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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어 오브 이스트타운 Mare of Easttown

#미드

by 송송당

요즘 유튜브에서 잘 나가는 회계사가 한 명 있다. 그는 서류를 토대로 회사 및 그 회사가 속한 산업에 대해 분석하는데 어그로도 잘 끄는 사람이다. 소위 말해서 '까는 것'만큼 재미있는 것이 어디 있겠는가. 더군다나 그는 회계사라는 전문가 신분 및 비판의 근거가 회사에서 발행한 재무제표라는 사실 덕분에 비난을 해도 역으로 비난을 받는 것에서는 상당히 자유로운 편이다.


여튼 내가 알기로 그는 쿠팡의 사업 구조를 두고 매우 비난하는 태도를 보여주었으나 아이러니하게도 쿠팡만큼 한국인의 삶의 모습을 변화시킨 회사가 또 어디 있을까 싶다.


쿠팡은 로켓배송도 모자라서 쿠팡플레이라는 OTT 사업도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그저 그렇다고 생각했던 쿠팡플레이가 가면 갈수록 일을 잘한다. 괜찮은 작품들을 들여오는 덕분에 최근에는 넷플릭스 보다도 쿠팡플레이를 보는 시간이 길다.


이는 나의 불안장애에도 꽤 도움이 된다. 불안이 높아져서 아무것도 못 하겠을 때 작품성이 높은 드라마나 영화를 멍한 눈으로 시청하기 시작하면 어느새 불안이 잦아들고 나의 눈에도 생기가 다시 돌아옴을 느낀다.


아무것도 못하겠으면, 누워서 양질의 영화나 드라마라도 보자. 이건 분명 효과가 좋은 치료법이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쿠팡플레이에 'HBO 전용관'이 생겼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다. 미국의 제작사인 HBO의 작품들을 볼 수 있는 코너인데 HBO 작품들 중에는 대형 작품들이 꽤 많다. 최근에 연달아 세 작품을 보았는데 순서대로 '라스트 오브 어스', '더 펭귄', '메어 오브 이스트타운'이다. 셋 다 강력 추천하는 바이며 이것 때문에 쿠팡의 멤버십을 중단한 일은 한동안 없을 것이다.


오늘은 '메어 오브 이스트타운'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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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어Mare는 사람 이름으로 제목을 직역하자면 '이스트타운의 메어' 정도가 되지 않을까? 한국식이라면 봉천동의 김숙자 같은 느낌일까. (김숙자는 그냥 지어낸 이름이다)


이 '메어'라는 여성은 이스트타운 경찰서에서 직급이 좀 있는 형사로 꽤나 환장하겠는 개인사를 지닌 여성이다. 아들은 자살하고 이혼한 남편은 굳이 자기 뒷집으로 이사 와서 새 여자 친구와 결혼을 준비하는 중이며 딸내미는 착하지만 뭔가 자신과 거리가 있고 자살한 아들의 아들, 즉 자신의 손자와 노모까지 모시고 사는 중이다.


여기까지만 들어도 두통이 진하게 오는데 형사라는 직업 때문에 마을에서 일어나는 온갖 사건에 대한 처리도 해야 한다. 더군다나 몇 년 전 발생한 실종 사건이 아직도 미해결이라 그것 때문에 사건 피해자의 어머니이자 자신의 친구의 차가운 눈초리를 견뎌야 한다.


이렇게 숨 막히는 삶을 사는 여성을 미국의 명배우 케이트 윈슬렛이 연기한다. 우리나라로 치면 라미란님과 비슷한 결의 자연스러운 생활 연기를 보여준다.


드라마는 마을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을 중심으로 사건에 얽히고설킨 사람들의 비밀을 파헤쳐나가는 형식으로 진행되지만 진지한 형사물이라기보다는 주인공의 개인사가 얹혀서 상당히 독특한 느낌을 자아낸다. 어떻게 보면 형사물 같고 어떻게 보면 일상 드라마 같다.


메어라는 인물이 개인적인 어려움을 헤쳐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꽤나 공감했다. 그녀는 아들이 자살한 고통을 제대로 애도하지 못한 결과 일에 매달리는 일 중독자가 되었다. 주위의 가족과 친구들에게도 그렇게 보인다. 하지만 그냥 일 중독자라고 보이기에는 억울할 수 있는 것이 싸가지가 좀 없기는 하지만 그녀는 타고난 형사에 한 번 눈에 들어온 것은 끝끝내 파헤쳐서 어떻게든 사건을 해결한다. 그러니까, 분명히 능력이 있는데 그걸 '예쁘게' 표현하지 않는다고 욕을 먹는 것이다.


나도 불안장애를 이겨내기 위한 방편으로 미친 사람처럼 일을 했었고 '너만 잘났냐'는 비난을 들은 적이 많아서 누가 심장을 낚아챈 듯이 드라마에 몰입했다.


메어는 고통스러운 상황을 다시 기억하고 싶지 않아서 감정을 외면했다.


트라우마에 직면하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다.


나 역시 어린 시절에 있었던 트라우마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걸 거의 마흔이 다 되어가는 나이가 되어서야 겨우 시도하는 중이다. 술을 끊고, 병원을 다니면서 약을 복용하고, 상담까지 해가면서 겨우 시도하는 중이다.


메어는 아마도 한국 나이로 치면 40세 후반이나 50세 정도 되었을 중년 여성으로 이런 몸으로 형사 일을 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걸핏하면 일하다 다쳐서 절뚝거리거나 팔에 깁스를 한다. 그리고 그 상태로 범인을 잡겠다고 또 뛴다.


정말 어떻게 하는 거지 싶을 정도로 수많은 일을 처리하면서 그러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달리는 메어를 보며 그녀는 어떻게든 살아갈 것임을 느꼈고 나도 그럴 수 있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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