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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도르 Jan 27. 2021

나에 대한 실망을 보듬는 밤

나를 토닥이고 싶은 날


가을방학의 노래 [베스트앨범은 사지 않아]에는 이런 가사가 있다.

사랑에 실패하는 건 괜찮아. 자신에 실망하는 게 싫어. 그런 나로 살아가야만 하니까

공감되는 가사에  ‘나는 나에게 얼마나 많은 실망을 하고 사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보다 자신에게 실망을 많이 하는 사람,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다

자신의 작은 실수 하나에도 실망을 하고 잠자리에 눕기까지 나를 탓하는 마음에 온 신경을 쏟는 사람, 그게 바로 나다. 다른 사람의 실수나 실망에 대해서는 “그럴 수 있지”라고 관대하게 말하면서, 자기 자신의 실수에는 인색한 경우를 종종 목격한다. 사람은 왜 이토록 자기 자신을 함부로 대하게 되는 걸까. 다른 사람에게 하는 노력과 위로의 반의 반만이라도 나에게 하며 살면 좋겠지만, 나의 실수나 작은 잘못조차도 쉽게 인정하기 힘들어 자신을 탓하고 부끄러워한다. 다른 사람이 아닌 나라서, 잘 해내길 바라는 나이기에.


모든 결과가 나 혼자만의 노력으로 되는 건 아닌데 사람들은 흔히 어떤 결과가 좋지 않을 때, "그것도 내 능력인데,,"라며 자신을 탓한다. 아주 사소한 일에서도 자신을 탓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강연을 할 때에 정해진 시간을 적절히 맞추지 못하는 것을 두고도 ‘시간을 조절하는 것도 강연자의 능력인데, 나는 자격이 없어’라며 탓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어느 날 강연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버스 안에서 창밖을 바라보며 끝도 없이 자신을 자책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내 강연은 항상 인기가 없구나. 다 내 탓이지 뭐. 누가 내 강연을 들으러 오겠어’ 그러나 성황리에 끝났던 강연 후엔 모든 게 내 탓이라며 나를 칭찬하거나 하진 않는다. 강연을 기획한 사람, 주제, 참여자의 분포 등 많은 것들이 강연을 구성하기 때문이다.


배우 오정세의 수상소감이 기억에 남는다. [동백꽃 필 무렵]이라는 드라마로 백상 예술대상에서 조연상을 수상한 그는 이렇게 소감을 전했다.


 “어떤 작품은 성공하기도 하고 어떤 작품은 심하게 망하기도 하고 이렇게 상까지 받게 해주는 작품이 있었는데요. 그 100편 다 결과가 다르다는 게 신기한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그 100편 다 똑같은 마음으로 열심히 했거든요. 돌이켜 생각해보면 제가 잘해서 결과가 좋았던 것도 아니고 제가 못해서 망한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냥 계속하다 보면은 평소와 똑같이 했는데 그동안 받지 못했던 위로와 보상이 여러분들을 찾아오게 될 것입니다. 저한테는 동백이가 그랬습니다. 여러분들도 모두 곧 반드시 여러분만의 동백을 만날 수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그의 진심이 담긴 수상소감은 마치 나를 향해 하는 위로 같아 손으로 또박또박 글을 받아 적었다. 좋지 않은 결과에는 내 탓이라며 나를 탓하고, 좋은 결과에는 내 탓이 아니라며 나를 채찍질 하기에만 급급한 태도로는 언제까지나 나에 대한 실망만 안고 가야 하지 않을까. 나에 대한 실망 때문에 잠 못 들던 밤들이 생각난다. 늘 자신에게 채찍만 휘두르는 인색한 태도로는 결국 자신에 대한 실망 때문에 밤마다 조금씩 자신을 싫어하게 된다. 첫 책을 출간했던 날 친구는 나에게 이런 말을 했었다.


디자이너 현진이도 자랑스러웠고,
캘리그래피 작가일 때도 자랑스러웠지만
글 쓰는 작가가 된 지금 너무 자랑스럽다.
힘들었지만 그래도 흔들리지 않고
이렇게 또 하나의 결실로 만들어낸 작가님
대단하고 칭찬해


다른 사람을 위로하듯 내 마음도 알아주고 위로해야 한다. 친구가 나에게 했듯 열개의 위로와 칭찬 중 하나라도 나에게 해보는 거다.


“그 정도면 됐어 충분해”

“괜찮아, 실수할 수도 있지 뭘”

“넌 정말 괜찮은 사람이야”

“난 네가 정말 자랑스러워”


언젠가 라디오 사연에 보낼 글을 쓰느라 다른 사람에게 쓰듯 나 자신에게 편지를 쓴 적이 있다.

생각해보니 수많은 사람들에게 사과를 해오며 살아왔더라고요. 사과를 할 줄 아는 게 어른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런데 정작 당신에겐 한 번도 사과를 한 적이 없었어요. 정작 자기 자신에겐 좋은 어른이 되어주지도 못하면서 뭐 그렇게 많은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되어주려 노력한 건지. 정말 미안해요. 하지만 이제부턴 내가 당신의 가장 좋은 사람이 되어줄게요. 그러니 뱃속 든든한 자신감을 가지고 앞으로도 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일들을 계속해나가길 바라요. 완벽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이내 더 잘하기 위해 무리하고야 마는 당신이 안쓰러워요. 더 잘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돼요. 지금까지 쌓아온 것들 그대로의 당신으로 충분해요. 열심히 하지 않고, 여유 있게 천천히 가도 배울 것은 배우며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걸 말해주고 싶어요. 그리고 조금 모자라게 편안하게 웃으며 가도 된다는 말도 해주고 싶어요. 정말 정말 괜찮아요. 당신이 생각하는 암담한 미래란 어디까지나 불안함이 만들어낸 허상일 뿐이에요. 좋은 미래가 정해져 있는 게 아니듯 암담한 미래도 정해져 있지 않다는 걸 알잖아요. 알 수 없는 미래는 누구나 불안하니까. 그러니 우리 이제는 조금 천천히 편안하게 가도록 해요.


가볍게 쓰기 시작한 편지였는데, 다른 사람을 지켜보듯 제삼자가 되어 나를 생각해보니 눈물이 찔끔거릴 정도로 안쓰러웠다. 칭찬도, 위로도 해줄 줄 모른 채 자신을 탓하고 채찍질하기만 하는 나에게 제일 먼저 하고 싶은 말은 “미안해”였다. 남을 위로하듯 나를 위로하고 나니 알게 되는 것이 있었다. 나에게 가장 좋은 위로는 내가 해주는 거였는데 그동안 너무 멀리서만 공허한 위로를 찾으려 다녔다는 것. 삶은 길고 긴 마라톤이다. 기나긴 길을 가는 동안 다른 사람들과 나를 비교해 채찍질하는 것만이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잠시 앉아 쉬고 때로는 몸이 따라주지 않는 자신을 위로해야만 또다시 뛸 수 있다. 오늘은 나에게 실망하지 말자. 나에 대한 실망을 애써 보듬는 밤, 사랑의 마음을 참지 않는 밤이 되도록 하자. 오늘은 그저 흘러가는 날들 중 하루일 뿐이므로. 실망할 날들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므로.






쓰는 아도르

사진, 글, 캘리그라피 adore
블로그 : http://jwhj0048.blog.me
인스타그램 : http://www.instagram.com/adore_wri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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