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지는 이야기

유사성의 문자들

by 미정의 서

다수의 문자 체계가 그림 단계에서 비 이미지적으로 변화하거나 미해독 상태로 사라진 것과 달리 중국의 문자는 초기 사물 문자가 지녔던 미메시스 속성을 쓰기의 기술과 함께 계승해왔다. 상형과 표의를 근간으로 한 이 문자의 수는 끝없이 확대되었고, 기호들의 의미 역시 다중적일 수밖에 없다. 갑골에 새긴 이 기호의 이름, '文'은 죽은 사람의 몸에 새겨 넣은 형상의 흔적이었다. 그러니 문자는 그저 대상의 형을 취하는 것에서 죽음과 삶, 신과 인간, 가시 세계와 비가시적 세계를 매개하는 것으로 확장된다. 실제로 죽음을 표기하는 '死'는 산 자와 죽은 자를 함께 새겼고, 고대 사회에서 이 문자를 다룰 수 있었던 주술사 '巫'는 하늘과 땅 사이 소통을 담당하는 영매였다. 이러한 문자의 매개 속성은 이미지가 지닌 초월성과도 연관이 있다. 이미지란 태생적으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무언의 소통을 특징으로 삼는데, 예를 들어 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있는 여인의 이미지에서 우리는 즉각적으로 모성을 연상하게 된다. 그리고 여자와 어머니를 형상화한 갑골문 모두가 이 같은 이미지의 연상과 관계를 맺고 있다. 사라진 고대 세계의 문자들과 달리, 이미지의 변용과 확장력을 일찍이 간파했던 갑골 문자의 사용자들은 대단히 유연하게 이미지를 활용함으로써 거대한 문자의 제국을 건설하고 지금까지 유지해올 수 있었다. 더욱이 이 상형문자의 쓰기에 매료되었던 피카소는 "나는 그림을 '쓰고' 싶다"며 그들에게 낯선 서화동원의 세계를 모방하기도 했다. 문자가 현실 재현이나 정보 전달의 도구에 머무르지 않고 독자적 언어의 우주로 확장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이미지 속성 때문이다. 또한 이미지는 쓰기 행위 그 자체를 통해 더욱 생성적이게 된다. 폴 끌로델은 <기호의 종교 Religion de signe>라는 산문시에서 문자의 이미지 속성과 쓰기의 운동성을 결합하고 있는데, 이 텍스트의 중심을 관통하는 개념이 '획'이다.




시인은 모든 쓰기의 근원을 획으로 환원하여 서구 알파벳과 중국 문자의 본질적 성향을 비교 성찰한다. 수평의 획이 그 자체로 자족적 속성을 지닌다면 수직선은 어떤 행위나 자기주장의 측면을 드러내는데, 이 방향성에 따라 강압적이고 단호한 세로획을 지닌 로마자는 수직적 문자로, 중국의 표의문자는 수평성의 문자로 분류하였다. 결국 표의문자의 본질이 지시하는 대상의 모방보다는 기호 그 자체에 대상을 현존시키는 데에 있다고 본 것이다. 실제로 중국 문자의 획은 쓰기의 모든 속성, 끌로델이 분석해낸 포괄적이고 자족적인 수평과 수직의 개체적 속성 그리고 사선의 역동성과 여백의 점이 함축하는 역학 관계 모두를 포함한다. 그러고 보면 이 문자에 "문자 인간 une personne scripturale"이라는 별명이 붙을 만도 하다. 우리 스스로도 획의 속성을 말할 때 근筋, 골骨, 혈血, 육肉의 수식을 붙이지 않는가. 이처럼 획의 운동학적 흔적이 생성한 표의문자에 착안하여 끌로델은 알파벳 쓰기를 위한 색다른 실험을 시도하였다. 곧 알파벳의 형태와 그것이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의 관계를 하나의 표의문자처럼 다룬 것이다. 물론 구조적으로 획의 역학 관계가 하나의 형태로 단번에 의미를 새겨 넣는 중국의 문자처럼 알파벳을 표현할 수는 없다. 그래서 시간적으로 배열되는 알파벳 단어를 표의문자와 같은 일체적 의미체로 볼 수 있도록 동양적 공간과 도구를 적극 활용하였다. 여백과 붓이 바로 이 전환적 쓰기의 매개체다.

병풍 구조에 수직과 수평 배열의 쓰기를 교차시키며 표의문자와 알파벳을 병치시킨 이 시에서 여백은 하나의 우주적 실체가 되고 그로 인해 알파벳 또한 기계적 선형성을 떠나 획의 생성적 리듬에 참여하게 된다. 다소 "열등한" 형태로나마 알파벳 시구의 모태가 된 표의문자의 전체성과 유사해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 유사성은 붓을 통해 더욱 강화된다. 붓은 펜의 경직성을 완화시켜 준다. 붓의 수직적 운동이 손가락과 펜에 편향된 긴장감을 해소하고 보다 여유롭고 공간적인 시선으로 여백과 문자의 배열 관계에 집중하도록 유도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문자에 대한 분석적 태도는 문자들의 공명을 직관해내는 능력으로 바뀐다. 결국 표의문자적 쓰기를 표방한 끌로델의 실험적 시 <Cent phrases pour éventails>은 필묵의 흔적이 지닌 신체 에너지와 그것이 궁극적으로 표현해내고자 하는 우주적 에너지에 긴밀히 관여한다. 그리하여 사물의 본질을 '그린' 최초의 획이 알파벳 '쓰기'에도 동일하게 작동하게 되는 것이다.


