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의 서사
요안나 콘세이요의 그림과 정원사의 패널들에서 식물의 이름을 떠올리는 일은 벤야민의 <일방통행로>에서 만난 발코니의 인상과 맞닿아 있다. 벤야민은 그 거리에 연인의 이름을 걸어 두었다. “아샤 라치스 거리” 그 거리에서 만난 발코니 하나 혹은 여럿에서 꽃들의 이름이 불려 나온다. 제라늄. 카르투지오 패랭이꽃. 아스포델. 선인장 꽃. 물망초. 관엽식물. 이 이름들은 하나같이 연인과의 기억으로 엮어 있으며, 무엇보다 기억의 첫 행이 이름의 서사를 함축하고 있는 것도 의미심장하다.
서로 사랑하는 두 사람은 무엇보다 그들의 이름에 매달린다.
흔히 제라늄은 페라고늄과 뒤섞여 불린다. 무심코 발코니를 올려 본 도시의 방문객들에게는 두 이름의 차이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 마는 열정 넘치는 정원사라면 사정이 다를 것이다. 그는 꽃잎의 크기와 잎 모양의 미세한 차이로도 서로의 이름을 구분하여 부를 수 있다. 그런데 발코니가 늘어선 골목으로 진입하는 순간, 이 거리의 산책자에게도 그런 애정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삭막한 도시 외벽에 생명을 불어넣는 빛깔과 향기는 다름 아닌 서로 다른 철자들의 이름이었던 것이다. 벤야민은 자신이 경험한 도시의 거리에서 그물망처럼 얽혀 있는 서사적 기억을 발굴하려 했고, 그 도구는 언제나 이름이었다. 거리의 이름, 장소, 상점의 간판, 사물의 이름, 안내문 등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이야기들이 풀려나올 때면 그가 확대해 보여준 “책 읽는 아이”의 장면처럼 잠시 멈춰 서 그 이야기 속으로 섞여 들어가야 한다.
또 다른 이름, 카르투지오. 분홍 빛 패랭이꽃을 부르는 그 철자들에 탐닉해 한 자 한 자 불러보는 일은 어쩌면 벤야민이 탐험했던 태곳적 언어의 신성한 모사를 경험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름은 스스로를 봉쇄한 연인을 향한 끝없는 연민을 불러일으킨다. 정작 꽃의 언어는 그런 감각이나 감정과 연관된 아무런 음성적 자질도 지니지 않지만, 불린 그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꽃의 운명을 드러내는 것이다. 창문이 굳게 닫힌 외딴 발코니 속 카르투지오의 붉은 고독에 한참을 머물다가 문득 수집한 서고 속에서 온갖 색을 반사해 버린 새하얀 패랭이꽃이 피어오른다. 가지런히 정렬된 활자들 사이로 피어난 하얀 꽃의 서사는 죽음이 가까워 마지막 꽃잎이 떨어지는 순간까지 결코 변하지 않을 우정을 그림처럼 묘사하고 있다.
므누티크는 향기로운 흰색 패랭이 꽃을 땄다.
자신이 향기를 맡기 전에 줄기를 손가락으로 들려
그 향기를 함께 즐기려는 듯 아마로파코아크에게 내밀었다.
우리는 동등해.
요안나는 장 프랑수아 샤바가 수집한 꽃말에 <잃어버린 영혼>과는 다른 형식으로 형태와 색채의 언어를 입힌다. 원제인 “Les fleurs parlent(꽃들이 말한다)”는 번역된 “꽃들의 말”보다 이야기하는 기술에 더 어울리는 듯하고, 그렇게 서로 다른 서사의 연결점을 요안나의 그림들이 이어준다. 그림은 긴 호흡의 텍스트에 붙여 둔 이름처럼 기능하며 흩어진 요소들을 하나의 성좌처럼 드러내 보인다. 강인하고 오만했던 아마로파코아크의 고통스럽게 잘려 나간 팔, 유순하고 두려움 많은 므누티크가 회색곰을 향해 내뱉는 용기, 그리고 그들을 동등한 관계로 맺어 주는 실베스트리스 패랭이꽃. 요안나의 펜이 이야기 끈의 끝이 되어 말없는 사물들의 언어를 마법처럼 풀어내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다시, 발코니마다 잿빛 도시에 숨을 불어넣는 관엽식물. 밋밋하고 권태로운 연인의 대화를 경청하는 이 초록 식물들은 얀이 영혼을 기다리고 앉았던 의자와 방과 집을 에워싸고, 앙리가 뒤따라가는 마지막 숨길에서도 소리 없는 식물들이 그의 영혼을 배웅한다. 비와 안개와 바람의 푸른빛이 까치밥나무의 붉은 열매를 감싸 안으면 앙리도 그 고요 속으로 함께 걸어 들어가는데...
어쩌면 그는 이 고요 속에서 자신이 소년이었던 때를,
들판에서 놀던 때를, 이 길을 산책했던 때를 추억했는지도 모른다.
앙리와 얀과 그리고 도시 산책자에게 찾아온 므네모시네 Mnemosyne의 영혼은 특별할 것 없는 식물들에 이름을 부르고 상이한 기억들을 함께 잇는다. 얼마 후 내 유년의 기억도 요안나의 푸른 선들과 신비롭게 공명하기 시작한다. 어린 시절 할머니 댁 툇마루에 앉아 가만히 바라보던 들판에도 오래된 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다. 수종은 기억나지 않는다. 무채색 빌딩과 아스팔트 냄새 그리고 이름을 새겨 넣은 문패 대신 숫자로 호수를 구분해야 했던 아이의 경험 속에는 식물들의 이름이 들어설 자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펼쳐놓은 요안나의 노트에 한참을 머물러 있었다. 순간 바람을 따라 난 길이 나타났다. 어릴 적 나는 그 길을 따라 이름을 알지 못하는 나무에게로 다가갔다. 바람이 내려준 잎사귀 하나를 집어 들고 문질러 본다. 손끝에 묻어난 월계수 향이 향긋하다. 할머니가 시집오기 전 살던 마을의 이름과 나무의 이름 첫 자가 닮았다. 애써 이름을 찾을 이유가 없었다. 그때도 지금도 그것은 '할머니 나무'였던 것이다.
초현실적인 들판과 나무의 행렬을 뒤로 하고 돌아오는 길 끝에 빨갛게 익은 딸기들이 줄지어 섰다. 할머니 머리에 두른 흰 수건과 낡은 바구니,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열매들의 잔상이 연이어 스친다. 딸기의 붉은 빛깔이 앙리의 까치밥나무 열매들과 뒤섞여 오래 전 떠나간 할머니와 그녀의 나무를 그리게 한다.