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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디터SU Oct 20. 2020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

미국 하드보일드 문학의 대표작,

안녕하세요, 에디터 SU입니다.


여러분은 ‘고전 소설’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시나요?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고전 소설이라고 하면 길고 낯선 이름들과 어려운 표현으로 가득 찬 두꺼운 책을 먼저 떠올릴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 소개드릴 작품은 살인, 치정 같은 자극적인 소재를 기반으로 쓰인 작품으로, 기존 고전 소설의 이미지를 완전히 타파하는 책입니다. 올해 상반기를 강타한 드라마 <부부의 세계>의 명대사가 떠오르기도 합니다. “사랑에 빠진 게 죄는 아니잖아!” 하지만 이들의 사랑은 범죄로 이어집니다. 책을 펴는 순간 브레이크가 고장 난 트럭처럼 달려가는 인물들과 무덤덤한 문체의 매력에 빠져 순식간에 책장을 넘기게 되는 매력이 있는 작품입니다. 바로, 폭력적인 사건을 냉혹한 자세로 묘사하는 하드보일드 작품 제임스 M 케인즈의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입니다. 

“악마가 우리와 함께 침실로 가는 거야.”


여기 온갖 도시와 길을 누비는 ‘프랭크’라는 떠돌이 남자가 있습니다. 농담과 내기, 주먹질을 꺼리지 않는 그는 돈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작은 식당에 들어가 무작정 음식을 주문합니다. 능청스러운 거짓말로 공짜 식사를 한 프랭크는 식당의 주인 ‘닉’과 대화하다가 식당에서 일할 것을 제의받게 됩니다. 고민하던 프랭크는 닉의 아내인 ‘코라’를 보게 되고, 그녀에게 이끌려 식당에서 일하기로 합니다. 상대방에게 끌린 것은 코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녀는 남편인 닉을 사랑하지 않았거든요. 게다가, 타지에서 외국인 남편과 식당을 운영하는 삶을 지겨워하고 있었으며 먹고살기 위해 돈이 많다는 이유로 나이 차이도 많이 나는 닉을 선택한 것을 후회하는 눈치였습니다. 코라는 그러던 와중 나타난 프랭크에게 끌릴 수밖에 없었고, 둘은 닉의 눈을 피해 밀회를 즐기며 사랑을 이어나갑니다. 하지만 코라와 프랭크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더 자유롭게 사랑을 나누기 위해 닉을 없애버릴 계획을 짜게 됩니다. 도망가자니 둘은 가진 것이 없었고, 이대로 살자니 닉의 눈치를 보는 삶이 답답했던 것입니다. 알리바이와 목격자도 만들어가며 제법 치밀한 계획을 세운 그들은 한 번의 실패 끝에 자동차 사고로 위장해 닉을 죽이는 데 성공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끔찍한 악행을 저지르는 과정에서 그들은 서로의 사랑이 더 돈독해진다고 느끼게 됩니다. 닉의 재산으로 둘이 행복할 미래를 꿈꾸고 닉을 없애는 계획을 실행에 옮겨 분업하면서 둘은 서로를 애틋하게 바라보고 키스를 나눕니다. 한 명이 감옥에 가더라도 상대방을 기다릴 것이고, 상대방의 사랑을 알고 있기 때문에 수감 생활도 버틸 수 있을 거라는 대화도 나눕니다. 마치 그들의 관계는 아주 정상적이고 닉의 존재만 없으면 모든 문제가 사라질 것이고, 그렇지 않더라도 서로의 사랑이 있으니 모든 것이 행복할 것처럼요. 하지만 닉의 죽음이 자동차 사고 때문인 것처럼 위장하는 과정에서 프랭크도 크게 다치게 되고 이후 이어지는 재판 과정에서 코라와 프랭크는 서로를 만나지 못한 채 검사에게 휘둘리게 됩니다. 닉의 죽음이 사고가 아니라는 냄새를 맡은 검사가 서로를 고소하지 않으면 범인이 되는 것처럼 들리게끔 프랭크를 압박한 것입니다. 그들의 살인이 밝혀질까 두려웠던 프랭크는 검사의 요구대로 코라를 고소하고, 자신이 범인으로 몰릴 위기에 처한 코라는 그간의 범죄를 모두 고백해버립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둘 간에 흐르던 사랑과 신뢰는 사라지고, 불신과 불안감이 서로를 옥죄기 시작합니다. 유능한 변호사를 고용해 무죄를 받아내는 데에는 성공하지만 식당으로 돌아온 둘의 관계는 전과 같지 않습니다. 살인이라는 경험을 공유하고 한 번 신뢰가 깨졌기 때문에, 여전히 서로를 사랑하지만 그들의 생활은 완전히 달라지게 된 것입니다. 자유로운 삶을 살던 프랭크는 매일 술에 의존하며 어딘가로 떠나고 싶어 했고 코라는 안정적인 식당 운영에 집착합니다. 필연적으로 갈등은 잦아지게 되고, 서로 한 번씩 배신했던 경험이 남아있다 보니 둘은 서로를 믿지 못하고 극도로 의심하며 불안해하게 됩니다. 닉이 없어지면 행복할 줄만 알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던 것입니다. 프랭크는 코라가 그들의 범행을 검사에게 다시 자백할까 두려워했고, 코라는 프랭크가 닉을 살해하는 계획을 짰던 것처럼 자신도 죽여버릴까 두려워했습니다. 코라의 표현을 빌리자면 ‘악마가 그들과 함께 잠들고 있는 것’ 같은 상황입니다. 

