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메시스적 쓰기

프롤로그

by 미정의 서

고교시절 수학보다 국어가 어려웠던 나에게 글쓰기는 언제나 큰 숙제였다. 20여 년 후 그런 내게 쓰기가 일상이 되어 있었다. 논문을 쓰고 강의를 준비하는 시간이면 늘 글과 씨름해야 했고, 한 문장을 여러 번 지우고 고쳐가며 아주 더디게 단락을 완성할 수 있었다. 그런 결핍이 모티브가 되었던 것일까. 오랜 연구 주제 역시 '쓰기'를 향해 있었다.

그림과 문자가 일체를 이룬 동양적 쓰기 전통 속에 있던 나에게 끌로델의 실험적 쓰기 <Cent phrases pour eventails>과 아폴리네르의 <Calligrammes>은 익숙한 것들에 대한 각성의 계기가 되었다. 문자의 이미지적 기원을 탐색하던 알파벳 후예들의 이 시적 놀이가 어렵고 지루하기만 했던 쓰기 행위를 완전히 다른 공간과 기술로 변화시켜 주었던 것이다. 그리고 또 한 사람, 발터 벤야민. 읽기와 쓰기에 관한 그의 독특한 유사성론은 상이한 언어와 문자들 사이에서 일어날 수 있는 무수한 연관으로 나를 안내했다. 전통적 서화에서 기계적 형상까지, 매체와 표현양식을 넘나들며 쓰기 행위 그 자체에 내밀하게 관여하고 있는 미메시스 속성을 조명해준 이 또한 그였다.

무엇보다 급변하는 쓰기의 기술과 이미지로 소통하는 시대적 환경이 전통적인 '타이포그래피'의 규정과 경계에 균열을 낸다. 누군가에게 문자는 다시 저 태고의 영혼처럼 쓰이고, 어떤 이에게는 쓰기 행위 그 자체가 특정 낱말에 축적된 역사적, 문화적 지층들을 해체하는데 소용된다. 그렇게 나의 쓰기에 관한 사유에 자극이 되어 준 작가들의 흔적을 따라 가며 '미메시스적 쓰기'에 관한 얼개를 그려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