인류는 엄청난 변화의 한 가운데 있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믿어왔지만 지금의 상황에는 맞지 않게 되는 것들이 모든 분야에서 드러나고 있다. 정치, 경제, 사회, 과학, 문화 심지어 종교에 이르기까지 전통과 개혁 사이에서 많은 갈등을 겪고 있다. 물론, 새로운 물결이 다가온다고 해서 옛 것을 다 버리고 새로 갈아탄다고 될 만큼 단순한 변화는 아니다. 결국 옛건의 전통과 장점을 새로운 것과 잘 융화해서 우리의 삶에 반영할 수 있을 때 인류의 존재는 그 의미를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새로운 변화와 혁신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되, 모든 것을 한 순간에 뒤엎는 것이 아니라 점진적으로 우리의 삶 속에 반영하기 위한 준비과 지혜가 필요하다.
힘겹게 읽은 책이었으나 이 책을 읽으면서 인간의로서의 존재에 대한 생각, 그리고 그 존재의 지속을 위해 미래의 가능성을 현재에 기투하며 존재의 시간성을 이어가기는 것의 의미, 실존의 특성을 가장 잘 반영하는 ‘일’의 의미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모쪼록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여러 분야에서의 충돌과 혼란이 더 좋은 미래를 만들어 가기 위한 정반합의 과정이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