흩어진 이야기의 이름들
할머니는 부모님이 지어 준 멋진 이름을 지녔다. 하지만 어릴 적 내가 들었던 할머니의 이름은 언제나 "월당 댁"이었다. 그것은 할머니의 고향을 부르는 말이었을 텐데, 그 시절 시골 마을 여인들은 누구나 그런 식으로 서로를 불렀던 것 같다. 어린 내게 그 별칭은 어딘가 모르게 불편하고 어색했다. 낯선 그 이름은 할머니를 영원한 이방인으로 떠돌게 했기 때문이다.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들판의 고목나무처럼, 할머니의 이름도 밀양 박 씨 댁으로 시집오는 날 안개처럼 잊혔다. 그래서일까. 나는 할머니를 추억할 때면 굳이 그녀의 이름 석 자를 꾹꾹 눌러 발음해 본다. 그렇게 명명된 소리는 이따금 고목나무의 이름이 되기도 한다. 할머니의 이름을 되찾는 일과 늙은 나무가 지닌 기억들이 나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들 사이에 비밀스럽게 간직하고 있는 유사성을 읽어내려면, 흩어진 기억의 파편들을 잇는 이야기꾼의 재능이 필요하다. 운 좋게도 나는 그러한 서사의 기술을 차정인의 서고를 탐색하며 익혔다.
엄마의 조각 천을 잇는 지극히 사적인 기억의 끈들이 보다 정치적인 쓰기로 넘나드는 길목에는 <여사서 女四書>라는 옛 책이 등장한다. 중국 여성들이 기록한 규범서 네 권을 합본한 책인데, 당시 문자를 익히고 다룰 수 있는 저자라면 그들은 꽤나 배우고 계급 있는 집안의 여성이었을 것이다. 유교적 질서를 본으로 삼았던 시대에 그 같은 문자적 권위로부터 자유로운 여성은 아무도 없었다. 굳이 그 내용을 한글로 번역하여 왕실과 반가에서 반드시 익혀야 할 도덕률도 삼은 것만 보더라도 이 특별한 서책의 위력을 가늠할 수가 있다. 그것은 그 시대의 여성에게 사대부의 사서삼경 四書三經과 같은 지위를 지녔던 것이다. 작가의 문제의식 역시 이 책에서 시작되었다. 내게 할머니의 이방 이름이 낯설었던 것처럼, 작가는 엄마의 삶으로 동화되었던 문자들의 미덕이 불편했다.
문제의식의 시작은 쓰기를 통해 재현된다. 그녀는 <여사서언해>를 긴 종이 띠에 가지런히 써내려 갔다. 습관처럼 이어지는 필사 행위는 엄마의 엄마가 그 딸의 딸에게 전승하는 규범의 내면화 과정을 그린 다큐멘터리와도 같다. 그런데 여자들이 실천해야 할 덕목을 새기는 이 의식적 기록에 반전이 숨어 있다. 문자로 강제하는 도덕의 항목을 한 행 한 행 뒤집고 비틀어보는 역설이 쓰기 그 자체에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 작가가 정서한 글자들은 오히려 자구字句의 강제력을 거부하는 힘을 지닌다. 또 오랜 쓰기의 노동 끝에 잘 말린 글자들을 말아서 꼬면, 더 이상 글자들이 지시하는 규범 따위는 사라지고 뜻 모를 얼룩무늬만 종이 끈 표면으로 스며 나온다. 그러면 읽을 수도 전승될 수도 없는 미덕 대신 평범한 삶의 이야기가 이 끈을 따라 새롭게 이어진다. <꽃밭 만들기>는 그렇게 문자가 강제하는 질서에 순응해야만 했던 세대의 희생을 쓰기를 통해 자각하고, 다시 여성의 가사 노동에 빗댄 수공예적 작업으로 그 부당함을 고발한다.
선생의 길을 접고 기꺼이 현모양처로 살다 간 엄마를 아쉬워하고 또 엄마로부터 물려받은 행위의 규범들로 갈등하던 작가의 쓰기는 유사하지만 또 다른 독자의 이야기를 수집한다. 작가가 꼬아 둔 종이 끈으로 다시 자기만의 이야기를 형상화하는 독자들의 뜨개질이 이어져 거대한 꽃밭을 이루는 것이다. 이러한 공동의 쓰기는 <여사서>의 저자나 학습자와 같은 식자들에게만 제한된 리터러시가 아니다. 글자를 몰랐던 내 할머니의 이야기도 이 꽃밭 어딘가에 자리를 갖는다. 마지막 병상에서 고해성사처럼 내게 들려주었던 그리움과 오해의 기억을 이 거대한 망상網狀의 서사에 엮어 주는 고리가 <여사서> 두 번째 권인 '여논어女論語' 제12장에 있다. 이 장의 내용은 수절과 정조다.
"남편과 아내가 머리를 맺어 그 의리가 천금보다 중함으로 만일 불행함이 있어 중도에 먼저 〈한 사람이〉 기울어지면 삼 년 동안 상복을 입고 뜻을 지키며 마음을 굳게 하여 집을 보전하고 가업을 지탱하며 무덤을 정돈하고 은근히 후손을 훈계하면 생전과 사후에 광명이 있으리라."
유학자의 딸이었던 할머니는 구전의 방법으로 이 수절장을 익혔을 것이다. 들판의 노동으로 먼저 떠난 남편을 그리워하며 독자를 길러내고 병을 얻고서야 침상 끝에 자기 이름 석 자를 걸어둘 수 있었던 할머니는, 매일 같이 고목나무를 바라보고 허리를 숙이던 노동요를 내 엄마에게도 들려주었다. 옛 사서의 미덕이 엄마에게는 그리 아름답지도, 또 선하지도 않았다. 굳이 그 뜻을 내세우지 않았지만 내게 그런 가르침을 전수하지 않은 것은 엄마의 의식적 저항이었다. 그리고 할머니는 그녀의 딸을 무척이나 사랑하셨다. 여름 입구엔 마당의 딸기들이 푸른 잎들 사이로 신선한 붉은 빛깔을 뽐낸다. 일흔이 훌쩍 넘은 엄마는 지금도 딸기를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