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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둥바둥 김대리 Dec 24. 2021

언어 시험 30점이던 내가 글쓰기를

죽도록 싫었던 독서와 언어 포기자였던 내가 지금은...


언어 시험 꼴찌

나 한국사람 맞아?




참 이상하기도 하지. 어떻게 한국사람인데 언어 시험에서 30점을 맞을 수가 있는 거지. 한국에서 태어나서 한국말을 할 줄 알고, 한국어를 읽을 줄 아는데. 어떻게 모국어 시험에서 이렇게 낮은 점수를 맞을 수 있는 것일까. 역시나 시험은 시험인 건가. 이래서 대학이나 갈 수나 있는 걸까. 이과를 선택해서 망정이지. 문과를 갔더라면 정말 내 인생 큰일 났을 수도 있었겠다.



그랬던 내가, 역시 인생은 오래 살고 볼일이다. 그리고 인생을 함부로 단정 지어서도 안된다. '나는 XX에 재능이 없어'라고 흔히들 단정 짓는다. 하지만 인생을 살아가다 보니 없던 재능을 뒤늦게 찾기도 하고, 없었던 흥미가 생기기도 한다. 한때 100점 만점에 언어 시험 30점을 맞던 내가 지금 누구보다 책을 좋아하고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지 않는가. 독서는 둘째치고 내가 글을 쓰고 있다니.



대학을 가기 위해서 수능시험을 치러야 했고, 시험 과목 중 나에게 가장 스트레스를 안겨다 주었던 것은 단연 언어였다. 돌이켜 보면 어렸을 때 책을 줄곧 읽곤 했다. 그러다 책 읽는 행위가 즐거움이 아닌, 시험 준비를 위한 공부로 인식이 되면서 책은 자연스럽게 나의 손에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책=시험이 되어버린 순간이었다. 정확한 시기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도 중학교 그 언저리쯤 되었던 것 같다.



소설이 더이상 나에게 소설이 아니었다. 소설은 작가의 의도가 무엇인지 파악하는 공부의 대상이 되었고, 작가의 의도가 아닌 것은 무엇인지 오지선다 객관식에서 찾아야만 하는 장르가 되어버렸다. 시도 더이상 나에게 시가 아니었다. 시를 읽고 그 문장 문장을 음미하고 향유하는 그런 것이 아닌, 작가가 누구인지를 맞추고 시대적 배경을 파악하는 장르로 바뀌어 버렸다. 수능에 자주 출제되는 소설과 시를 알아야 하고, 자주 출제되는 문제 유형을 파악해야 하는 대상으로 바뀌다 보니 그 부작용과 후폭풍은 상당했다. 책장에 어떤 책을 집어서 읽더라도 강박증처럼 문장 하나하나 끊어가며 공부하듯이 읽고 있는 나의 모습을 발견했다. 스트레스였다. 책은 나에게 즐거움이 아닌 공부의 대상이자 정신적 감옥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가는 미련한 행위로 바뀌어 버렸다.



그래서 였을까. 너무나 혼란스러웠다. 대학입시를 위해서 언어 시험을 공부하는 내내 회의감이 들었다. 책을 즐겁게 읽고 싶은데, 그렇지는 못하고. 그렇다고 책을 읽지 않고 단순히 공부만 하자니 재밌지 않고. 완전 진퇴양난에 빠져 근본적인 질문만 거듭하며 방황을 일삼았다. '언어 시험을 궁극적으로 치르는 이유가 무엇인가?' 이런 근본적인 질문은 사실 잠시 접어 두었어야 했다. 그냥 내 친구들처럼 닥치고 문제집이나 풀고 외웠어야 했다. 그런데 나는 그러질 못했다. 이왕 공부할 거 내 인생에 도움이 되는 공부를 하고 싶었다. 결국 나는 수학포기자를 줄여 수포자라 하는 것처럼 언어 포기자 언포자가 되어버렸다. 그렇게 언어 점수 30점이라는 참담한 결과지를 받게 되었다.




이번 생에 언어는 아닌가 보오

그냥 문학적 재능이 없다고 생각하자



참담한 언어 시험 점수는 자연스럽게 '나는 언어와 문학에 재능이 없나 보다... 포기하자'로 귀결되었다. 그냥 공부를 손에 놓아버렸다. 어차피 이과를 선택했고, 수학 점수가 줄곧 잘 나오고 있었기에 선택과 집중을 하기로 했다. 만약 이과생도 언어 시험을 선택할 수 있었다면 나는 진작 선택을 포기했을 것이나, 언어 시험 응시는 이과생에게도 공통 과목이었다. 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비록 총점수를 깎아 먹더라도 재능이 없는 부문에 시간을 투자하며 낭비할 필요가 없다.



