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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송당 Aug 08. 2024

이 정도면 되었다

#치앙마이 일년살기

치앙마이 생활은 거의 1년이 되어가고, 귀국을 확정하였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결정을 하는 과정은 성향상 P인 나에게 참으로 어울리는 여정이었다. 


애초에 치앙마이로 올 때는 귀국 같은 것은 염두에 두지 않았고 '무조건 1년은 쉰다'라는 생각뿐이었다. 


헤드헌터나 채용 사이트를 통해 들어오는 대화 요청이 있었는데 왜인지 업무에 대한 감을 잃지는 말아야 한다는 생각에 그런 요청을 거절하지는 않고 있다가 결국 재취업으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입사에 대한 논의를 한 회사들 중 한 회사와는 거의 입사 확정 직전까지 가다가 파토가 난 후, 운명의 장난처럼 곧장 다른 회사에서 대화 요청이 들어왔다. 그것이 고작 3주 정도 전의 일이다. 두 번의 온라인 면접과 한 번의 추가 미팅이 진행되고 곧장 채용이 결정되어 버렸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언젠가는 취업이란 것이 너무도 어려운 일처럼 보였고 회사와 연관된 모든 것에 벌벌 떨면서 굉장히 납작 엎드려서 기꺼이 나의 인생을 희생하던 때도 있었다.


오히려 취업에 대한 마음을 내려놓으니 취업이 쉬운 이런 상황이라니. 


원래는 입사 확정 후 2주 만에 한국으로 소환되는 일정이었으나 극구 양해를 구해 3주 정도의 시간을 벌 수 있게 되었다. 그동안 치앙마이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에서 머물 집도 알아보아야 한다. 가장 큰 난관은 오토바이를 판매하는 것인데 왜인지 그것도 어떻게 하면 될 것 같기는 하다. 


한국행이 결정되고 난 후 무에타이 체육관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꺼내니 다들 아쉬운 표정이 역력했다. 특히 체육관 주인장의 아내분은 매우 아쉬워하면서 나랑 한 시간 정도 대화를 나누었다.


체육관 주인장 아내분은 상당한 동안으로 38세인 나보다도 약 4세가 많은데 서로 그래도 동년배이다 보니 이 분이 은근히 나에게 호감을 갖고 있었나 보다. 


약간 눈물이 그렁그렁한 얼굴로 나와 대화를 나누는데 결론은 다시 올 때까지 기다릴 테니 다시 오라는 것이었다. 


내가 이 체육관을 좋게 본 이유가 너무 돈돈 거리지 않는 곳이라는 이유였는데 알고 보니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체육관 주인장은 본업에서 나오는 수입으로 생활하고 이곳은 체육관에 딸린 트레이너, 선수 등의 식구들을 건사하기 위해 운영되는 곳이라고 했다. 때로는 본업에서 나오는 수입으로 체육관에서 빵꾸난 비용을 충당하기도 한다고 했다. 그녀는 이 체육관에 속한 사람들을 두고 '가족'이라고 했는데 나도 가족으로 봐주는 건가 싶어서 괜히 뭉클하기도 했다. 


내가 이 체육관에서 한 거라고는 일주일에 4,5번 정도 끊임없이 계속 수업을 나간 것뿐이었다. 그렇게 거의 10개월 정도를 이곳에서 머물렀다. 


체육관 주인장은 대화를 나누는 나와 자신의 부인 뒤쪽으로 다가와서 나에게 '너만큼 성실하게 훈련을 하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는 덕담을 건네주었다. 그 어떤 말 보다도 이 말이 가장 내 마음에 와닿았다. 나 진짜 열심히 운동했거든.


아직 3주 정도 정리할 시간은 남았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되었다,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고 생각했다.


나의 귀국을 슬퍼하는 타국의 사람들을 만났다는 것 만으로 족하다.


뭘 더 바라겠는가.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이 기쁘냐고 묻는 체육관 주인장 부인의 질문에 '반은 그렇고 반은 그렇지 않다'라고 답했다. 


이제 다시 그 복잡한 강남역을 거닐어야 하며 각종 KPI에 시달려야 할 것이다. 또 길을 잃어버릴지도 모르겠다. 


치앙마이에 도착한 지 5일 차가 되어서 공황발작이 와서 엉엉 울면서 '지금 당장 죽을 것 같아, 나는 여기서 지낼 수 없어'라고 울부짖던 날을 떠올렸다. 


그 울부짖음과 두려움과 공포가 무색하게 나는 일 년을 무사히 잘 보냈다.


길을 또 잃게 되면 나는 다시 치앙마이에 와서 이 사람들과 무에타이를 해야지. 그러면 또 툭툭 털고 일어날 수 있을 것이다. 


여하튼, 남은 3주는 내일이 없는 사람인양 알차게 보내겠다. 그런 의지로 활활 불타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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