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카이브 취향

씌어지지 않은 것 읽기

by 미정의 서

별자리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그것은 벤야민의 단어이기도 하고 또 그런 텍스트를 읽고 수집하고 필사하는 나의 습관을 함축한 말이기도 하다. 하나의 단어 혹은 문장이 불러일으키는 전혀 생소한 이야기와 기억들과의 공명, 그 연관의 형상을 맞춰보는 것, 그것이 서고 속 내 일상이고 또 나의 아카이브 취향이다.

처음 벤야민에게서 건진 단어는 미메시스였다. 유사해지려는 태고의 본성이 인간이 내뱉는 단어들에도 고스란히 축적되어 언어의 성좌를 이룬다는 그의 생각은 손으로 써 내려간 단어들에도 흔적을 남긴다. 그렇게 쓰기는 나의 아카이빙 도구가 되었고 <미메시스의 서고>가 만들어졌다. 서고는 두 명의 작가가 제작한 시각적 기록물로만 구성되었다. 기획자로서 어떤 글도 보태지 않았고, 그 같은 형식은 독자들의 상상적 독해를 위한 것이기도 했지만 근원적으로는 서고를 세웠던 첫 질문을 남겨두고 싶어서였다.


문: 왜 베껴쓰기라는 방식이었을까?

발터 벤야민: 베껴 쓴 텍스트만이 쓰는 이의 영혼에 지시를 내린다.


오랜 탐구 끝에 만난 벤야민의 이 문장이 비생산적 쓰기 행위를 전혀 다른 해석의 길로 이끌었고, 나는 두 작가의 작품 곳곳에서 어떤 지시를 읽는 듯했다.

김영기의 서고, SeMA storage, 2019
차정인의 서고, SeMA storage, 2019

그리고 서고의 마지막 칸, 검은 천 위에 놓인 작은 모니터 속 바늘을 쥔 작가의 손과 연이어 펼쳐 둔 발화되지 못한 단어들의 꽃자리. 어느 단어든 소리로 닿길 바라던 전시의 끝은 그해 여름 야드 바셈 Yad Vashem에서 어렵게 건진 이름들과 공명하고 있었다.

헤르츨 언덕, 현기증 나던 걸음은 방문객들의 웅성거림과 기록 영상 소리에 떠밀려 그런 것이었지만 읽을 수 없는 기호들로 가득 찬 원형 공간만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말단의 감각까지도 지극히 벤야민적인 낱말에게로 이끌었던 그곳은 거대한 이름의 전당이다. 하늘에 뿌려진 별처럼 천정에 아로새긴 얼굴들을 올려다보는 동안 옛 바빌로니아 왕궁을 다녀갔던 그 손가락의 환영이 내게도 나타났고, 판결의 문자를 새기던 손은 이번엔 활자시대를 살던 문선공처럼 이름을 찾아 제 얼굴과 연결 짓고 있었다. 의도하지는 않았으나 활자라는 낱말에서 사라진 것들이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미세한 활자와의 교감을 쌓던 단단한 엄지손가락은 이제 제 일을 잃었으나 스크립토리엄의 비밀스러운 글자들을 세상 밖으로 내어준 식자공의 이름은 이야기로 남았다. 그리고 이야기 끝에 나는 다시 묻는다.


문: 개러스 오언. 여행을 떠나는 네게 꼭 한 가지 물건만 가방 속에 허용된다면 넌 무얼 가지고 떠날까?


창밖에는 새하얀 눈송이가 날아오르고 그것은 어쩌면 서고에 숨죽여 있던 활자의 영혼이 되살아나리라는 암시인지도 모른다. 개러스의 오른손에는 활자스틱이 들렸고 그 손끝에 각인된 감각들을 건네받은 나는 아직 씌어지지 않은 낱말을 찾아 얼마간 서고를 떠나기로 한다. 다음 활자의 조합을 들고서.


“당신은 무엇을 가지고 떠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