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례 화엄의 종소리와 ‘토지’의 기억을 걷는 1박 2일
오랜만에 학창 시절 친구들과 길을 나섰다.
행선지는 구례와 하동으로 대략 정한다.
이제는 모두 예순 중반을 바라보는 나이라 그런지
여행 계획도 젊은 날처럼 촘촘하지 않다.
몇 군데만 정하고, 중간중간 쉬어가고,
숙소도 굳이 예약하지 말자는 느슨한 합의가 이루어졌다.
이제는 ‘빽빽한 일정’보다 ‘비어 있는 시간’이 더 좋다.
구례라 하면 누구나 먼저 화엄사를 떠올린다.
그러나 우리는 조금 비켜섰다.
먼저 향한 곳은 ‘쌍산재’.
조선 후기 학자 오형순 선생의 서재라고 한다.
사실 나도 이곳을 알지 못했다.
여행은 이렇게 모르는 곳에서 시작하는 것도 재미있다.
입구에는 ‘명천(名泉)’이라 적힌 우물이 있다.
오랜만에 보는 살아 있는 우물.
한 모금 떠 마시니 차고도 부드럽다.
옆에는 이런 글귀가 새겨져 있다.
천년 된 마을의 이슬처럼 달고 신령한 물.
좋은 물을 마셨다는 이유만으로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쌍산재는 정원 같았다.
아니, ‘책 읽는 정원’이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
어디에 앉아도 좋다.
돌의자에도 방석이 깔려 있고
대나무 숲길에는 바람 소리가 잔잔하다.
이제는 이런 곳이 좋다.
분주하지 않은 곳.
아무 자리에 앉아도
그곳이 곧 나의 사색 자리가 되는 곳이다.
입장료에는 차가 한잔 포함되어 있다.
커피 대신 생강차를 들고 걷는다.
왠지 이런 곳에서는 커피보다는 생강차가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에서다.
처마 밑에는 무청과 마늘이 매달려 있고
마당에는 곶감이 익어간다.
무심한 듯 곶감 하나를 건네는 주인장의 그 소박한 인심에
우리는 또 한 번 마음이 따듯해진다.
정자에 앉아 옛 선비 흉내를 내본다.
비록 복숭아꽃은 없지만
이곳이 무릉도원 같다.
그래도 구례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 '화엄사'에 들어선다.
정문을 지나니 눈에 들어오는 글귀.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모든 것은 마음에 달려 있다.'로 알고 있는
익숙한 말이지만
이곳에서 보니 새롭다.
쉬운 듯, 결코 쉽지 않은 말이다.
경내를 걷는다.
샘물은 얼어 있고, 대웅전은 고요하다.
제법 높은 곳에 있는 부처님 진신 사리를 모신
사리탑으로 올라 본다.
사리탑에 오른 친구 하나는
가만히 서서 두 손을 모은다.
또 다른 친구는 탑을 돌며 기도를 한다.
무엇을 빌었는지 묻지 않았다.
각자 가슴에 하나쯤은
말하지 못할 간절함이 있기 마련이다.
그때, 눈이 내린다.
우리가 사는 지역에서는 눈이 귀하다 보니 반갑다.
눈 내리는 산사.
한 번쯤 꿈꾸던 장면인데, 그 장면의 한가운데
지금 우리가 서 있다.
눈은 오래 내리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 순간은 오래 남았다.
다음 날, 깎아지른 절벽 위에 세워진 암자 '사성암'을 찾아갔다.
어떻게 이런 곳에 이런 건물을 올렸을까?
경이롭다.
약사전 처마 끝의 풍경과
파란 하늘이 맑다.
소원 바위 앞.
바위 형상이 부처님을 닮았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바위에서 부처님의 형상을 쉽게 찾지 못했다.
문득 어제 본 글귀를 떠올린다.
일체유심조.
바위가 부처를 닮았는지 아닌지는
결국 마음에 달린 모양이다.
많은 사람들이 간절히 바라는 그 무엇인가를 위해서
각자의 바람을 걸어 두었다.
같이 간 친구가 기도하는 모습이 너무 경건해 보인다.
멀리 지리산 능선을 바라본다.
섬진강에서 불어오는 겨울바람이 거세다.
찬 겨율 바람이라 오래 머물 수 없어도
그 풍경은 오래 남는다.
화개장터는 이제
옛 장터라기보다 관광지에 가깝게 느껴진다.
표고버섯 찰솥밥과 이곳의 명물인 재첩국으로
점심을 먹는다.
돌솥밥과 밑반찬에서 나는 은은한 한약재 향에
왠지 몸이 좋아질 것 같은 기분이다.
마지막 일정, 소설 '토지'의 배경 최참판댁으로 향한다.
소설의 배경 장소 이곳저곳을 둘러보다가 문득 생각이 난다.
그러고 보니 내가 소설 '토지'를 읽어 본 적이 없는데,
내용이나 주인공의 이름이 매우 익숙하다.
드라마와 여러 이야기를 많이 접해서
마치 내가 통독한 것으로 착각하고 있었다.
1박 2일, 빠르지 않았고,
많이 보지도 않았다.
그러나 충분했다.
학창 시절 친구들과
부담 없는 일정으로 마음의 여백을 되찾는 여행이었다.
다음에는 한 장소에 더 오래 머물고 싶다.
더 천천히 걷고, 더 오래 바라보고
더 깊이 생각하고 싶다.
어쩌면 이제 우리의 여행은
어디를 가느냐보다
어떻게 머무느냐가 더 중요해졌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