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청하게 숏폼을 보고 있는 아내에게...
'그만 좀 쳐 보고, 이제 좀 씻지?'
아내에게 이렇게 말하려고 하다가 이내 목구멍으로 말을 삼켜버렸다. 연애 기간까지 포함해서 10년넘게 함께 지내다 보면 서로 선을 넘지 않는 수준이 어느정도인지 스스로 알고 있다. 너도 알고, 나도 알고.
가장 꼴보기 싫은 모습은. 양치를 하고 있는데도 손과 입은 치약 거품을 물고 있고, 왼쪽 손에는 휴대폰. 눈은 휴대폰 화면에 고정되어 있는 모습이다. 이내 인스타 릴스나, 유튜브 쇼츠 아니면 틱톡 숏폼이다.
언젠간 한번 이야기를 했다. 적당히 좀 보라고. 아들도 그정도는 안보는데. 애가 나중에 커서 엄마가 그만 영상좀 보라고 잔소리하면. 스스로 떳떳할수 있냐고 말이다.
그런데 사실 나도 자신이 없다. 거기서 나오는 자극적이고 무차별적인 영상들에 노출이 되면. 시간이 그냥 30분. 1시간 그냥 가버린다. 스트레스가 해소되는 듯한 느낌이 든다. 하지만 화면속 영상에서 탈출하고 나면 멍한 기분이 한동안 가시질 않는다.
이상하다. 분명 유익하고 짧고 굵은 내용들을 많이 본것 같은데 말이다. 30분만에 영상 100개는 족히 본것 같고. 정부정책. AI 와 관련된 활용법. 맛집. 아이랑 가기 좋은 여행지. 생활 꿀팁 등등. 그 내용도 방대하다. 그리고 하나하나 내가 다 모르는 내용들로 가득하다. 그렇지만 다 보고 나면 기억이 나질 않는다. 바보가 된 느낌이다.
상황이 이러니 아내에게 잔소리도 못하겠다. 나도 출퇴근할때 무료함을 없애고자 한번 숏폼을 보기 시작하면 회사에 도착하기 까지 30분동안 눈을 떼지 못하니 말이다. 그 중독성에 나도 스스로 제어가 안된다.
숏폼에서 나오는 유익하고 정보성 있는 영상들을 계속 봄에도 불구하고 이런느낌이 드는 이유가 뭘까 하고 한동안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다 보고 나서도 기억이 안나는 이유까지. 그리고 '아하' 모먼트가 왔다...
목적없이 노출되는것은 내 삶에 아무런 도움이 되질 않는다. 알고리즘에 의해 노출되는 것은 전부다 자극적이고 사람들의 시청시간이 높은 영상들인 것이다. 도파민을 자극시키기 때문에 만인에게 좋아요 버튼을 누르고, 시청지속시간이 높은 것이다. 그러니 플랫폼 회사들은 '너도 한번봐봐! 이 영상 끝까지 안보고는 못베길껄?' 하면서 나에게도 무작위로 노출시킨다. 결과는 '대박'이다. 나 역시 다른 사람들과 동일하게 도파미이 분비되면서 영상을 끝까지 소비한다.
차라리 목적을 가지고 검색을 해서 영상을 보는것이 좋다. 무작위로 노출되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삶을 살아가면서 뭔가가 궁금할때. 어딘가에서 막혔을때. 구글링해도 좋고, 유튜브에서 검색해도 좋고. 어쨋든 무작위로 노출되는것은 바보로 가는 지름길이고. 목적을 가지고 검색하는 행위는 책을 읽으면서 사유를 하고 지식을 얻어가는 과정과 동일하다.
그런데...현실은 나나 아내나 마찬가지고 시간이 조금만 비면 숏폼을 틀고 보게 된다. 이 세상은 무섭다. 빈 공간과 시간을 가만히 두게 만들지 않는다. 이 세상은 나를 바보로 만들고 더 바보로 만들수록 지갑을 열기 쉽게 만든다. 스트레스를 해소시켜주는 것처럼 포장하지만 속내는 스트레스를 더 쌓게 만들고, 충동적으로 행동하게 만든다.
오늘도 그냥...숏폼 대신에 글을 쓰자. 그리고 글을 읽자. 의식적으로 노력하자.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