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와 문자 그리고 쓰기

이미지의 역설

by 미정의 서

이 이야기는 언어와 문자 그리고 쓰기의 미메시스적 관계를 추적하며 걸어온 오랜 사유의 흔적이다.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

성서의 저자 요한이 지시하는 말과 음성을 기반으로 하는 이 언어는 인간의 귀를 지향한다. 화자나 청자 모두 청각적 반응에 민감해진다.


태초에 황소가 있었다.


반면 이미지 혹은 사물의 형태에 입각한 문자언어는 알파벳의 첫 글자 황소의 이미지 변형을 탐험했던 우아크냉 Marc-Alain Ouaknin의 관찰처럼 인간의 눈 곧 시각을 향한다. 인간의 뇌란 이 상이한 감각기관들로부터 수용하는 정보를 통합적으로 처리하지만 감각마다의 기능과 속성에 고유하고 특별한 것이 있음도 사실이다. 월터 J. 옹의 고전적 저술은 이 같은 언어의 차별적 속성을 "구술성과 문자성"으로 정의한 바 있다. 여기서 문자성과 구분해 둔 구술성이란 문자라는 인류의 위대한 발명품이 등장하기 훨씬 이전, 그러니까 인류가 오로지 말하기로만 소통하고 기억하던 태고의 언어적 속성을 지칭한다. 이미 문자를 기반으로 사유하고 말하는 우리에게 이 낯선 언어의 속성이 정확하게 어떤 것인지 상상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언어적 문자보다는 이미지 그 자체로 사유하고 소통하는 현재적 상황이 빚어내는 지각적 충격으로부터 옹이 간파했던 문자성에 선행한 구술성의 자질들을 유추해 볼 수도 있을 테다.

그가 속했던 문자 중심 사회에서 이미지의 시대로 옮겨가는 우리의 미래엔 문자적 통제 아래 축적해 온 의식과 행동의 규범들과는 전혀 다른 수용력, 적응력을 요구하게 될 것이다. 잘 짜인 문자의 구조를 이미지의 즉각성이 해체한다. 흘러가는 소리를 멈춰 세워 소유할 방법은 오직 침묵의 문자뿐이라던 옹의 의견은 범람하는 이미지 앞에서 다시 혼돈의 태고로 되돌아가는 듯하다. 구술성과 문자성의 이분법 사이로 이미지라는 새로운 언어가 끼어든 셈이다. 그런데 이 제3항은 구술의 시대에도, 문자의 속성에도 긴밀하게 관여하며 언어에 관한 우리의 감각과 사유를 확장해왔다. 최초의 황소가 알파벳의 선두가 되기까지 그 전환의 메커니즘으로 작동했던 '변증법적 지각'-최초의 표현은 '지각의 변증법'이었으나 벤야민의 사유를 충실하게 모방해보니 그 순서가 뒤바뀔 수밖에 없었다-은 이미지의 역설과 모호성을 방증하고, 또 전통적 쓰기 규범을 파괴하고 이미지로서의 문자를 탐색했던 시적 실험이 그 뒤를 따른다.




문자는 침묵이라는 언어의 심연을 현실화한다. 그것은 침묵과 말 사이에서 양자를 매개하며 '소리 없는 말'로서 침묵을 현실 속으로 끌어들이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즉 소리로 표현할 수 없는 사물의 비밀스러운 내면이 고요한 무문의 배경 위로 옮겨지는 것이다. 눈으로 응시하는 문자는 자주 소리 없이 읽히며, 막스 피카르트 Max Picard는 이것을 "침묵하는 그림"에 비유했다.

