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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송당 Aug 10. 2024

나는 공포에 지고 싶지 않다

#치앙마이 일년살기

치앙마이 대학교 어학원 과정이 드디어 끝을 맺었다.


1년 과정이라고는 하지만 3개월마다 1개월 방학이 있기에 9개월 과정이라고 보는 게 맞는 과정. 그나마 그것도 일주일에 수업은 2회뿐이라 대학교 교양 수업을 듣는 느낌으로 수업을 들었다.


그래도 잔잔하게 계속 우울함을 겪는 나에게 정기적인 수업 참여는 심신의 안정에 꽤나 많은 도움이 되었다. 6개월 정도가 지나서 약간씩 태국어를 읽을 수 있게 되었을 때는 상당한 즐거움마저 느꼈다.


너무 많은 분량을 짧은 시간에 배워야 하니 수업의 농도는 꽤나 낮은 편인데 수업 마지막 날까지도 그랬다. 남은 진도를 빠르게 뺀 후 과정 수료증을 들고 선생님과 사진을 찍는 것으로 마무리. 정신없이 정해진 허들을 넘고 결승선까지 내달린 기분이었다.


이대로 마무리하기는 아쉬우니 어학원 선생님의 주도로 근교의 레스토랑에서 다 함께 저녁을 하기로 했다. 치앙마이 시내에서 차로 40분 정도 걸리는 곳인데 멀기도 하고 예약을 하지 않으면 자리를 잡을 수 없는 곳이기도 했다.


술을 마시지 않을 거라서 오토바이를 몰고 가다가 길을 좀 헤매기도 하고 겨우 도착한 레스토랑은 꽤나 근사했다. 눈앞으로 끝없이 펼쳐진 풍경이 장관이었다.


고기를 구워서 먹는 메뉴가 대부분이었는데 프랑스에서 온 두 청년이 요리를 좋아하는지라 자진해서 몇 시간 내내 그릴 앞에 앉아서 꽤나 전문적인 솜씨로 고기를 구워냈다.


선생님은 그동안 스트레스가 많았는지 오랜만에 맥주를 마시고 흥에 겨워서 대화를 주도했다. 다들 맥주가 들어가니 술술 대화가 나오는 걸 보면 이런 것은 술의 순기능이구나 싶었지만 술을 끊은 지 1년이 되어가는 나는 그저 술에 취한 친구들을 바라만 볼 뿐이었다.



반에 사업을 해서 돈이 많은 인도인 친구가 있는데 이 친구가 태국에 왔다가 사기꾼들에게 걸려서 돈을 뜯긴 이야기 같은 것을 하면서 다들 신나게 떠들었다.


선생님은 우리 반이 좋은 반이었다고 말했는데 알고 보니 그동안 꽤나 독특한 학생들을 많이 겪었다고 한다. 정신적인 문제가 있다고 보이는 사람들이었는데 수업시간에 자기들끼리 싸우고, 음악을 듣고, 포교활동(한국인 선교사란다)을 하는 등 특이한 행동을 많이 해서 선생님이 수업에 들어가기 싫을 정도였단다. 싫은 소리 하는 것을 불편해하는 태국인의 특성상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을지 이해가 되는 대목이었다.


한바탕 신나게 떠들고 술에 취한 선생님은 마음껏 음식을 시키고 또 그런데 그걸 부자인 인도인 친구가 다 계산하는 등 왁자지껄한 시간이 지났다.


시간은 거의 밤 10시가 되었고 산 중턱의 레스토랑에서 시내까지 가는 길은 밤이라 위험할 수 있어 다들 오토바이를 타고 온 나를 걱정해 주었다. 나 말고 다른 사람들은 썽태우(태국식 승합택시)를 대절해서 왔는데 썽태우의 뒤를 따라서 내려가서 다행히 별 다른 위험한 상황 없이 산길을 내려올 수 있었다.


큰길에 다 달아서 썽태우는 먼저 속도를 올려 치고 나갔고 나는 시속 45km 정도 되는 속도로 치앙마이 인근 고속도로의 밤길을 달렸다. 왕복 4차선 정도 되는 도로였는데 가장 왼쪽에 붙어서 달리면 되어서 크게 위험하지는 않았지만 거리가 꽤 있어서 30분 정도를 혼자 내달렸다.


방금까지 친구들과 신나게 떠들었지만 어느새 혼자가 되어 밤길을 달렸다.


아, 는 이 상황이 인생에 대한 완벽한 비유라고 생각했다.


결국은 혼자 남는다.


누군가와 함께 하는 시간은 어떻게 보면 너무도 달달할 정도로 즐거웠지만 그 달달함을 영원히 물고 있을 수는 없는 것이다.


달달함은 가끔 찾아오는 운명의 영역으로 남겨두고 나는 더 적극적으로 혼자 있는 시간을 어떻게 충실하게 보낼지 배우고 또 배워야 한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운전을 하는데 어떤 길에서는 꽃향기가 코 끝을 스쳤다가 시내로 들어오니 어딘가에서는 마리화나 냄새가 풍겼다.


모든 것은 너무도 빠르게 스쳐 지나간다.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보며 친구들과 맛있는 음식을 먹는 시간도, 향긋한 꽃내음도, 머리가 아픈 마리화나 냄새도 다 벌써 과거의 일이 되었고 나는 그다음 날이 되어 지금은 어느 카페에 앉아서 이 글을 쓰고 있다.


글을 다 써 가는 걸 보니 곧 이 카페에서의 일정도 마무리하고 다른 장소로 이동할 것이다.


이러다 보면 3주는 금방 지나고 언제 치앙마이에 있었냐는 듯 강남 어느 거리를 거닐고 있을 것이다.


인생도 마찬가지겠지. 운이 좋아서 계속 살아남는다면 나는 어느샌가 인생의 끝을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뭐가 뭔지도 모르게 빠르게 지나가는 인생 속에서 너무도 손쉽게 내가 없이 살았다. 타인에게만 집중하고 그들이 원하는 대로만 하기 위해서 나의 시간을 기꺼이 희생하고 바쳤다. 이렇게 사는 게 두려움이 덜했다. 정해진 길대로만 가면 되니 힘들긴 해도 삶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을 할 필요는 없었다.


그러다 정해진 길을 벗어나니 두려움과 공포는 극에 달했고 내 인생이라는 세계의 천지가 뒤흔들렸다. 회사와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자 내가 느낀 감정은 죽음의 감정이었다. 갑자기 죽는 것에 대한 공포가 몰려와서 숨을 쉴 수 조차 없었다.


그렇게 일 년을 악으로 깡으로 버티고 나니 이제서야 나의 천지를 뒤흔들던 지진은 잦아들었고 혼자여도 죽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정말 엉망진창이었다가 겨우 나란 사람을 다시 일으켜 세워두었으니 이제는 더 적극적으로 혼자를 배워야겠다. 진정으로 나 혼자서도 일어나고 살아가는 방법, 그런 것 말이다.


나는 누군가 나를 돌봐주지 않는다고 엉엉 우는 사람이 아니라 혼자서도 스스로 잘 살아가는 사람이 되어 의연히 나의 삶의 마지막을 맞이하고 싶다.


나는 공포에 지고 싶지 않다.


밤길을 달려 무사히 집에 도착하면서 나는 삶에서 어느 방향을 향해 달려가야 하는지 조금은 더 깨달은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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