그렇게 '언어'님께서는 나의 정신세계에서 로그아웃을 해버렸다. 고2 때 내린 내 인생의 가장 중요하고도 큰 결정이었다. 그리고 나는 대학에 입학하고도 한참 동안 읽는 행위와 쓰는 행위를 상상조차 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었다. 생활에서 딱히 불편한 점은 없었다. 책을 읽지 않고, 쓰지 않아도 생활에 지장이 있는 건 아니지 않은가. 언어 시험에 낙제 점수라 하더라도, 나는 한국사람이었고 한국말을 할 줄 알기에 여전히 식당에서 주문을 할 줄 알고, 각종 공과금을 처리할 수 있다. '그래, 까짓 거 언어 시험도 낙제 수준이고 독서 따위 하지 않으면 뭐 어때?'.



그런데 조금씩 내적으로 괴로운 순간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한 번쯤 교보문고에서 지적인 이미지를 뽐내며 책을 고르고 책을 읽고 싶어 가볍게 손에 쥔 책들이 나에게 두통 유발자가 되어 버렸다. 막상 책 제목이 흥미롭고 서문도 마음에 들어 책을 읽기 시작하면 어느새 나는 펜을 들어 문장에 슬래쉬(/)를 쳐가며 분석하고 있었다. 그리고 계속 문장을 외우고 반복하고 있었고, 읽다가도 앞 내용이 기억이 안 나면 뒤돌아가 등장인물과 표현들을 찾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진도가 나가질 않았고 읽는 행위가 너무나 괴로웠다. 어느덧 시험 준비를 하는 과정으로 변모되어 버렸다. 성인이 되고나서 더 이상 그런 시험은 없는데도 불구하고, 학창시절 훈련된 그런 행동습관과 사고습관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스스로 만들어 놓은 감옥에 갇혀 있었다.



이뿐만 이겠는가. 독서를 멀리하고 글을 쓰는 행위를 하지 않는 행위는 독해력과 이해력을 서서히 떨어 뜨리고 있었다. 그때는 알지 못했다. 지금 돌이켜 보니 그 때문이었던 것 같다. 사람들과 대화를 하는 곧곧에서 그리고 사물을 인식하고 행동하는 나의 모든 생활 전반에서 수준 낮은 결과물들이 나왔다. 그런 결과물들이 비록 독서를 멀리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더라도, 매우 중요하고 큰 역할을 차지했다는 점은 지금 와서야 느끼고 있다.




어라...?

책이 재밌네?



책장에 꽂혀 있는 책은 그저 장식품이었다. 책을 펼치기만 해도 스트레스였다. 그러다 우연히 자기 계발서라는 책을 처음 접하게 되었다. 한참 진로에 대해 고민하고 방황하는 시기인 대학시절. 취업의 문턱 앞에 그 누구도 이런 고민은 피할 수 없었다. 취업만이 고민이겠는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내가 잘하는 게 무엇이고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진작에 사춘기 때 고민했어야 할 질문을 다 큰 성인이 되서야 또 하고 있는 꼴이었다. 뭔가 고구마 10개를 한 번에 먹은 것처럼 답답했다. 그렇다고 딱히 누가 와서 '이렇게 사는 게 정답이야'라고 말해주는 사람도 없었다.



그렇게 우연히 집어 든 자기 계발서 한 권은 책에 대한 나의 태도를 바꾸어 주었다. 책이 스트레스를 주는 대상이 아니라 위로를 주는 대상으로 인식전환을 시켜주었다. 한참 정신적으로 방황을 하며 고민에 쌓여있을 때 우연히 읽게 된 자기 계발서 한 권은 나의 마음을 어루만저 주었다. 학창 시절을 언어 시험이라는 틀에 갇혀 지낸 이래로 제대로 된 책 한 권을 완독 한 적이 없었던 나는, 어느 순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한 권을 완독해 버렸다. 스스로도 대견한 노릇이었다. 게다가 너무나 행복하고 즐거웠다. 마음이 따듯해졌다.



더 읽고 싶었다. 행동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일 수 있는 장르인 자기 계발서이지만, 그런 고민 따윈 중요하지 않았다. 그냥 좋았다. 동기부여가 되는 그런 책을 읽는 거 자체가 좋았다. 내용이 좋아서가 아니라 '내가 책을 읽는데 즐거워하고 있구나?'라고 생각하며 읽는 나 자신이 대견하고 좋았다. 평생 그러지 못하고 자괴감에 쌓여 있었는데 그런 프레임에서 스스로 탈피하고 있었다.



얼마나 많은 책을 읽었는지 모르겠다. 닥치는 대로 읽었다. 소설 형식을 차용하여 쓴 자기 계발서부터 시작해서,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형식의 자기 계발서까지 손에 잡히는 데로 모두 읽었다. 어느 순간 내용이 비슷비슷하다고 느끼는 순간이 찾아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읽었다. 내용이 머릿속에 남고 안남고는 중요하지 않았고, 마지막 장을 내가 덮고 이번에도 완독을 했구나 하는 느낌이 좋아서 계속해서 읽어 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독서는 다시금 나에게 찾아왔다. 언어 시험은 이번 생에 아닌가 보다 하고 단언하고 로그아웃을 해버렸었는데, 다시 로그인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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