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리그람

쓰기의 실험실 #1

by 미정의 서

문자들의 생성과 변화, 그리고 쓰기의 기술에서 우리는 언어와 문자를 양분해온 감각의 극단이 실질적으로는 상호 연동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특히 칼리그람과 구체시는 소리와 형상, 의미의 관계를 새롭게 배열하고 지각해보는 실험적 시도였다. 그림 모양의 글쓰기라는 부제를 지닌 칼리그람은 언어와 그림, 곧 텍스트와 이미지를 동시적으로 재현해내는 기법이다. 물론 아폴리네르가 이 용어를 고안해내기 이전부터 특정 사물을 형상화하여 텍스트를 구성한 시들이 있었고, 보다 근원적으로는 상형문자가 바로 이 칼리그람의 초기 형태라고도 볼 수 있다. 실제로 젊은 시절 중국의 표의문자에 심취했던 아폴리네르는 스스로의 시적 놀이를 "poems ideographique", "ideogrammes lyriques"라고 불렀다. 이후 그는 진화된 형식의 칼리그람을 통해 새로운 시대를 견인해 갈 새로운 예술 형식을 모색하였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동시대 예술가들이 추종했던 동시성의 미학이었다. 그가 보기에 입체주의는 모방의 예술이 아니라 창조의 경지에 다다르려는 예술이라는 점에서 기존의 회화와는 다른 것이었다. 실제로 큐비스트들은 원근법이나 단축법 같은 눈속임으로 현실을 왜곡하는 기존의 방식을 버리고, 현실을 직접적으로 "입체화"하는 방식을 택했다. 그리고 그 같은 미학적 실험을 시인은 자신의 글쓰기에서 시도하고자 한 것이다.

아폴리네르의 시적 실험은 우선 텍스트를 읽는 것과 이미지를 보는 것, 즉 언어적인 것과 시각적인 것 사이의 대립적 논쟁을 그치고 양자의 동시적 조망을 가능하게 한다. 구체적 사물을 형상화한 칼리그람에서부터 타이포그래피의 기술적 조작을 대신한 자필 원고, 큐비스트의 실험과 신문, 광고, 카탈로그 등에서 빈번하게 활용되는 편집 기술, couper-coller에 이르기까지 그의 시적 전략은 다양한 차원에서 실행되었다. 예컨대 <Il pleut>는 비 내리는 형상을, <la cravate et la montre>는 넥타이와 시계라는 오브제를 문자들의 배열로 '직접적으로' 그려낸다. 이 익숙한 문자들의 형상을 전체적으로 움켜잡는 시선, 그것이 시적 텍스트로 진입하는 이들의 첫 번째 반응일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인쇄된 문자의 열이 단순한 재현으로 끝나진 않는다. 아폴리네르는 그저 보이는 대상을 그려내려는 것이 아니라 사물마다에 응축되어 있는 시대성과 점점 더 문명화되어 가는 인간성에 관한 성찰을 자신만의 쓰기로 표현하고자 하였다. 그래서 넥타이는 개인의 삶을 속박하는 사회적 규범, 시계는 죽음을 향해 흘러가는 시간 곧 일생의 알레고리가 된다.

다시 전체적 시선은 텍스트의 부분들로 향하고, 이 단계에서도 평범한 읽기의 선조성과는 다른 방향, 순서, 의미론적 연관으로 독자의 자율적 참여가 극대화된다. 시계의 움직임을 쫓아가는 독자의 시선이 시계 바늘이 가리키는 시간 위에 머무를 때마다 그것은 마치 암호를 풀듯 그렇게 '해독'되는 것이다. 애너그램처럼 1에서 12의 숫자는 시인의 개인적 혹은 문학적 연관으로부터 비밀스럽게 풀려나온다. 1은 하나의 심장이 되고, 2는 두 개의 눈이 된다. 다섯 개의 손가락, 아홉의 뮤즈, 그리고 열두 시간이 각각 5, 9, 12의 숫자로부터 연상된다. 숫자들 뒤에 감춰진 이야기를 찾아가는 과정에는 읽기에 대한 새로운 탐색이 뒤따르기 마련이고, 그것은 글줄을 따라가는 수동적인 지각 운동 그 이상의 행위를 의미한다. 요컨대 칼리그람은 언어의 공간화를 통해 문자 그대로의 '행간의 의미'를 독자 스스로 탐색하는 자발성을 요구하게 되는 것이다. "모든 것을 이해해야만 하는가 Faut-il tout comprendre?" 시인의 이 독백 속에 이미 무한한 해석 가능성의 암시가 드리워져 있음을 본다. 아폴리네르는 삶의 요소라는 것이 그에 대응하는 단어만으로 번역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거듭 강조하였다. 더욱이 예술가들이 이르고자 하는 삶의 진실은 언제나 새로운 그 무엇이기에, 공간화된 단어들의 연관에서 끊임없이 의미를 발굴하도록 돕는 것이 이 아름다운 상형 시구의 기능인 것이다.