중국어 문자는 말을 갖지 않은 사물, 서로가 서로를 향해 침묵하는 사물의 그림이다. 인간은 귀 기울이기보다는 응시한다. 중국어 어휘, 하나의 음절로 된 그것은 그림의 울림이다. _Max Picard, <인간과 말>

침묵하는 말로써 사물의 본성을 옮겨내는 이 문자-이미지에 다시 말 곧 음성이 간섭하기 시작하면 그것은 일종의 놀이처럼 작동한다. 이미지란 하나의 기능이나 의미로만 고정해 둘 수 없기에 언제든지 다른 감각계에 열려 있으면서 언어마저도 그 상상의 영역 속으로 끌어들인다. 예컨대 이 상상적 놀이를 사라진 고대 문자 히에로글리프에서 발견할 수가 있는데, 태양신 Ra가 결합하는 과정을 따라가 보면 소리와 형상이 공명하며 한 대상을 지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마치 퍼즐을 맞추듯, 소리를 대체하는 그림문자와 의미를 한정하는 태양 형상이 결합해 신의 이름이 소리 없이 불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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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골에 새긴 중국의 그림문자가 그러하듯 히에로글리프 역시 고대인들에게는 근접할 수 없는 침묵의 문자였다. 동시에 그것은 수수께끼처럼 소리와 형상과 의미의 연관을 찾아가는 우리에게는 놀이의 문자가 된다. 하지만 고대 이집트 사제들의 상상력은 거대한 피라미드 속에 봉인되고 이집트에서 탈출한 히브리 민족의 반反 이미지적 문자는 점진적으로 음성학적 배열에 갇히게 된다. 침묵과 놀이, 소리와 형상 사이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기호의 세계에서 밀려나 버린 것이다. 생각해 보면 특권적 이미지의 무덤을 헤쳐 나온 모세는 자신의 동족들에게 보다 쉽게 문자에 접근할 기회를 부여하고자 했을지도 모른다. 단단하게 매듭지어진 카르투슈 cartouche 안에 가두어 평범한 이집트인들에게는 원천적으로 차단되었던 소리를 이 히브리인은 직접 듣고 또한 이마와 손목에 새기도록 지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집트를 떠나기 전, 모세 및 그가 이끌 사람들에게 가장 먼저 계시된 것은 다름 아닌 신의 이름이었다. 그리고 성서의 기록에 따르면 "여호와"는 직접 자신의 문자를 새긴 돌판 두 개를 모세에게 전달한다. 그 문자는 분명 문자가 지시하고 있는 내용에 따라 어떤 형상도 취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찌 보면 신이 인간에게 전해 준 문자가 오히려 권력화 된 인간의 문자를 그 배타적 힘으로부터 구제하는 역설이 모세의 이집트 탈출기에 숨겨진 또 하나의 이야기가 아닐까. 그처럼 신비하고 마법적인 신들의 문자가 소리와 형상의 비감각적인 유사성으로 결합되어 누구에게나 불릴 수 있는 알파벳으로 추상되는 과정을 그동안 우리는 지나치게 언어학적 도식 안에서만 관찰해왔다. 우아크냉의 문자 고고학은 우리의 고정된 시선을 돌려 사물 문자에서 비 이미지적 문자로 이행하는데 작용했던 "이미지의 역설"로 이끈다. 요컨대 황소의 형상이 축소되면서 오히려 의미가 확장되는 역설이 알파벳의 진화 단계에서 발생했다는 것이다.




그리스어 eikon이 지시하는 바와 같이 이미지는 원본의 충실한 모사이며 그런 의미에서 이미지는 존재의 의미를 고정시킨다고도 볼 수 있다. 이처럼 이미지에 내재한 동일화의 힘을 경계한 여호와의 문자는 형상화 그 자체를 금기시하는 원칙에 따라 서서히 사물 문자의 속성을 벗어나 추상의 단계로 진입하게 된다. 그 결과 고정된 이미지의 구속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의미 생성이 가능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지의 망령은 끊임없이 되살아나 신의 문자가 금기하는 지배적 이미지 곧 우상을 재생산하도록 한다. 그러니 이미지의 강제력은 대단히 점진적으로 상쇄될 수밖에 없으며, 그 과정은 역사적으로 크게 두 경로로 이루어졌다. 하나는 이미지의 변용 곧 이미지 자체가 대상이 아닌 소리를 향하는 방식이며 또 다른 경로는 이미지 내부에서 대상을 닮은 시각적 유사성을 제거해 나가는 것이다.