900_3-1920x968.jpg Paul Claudel, <Cent phrases pour éventails>


문자의 존재론적 질문에서 출발한 끌로델의 시적 탐색은 획의 일체론적 표현 곧 직접적 쓰기에서 지각되고 생성되는 감각적 유사성을 향하고 있었다. 이런 쓰기의 전통 속에 있으면서 중국의 것과는 다른 계열의 유사성을 추구했던 문자가 바로 한글이다. 가장 최근에, 그리고 최신의 시스템을 갖춘 이 문자는 모든 소리를 표기하는 문자의 기능을 다하되 존재하는 모든 것의 이치를 '직관적으로' 담고 있다. 일면 소리 내는 기관을 본떴으니 소리의 미메시스라 할 만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말소리에 든 자연의 이치를 따랐으니 대립적으로 이분해 온 언어와 문자의 간극을 폐기하고 오히려 그 연관을 형상화한 것이기도 하다. 또한 획의 자족적 표현에 방점을 두기보다 문자가 지시하는 대상 곧 소리-만물의 변화하는 상태에 '적응하는' 시스템을 갖추었다.


천지자연의 원리는 오직 음양오행일 뿐이다. 곤과 복의 사이가 태극이 되고 움직이고 멎고 한 다음에 음과 양이 생겨나는 것이다. 무릇 목숨 가진 것들로서 하늘과 땅 사이에 있는 것들은 음양을 버리고 어디로 가랴. 그러므로 사람의 소리도 다 음양의 이치가 있는 것인데 생각하건대 사람이 살피지 못할 뿐이다.


제자해 곧 문자 창제의 원리를 밝힌 글 첫 대목이다. 다른 표음문자가 그러하듯 어음을 표기하기 위해 임의로 기호를 빌어와 소리와 형상을 추상해가는 방식을 취하지 않고도 자연의 생성원리 곧 음양오행의 운행에 따라 직접적인 소리의 시각화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목구멍의 열린 형상을 취한 ㅇ은 입안 가장 깊은 곳에서 발성한 소리를 표상하며 그 속성은 자연의 물水과 같아 깊고 투명하다고 보았다. 어금니 소리 ㄱ은 그 소리의 성질이 목구멍 소리와 유사하지만 발성 시 일시적으로 혀뿌리로 목구멍을 닫게 되므로 ㅇ에 비해 여문 성질이 있고 이를 무형한 물과 대비하여 형상을 지닌 나무木에 비유하였다. 또 혀가 윗니에 붙어 나는 소리를 시각화한 ㄴ은 혀의 날랜 움직임을 연상하여 불火의 성질에 일치시켰으며, 이의 모양을 본뜬 ㅅ은 그 단단한 속성을 쇠金와 연결하였다. 마지막으로 남은 오행 중 한 가지 성질인 흙土은 입술 모양을 한 ㅁ의 넓고 머금는 소리 성질과 일치시켰다. 땅이 그런 포용성을 보여준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자연의 다섯 성질(五行)을 닮은 이 모양 소리에 세기와 청탁 정도에 따라 획을 더하거나 동일한 기표를 병기하는 방식으로 형태론적 완성을 꾀하였으니 소리의 변화를 기술하는 과정이 직관적인 동시에 논리적이고 과학적이라 할 만하다.

다섯 기본 자음의 창조적 변용에 하늘과 땅과 사람이 처음 생긴 이치를 따라 울림 소리 세 자를 다시 조합하여 온갖 소리의 변형체들을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게 되었으니, 정인지가 이 문자의 운용을 두고 "하늘이 인간의 마음을 열고 솜씨를 내어 준 것"이라 찬탄한 것이 그저 문학적 수사만은 아닌 듯하다. 쓰기의 구조에 있어서도 다른 표음적 기호들이나 표의문자의 장단을 적절히 운용하여, 문화적으로 익숙한 중국 문자의 사각형 구조를 취하되 음의 최소 단위에서 의미의 차원까지 그 경계를 시각적으로 구분할 수 있도록 세밀하게 설계하였다. 다름 아닌 초성, 중성, 종성을 합자하는 원리가 그것이다. 초성이 다시 종성이 되니 천지자연의 순환을 옮긴 것이고, 중성이 이 둘을 매개하여 음절을 이루니 "만물을 이루고 도와주는 것이 사람의 일"인 것과 같다. 요컨대 자연의 이치가 말과 문자의 최소 단위에까지 다다랐고, 바로 그 "음양오행의 도 天地之道"로 인하여 상이한 지각 체계에 기반한 언어와 문자의 근친 관계까지도 포착해낼 수 있는 것이다.

이전 02화언어와 문자 그리고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