la-cravate-et-la-montre-apollinaire.jpg

한편 읽기와 보기의 동시성에 관한 아폴리네르적 실험이 본디 표의적 상형문자의 본질인 형 visuel, 음 sonore, 의 semantique 연관과도 무관하지 않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형태와 소리, 의미의 층위가 다양하게 결합하여 발전해 온 중국 문자를 모티브로 기존의 시행이 지닌 음과 뜻의 결합에 형의 차원을 중층화한 것이 바로 칼리그람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아폴리네르의 칼리그람을 이 연관의 상이한 조합에 따라 역 분류해보는 시도도 충분히 창의적이고 새로운 해석학적 접근이 될 것이다. 구체적으로, 한 편의 시가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텍스트-이미지로 그려내는 "형상적 칼리그람 le calligramme figuratif"이나 텍스트 내부에는 존재하지 않는 사물을 텍스트와 결합하여 그 사이에서 생성되는 의미의 세계를 탐색하게 하는 "비형상적 칼리그람 le calligramme non figuratif"은 형과 의가 마주하는 변에서 표현 가능한 시적 변용이라 하겠다. 또 다른 칼리그람에서는 마치 큐비스트의 화폭같이 서로 관계없는 사물들을 병치하는데, 이렇게 이질적인 사물의 나열로 전혀 새로운 의미를 조직해내는 "복합적 칼리그람 le calligrammme composé"은 형-음-의 세 변 사이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시적 서정을 표현한다. 실제로 상이한 텍스트들을 병렬한 칼리그람 <coeur couronne et miroir>은, 하나의 시에서 형, 음, 의 구조에 내재한 내적 변이들을 세 가지 형상으로 독특하게 실현하고 있다. 곧 심장, 왕관 그리고 거울이라는 생소한 사물들이 드러내고자 하는 의미의 심층과 그것의 표상 방식이 차별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이다.

지면 좌측에 위치한 심장의 형상을 읽을 때 우리는 문자의 크기와 형태 그리고 방향을 따라 규칙적 리듬 속 음량의 고저를 지각하게 되고, 그것은 마치 살아있는 심장의 두근거림을 듣는 것과도 유사하다. 말하자면 형이 음의 속성을 획득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텍스트가 표현하는 심장의 소리는 불꽃의 형상으로 변하여 mon coeur pareil à une flamme renversée 생명에 대한 두 가지 이미지를 동시적으로 표현한다. 왕관 역시 문자 배열에 따라 읽기의 방향과 속도가 달라지는데, '죽은 왕들 les rois qui meurent'은 위에서 아래로 시선을 이동시키고 수평으로 배열된 '점점 더 tour a tour'는 문자 그대로 서서히 시선을 움직인다. 문자 배열의 지각적 속성을 활용함으로써 의미와 소리의 차원을 통합시키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 행에서 죽은 왕들은 시인의 심장과 결합하여 다시 태어나고 renaissent au coeur des poètes 무관해 보였던 심장과 왕관이 연관을 맺는다. 다시 왕관의 중심 단어인 왕 roi은 이 시에 병치된 마지막 사물이면서 시인 자신을 비추는 거울 mi-roi-r 중심에 놓인다. 그리고 거울 속에서 시인은 진정 살아있고 진실되다고 말한다. Dans ce miroir je suis enclos vivant et vrai comme on imagine les anges et non comme sont les reflets 전형적인 형과 의의 결합이라 할 수 있다.


711px-Guillaume_Apollinaire_-_Calligramme_-_Cœur,_couronne_et_miroir.png coeur couronne et miroir


칼리그람으로 보여준 읽기와 보기의 교차 혹은 형음의 구조의 동시성 외에도 아폴리네르는 다양한 시적 전략을 구사하며 동시대 미학적 사유와 감수성을 독특한 언어로 재현해냈다. 때로는 광고전단, 카탈로그, 포스터 등 새로운 매체 형식에서 시적 영감을 취하기도 하고, 그 누구보다도 적극적으로 타이포그래피 기술을 활용했던 시인이다. 그것은 기술문명의 진화가 새로운 시대정신 곧 동시성의 미학을 실현 가능하게 할 것이라는 신념에 기초한 것이었다. 아울러 그가 재해석하고 확장한 메타포 기법 역시 당대의 미학 정신을 실천하는 구체적 수단이었다. 메타포란 서로 다른 두 가지 현상을 병치하는 유추에 기대어 아직 알려지지 않은 세계로의 확장을 끊임없이 시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첫 시집 <Le Bestiaire ou Cortège d'Orphée>는 그 같은 메타포의 방대한 보고라 할 만하다. 어쩌면 아폴리네르가 구현하고자 했던 동시성은 누군가의 표현처럼 "현실에 상응하는 또 다른 가능성의 우주"를 위한 시적 창조 그 자체인지도 모른다. 어떤 형식으로든 그가 남겨준 쓰기의 유산은 언어와 문자로 구축된 미메시스의 서고 한켠을 채우기에 충분히 새롭고 영감적이다.

문학이 중요한 효과를 거둘 수 있는 것은 오직 실천과 글쓰기가 정확히 일치하는 경우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포괄적 지식을 자처하는 까다로운 책 보다, 공동체 안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기에 더 적합한 형식들, 예컨대 전단, 팸플릿, 잡지 기사, 포스터 등과 같은 형식들이 개발되어야 한다. 그와 같은 신속한 언어만이 순간 포착 능력을 보여준다. _발터 벤야민, <일방통행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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