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과 전직, 그 너머에서 마주한 삶
1. 누구나 등에 짐 하나씩은 지고 산다
그 누군들 아픔 없는 삶이 있겠는가? 상처 없는 오늘이 있겠는가? 너, 나 없이 모두 필부(匹夫)이고 누구의 아버지, 누구의 남편 또는 가장으로서 막중함을 이겨낸 흔적이리라. 그 누구도 남의 등에 지고 있는 봇짐의 크기로 그 무게를 가름할 수 없으며, 내 등의 짐이 항상 가장 무겁고 힘들다고 느끼는 것은 모든 이의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은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고, 다른 사람들이 하고 있는 일은 아주 쉬운 일로 보이기도 한다.
타인의 깊은 상처보다 내 손가락의 가시가 더 아픈 것이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조금 다른 시선을 가져야 하겠다. "나만 왜 이렇게 힘들까?"라는 질문을 내려놓고, "당신도 참 애썼구나!"라는 문장을 품어본다. 내 짐의 무게를 토로하고, 내 아픔을 호소하고, 내 상처를 보여주기보다는 네가 느끼는 짐의 무게를 이해하고, 너의 아픔에 공감하며, 너의 상처를 어루만질 수 있는 여유로운 마음을 가져야겠다.
2. 박수 소리가 잦아든 무대 뒤의 풍경
이제 시나브로 삶의 주 무대에서 물러 나는 동료, 친구, 지인들의 소식을 접하고 그들과 마주하고 보는 것이 아주 자연스러워졌다. 어느덧 주변에서 하나 둘 들려오는 소식들이 낯설지 않다. 평생을 몸담았던 일터라는 주 무대에서 내려온다는 이야기에 익숙해져 있다.
이제는 충분한 즐거움과 여유를 누릴만한 자격이 있고, 충분한 사회적 공로가 있건만 아직도 삶의 주 무대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것은 나의 주변과 사회 여건을 탓하기보다는 우리가 범부(凡夫) 이기 때문이라 생각하는 것이 정신 건강에 좋을 것이다. 바꿀 수 없다면 순응해야 하고, 피할 수 없다며 즐겨야 하는 것이 선배들의 경험과 가르침이지만 대부분은 순응하고, 즐기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들의 마음이 마냥 편안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어쩌랴 이 또한 나에게, 너에게 주어진 몫인 것을...
"바꿀 수 없다면 순응하고,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선배들의 이 격언이 머리로는 이해되지만, 가슴으로 내려오기까지는 참으로 오랜 시간이 필요할 수 있다. 겉으로는 담담하게 순응하는 척, 허허롭게 웃으며 즐기는 척해 보지만 그 속마음이 어찌 늘 편안하기만 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란스러운 마음마저 우리가 감당해야 할 삶의 몫임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3. '준비'라는 단어가 주는 가혹함에 대하여
세상은 늘 우리에게 이야기한다. "행복한 미래는 오직 준비된 자만이 쟁취할 수 있다!"라고. 하지만 이 문장은 때로 너무나 가혹하고 불공평하다고 할 수 있다. 하루하루 버티는 것조차 버거웠던 이들, 가족을 위해 자신을 지우며 사느라 미래를 설계할 틈조차 없었던 이들에게 '준비 부족'이라는 꼬리표를 달아주는 일이 될 수도 있다.
세상은 어쩌면 불공평해 보인다. 누구는 비단길을 걷고 누구는 가시밭길을 걷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세상은 그렇게 불공평 하지만 않으리라 믿어 본다.
4. 마침표가 아닌, 새로운 문장의 시작
퇴직과 전직. 그것은 단순히 명함이 바뀌거나 수입의 경로가 변하는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앞만 보고 달려오느라 비대해진 삶의 무게를 조금씩 덜어내고, 내 몸에 맞는 새로운 균형점을 찾아가는 '성스러운 이행'의 과정일 수 있다.
내 짐만 무겁다고 투정 부리던 어린 마음을 내려놓는 대신 곁에서 묵묵히 걷고 있는 이의 거친 손을 잡아본다. 이제는 경쟁과 비교를 보다는 서로의 짐을 이해하고, 서로의 보폭을 맞추며 살아가는 것이 필요한 때이다.
무대 뒤편에도 여전히 삶은 계속될 것이다. 그리고 그곳엔 무대 위 조명보다 훨씬 더 따스한 사람의 온기와 상상하지 못한 재미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