“분명히 이야기하는데, 악마는 가 버렸어.”


망가져가던 둘의 관계는 코라가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조금 달라집니다. 한 생명을 살해한 그들에게 새로운 생명이 찾아왔다는 것은 묘하게 다가왔고, 이를 통해 기존의 관계를 환기하고 각자의 감정을 돌아봄으로써 둘은 새로운 인생을 살기로 결심합니다. 과거 닉 몰래 사랑을 속삭이던 것처럼 바닷가로 놀러 가서 파도가 그간의 악행을 씻어주는 것 같다고 느끼며 수영하고, 서로의 사랑이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음을 확인합니다. 하지만 임신 초기인 코라가 몸의 이상을 호소했고 프랭크는 그녀를 병원으로 데리고 가던 길에 서두르다가 사고를 내고 맙니다. 그 사고로 코라는 즉사하고, 코라와 닉의 죽음에 함께 있던 프랭크는 수감되며 소설은 끝이 납니다.

살인을 저지르고 망가져가다가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로 결심한 둘은 결국 악마가 떠난 삶을 살지 못하게 됩니다. 한 명은 죽어버렸고 다른 한 명은 두 건의 살인자가 되었으니까요. 작품은 두 사람의 행동과 감정을 묘사하면서 독자에게 판단을 맡기는 듯합니다. 치정으로 인한 살인이라는, 매체에서 제법 흔하게 다뤄지는 소재들을 기반으로 그간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던 인간의 감정을 샅샅이 분석하면서요. 프랭크가 독자에게 ‘자신과 코라를 위해 기도해달라’라고 말하며 글을 끝맺는 부분을 통해서도 독자의 의견을 묻는 듯합니다. 마치 독자에게 ‘어때? 너는 이 둘을 어떻게 볼 거야? 이 책의 어디에 집중할 거야?’ 하고 묻는 것 같습니다. 누군가는 살인을 할 정도로 불 같던 둘의 사랑이 무엇인가에 집중할 수도 있고, 또 다른 누군가는 살인 이후의 심리 변화에 주목할 수도 있겠지요. 

저는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를 읽으면서 잔혹한 현실과 인간의 맹목적인 부분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코라와 프랭크의 살인은 현실에서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는 사건이고, 이는 지극한 이기심과 맹목에 의해 발생한 것이라고 느꼈거든요. 불건전한 사랑을 키워가면서도 부끄러움을 모르고, 모든 걸 버리고 떠날 용기는 없으면서도 함께는 있고 싶어 하니까요. 하지만 둘은 그 마음에서 멈추지 않고 닉을 살해함으로써 다른 사람의 삶을 빼앗고 자신들의 행복을 추구합니다. 닉을 죽인 뒤에도 둘 사이에 사랑 대신 불신이 자리 잡았음에 괴로워할 뿐 닉에 대한 미안함은 좀처럼 찾아볼 수 없습니다. 새로운 삶을 살며 아이를 잘 키우겠다고 다짐하면서도 그간의 죄를 뉘우칠 마음은 없어 보입니다. 이처럼 어리석은 일이 있을까요? 물론 모든 인간이 때때로 눈이 가리워지는 상태가 되곤 합니다. 하지만 저는 코라와 프랭크가 일시적인 상태가 아니라, 말 그대로 다른 욕망에 눈이 멀어버린 맹목의 상태라고 느꼈답니다. 글을 읽는 여러분은 코라와 프랭크, 그리고 닉을 어떤 사람들로 정의할지 궁금해지네요. 입맛이 씁쓸해지는 평을 내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그들의 감정 일부분을 이해하는 사람도 있겠죠? 작가의 감정 개입이 최소화된 만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섬세한 심리 묘사와 냉혹함이 잘 드러나는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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