이미지가 사물이 아닌 소리를 표상하는 최초의 시도는 수메르의 레부스 rebus 시스템에서 찾아볼 수 있다. 우르크의 초기 점토판에는 이 레부스 개념을 도입하여 관리자의 이름을 새겨 넣은 사례가 있다. 연구자들은 이 점토판에 새겨진 형태와 유사한 후대 기호의 음가를 근거로 이 기호가 /Kushim/이라는 소리를 표기하고 있음을 해독해냈다. 고대 도시 문명이 발달하면서 그에 따른 경제적, 사회적 욕구가 고유명사 표기에 관한 필요를 초래하였을 것이고, 그러면 기존의 그림문자 방식으로는 추상적 표기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므로 자연스럽게 이미지를 소리 기호로 대체해 전용하는 길을 택했을 것이다.

kushim-tablette.jpg 쿠심 점토판(사진 출처: La boite verte)

사물을 옮긴 문자에서 사물을 떼어 내고 소리만을 취하는 이 획기적 아이디어는 하토르 Hathor의 신전 비문들에서 또 한 번의 변용을 꾀한다. 특히 이 곳에서 발굴된 소형 스핑크스가 연구자들의 주목을 끌었는데, 그 조각상에는 당시의 이집트 문자와 원시나이 문자가 함께 새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조각상의 제작 연대는 연구자마다 차이가 있으나 대체로 기원전 1400년 즈음으로 추정하며 역사적으로 이 연대는 성서에 언급된 이집트 탈출과 시나이 반도에서 율법을 받은 시기와 일치한다고 본다. 흥미롭게도 이 조각상의 원시나이 문자는 좀 더 정교한 방식으로 어떤 소리를 표기하고 있다. A.H. 가디너의 해독을 따라 각각의 기호가 표상하는 대상을 소리 내어 읽으면 '집: Bayit', '눈: Ayin', '막대: Lamed', '표지: Tav'가 되고, 이 소리 기호들에서 첫 글자만 떼어 다시 조합하면 'B(A)LT'가 구성되고 그 발음은 /baalat/가 된다는 것이다. 바알라트는 가나안 여신의 이름인데, 쿠심과 마찬가지로 소리를 표기하기 위해 그 소리에 일치하는 그림을 취하되 그것을 다시 음성화할 때는 첫 글자만 떼어 축약하여 조합하였다. 일종의 두음법이 이 과도기 문자에 적용된 것이다.

이미지가 대상의 재현을 넘어 음성을 표기해가는 과정에서 우아크냉은 비단 소리의 축약만이 아니라 이미지의 축소가 연동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하여 황소 그림은 더 이상 황소와 닮은 것이 아니라 그것의 본질인 힘, 에너지를 표상하기 위해 과감하게 그 시각적 자질이 삭제되었던 것이다. 먼저 몸통과 사지가 삭제되고 머리와 뿔만 남는다. 그리고 다시 그 머리는 상하좌우 방향을 틀어가며 표상의 해석학적 차이를 생산해낸다. 히브리 문자에 정통했던 연구자는 기호의 형태론적, 의미론적 추상과 변이 과정을 상세하게 기술하면서 현대 알파벳으로의 정착에 관한 새로운 해석을 곁들인다. 그리고 대상과의 감각적 유사성을 줄여갈수록 의미의 개방성은 확장되고 시각적 형태에 감금된 언어 또한 자유롭고 상상력 넘치는 이미지성을 되찾으리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비 이미지적 문자-알파벳-의 고고학을 설계하면서 감각의 단절이 아닌 시각과 청각의 상호 연관을 주의 깊게 관찰하고 오히려 이미지 없는 언어와 사유의 위법성을 밝히는데 주력한 것이다.

뿔은 외부 세계로 향한 일종의 "안테나"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이 안테나를 통해서 외부 세계의 에너지와 정보를 파악한다. 위를 향해 있는 뿔은 세계에서 인간이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 대한 초월적 차원을 강조한다. 이러한 관계를 수직적이자 신학적인 관계로 규정할 수 있다. 이와는 달리 뿔을 오른쪽이나 왼쪽으로 수평으로 기울이는 것은 인간학의 입장으로 이행함을 보여준다. 180도로 완전히 방향이 바뀐 것은 훨씬 더 지상에 가까운 존재 방식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이 형태를 통해서 땅의 힘에서 자신의 힘과 에너지를 길어 올리는 인간의 모습을 생각할 수 있다. _Marc-Alain Ouaknin, <알파벳의 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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